[설] 깨어있어라 (루카12,25-40)

2018. 2. 16. 오전 8:0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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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  깨어있어라 (루카12,25-40)  


주님께서는 모세에게, 아론과 그의 자손들이 이스라엘 자손들 위로 나의 이름을 부르면, 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겠다고 하신다. (민수 6,22-27)
22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23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일러라. ‘너희는 이렇게 말하면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축복하여라.
24 ′주님께서 그대에게 복을 내리시고 그대를 지켜 주시리라.
25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비추시고 그대에게 은혜를 베푸시리라.
26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들어 보이시고 그대에게 평화를 베푸시리라.′’
27 그들이 이렇게 이스라엘 자손들 위로 나의 이름을 부르면, 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겠다.”


야고보 사도는, 여러분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하며,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한 줄기 연기일 따름이라고 한다. (야고 4,13-15)
사랑하는 여러분, 13 자 이제, “오늘이나 내일 어느 어느 고을에 가서  일 년 동안 그곳에서 지내며 장사를 하여 돈을 벌겠다.” 하고 말하는 여러분!
14 그렇지만 여러분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생명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한 줄기 연기일 따름입니다.
15 도리어 여러분은“주님께서 원하시면  우리가 살아서 이런저런 일을 할 것이다.”하고 말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생각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니, 준비하고 있으라고 하신다. (루카12,25-40)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5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36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
37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 주인은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 것이다.
38 주인이 밤중에 오든 새벽에 오든  종들의 그러한 모습을 보게 되면, 그 종들은 행복하다!
39 이것을 명심하여라. 도둑이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40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2018년 2월16일 금요일 설 제1독서 (민수22-27)


◀구약의 사제(제사장)의 임무▶

 ① 사제는 <(번)제단>에서 자신과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속죄하고 성결케 하는 일을 행했다. (레위16,18-19)   (번)제단은 영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갈바리아산 십자가 제단을 의미한다. 

② 사제는 <물두멍>에서 수족을 닦는 일을 행했다. (탈출30,19-21) <물두멍>의 씻음은 영적으로 회개와 성령을 의미한다. 날마다 자신을 씻어야 하고,  씻어야만 <성소>에 들어가 봉사를 할 수 있고 씻지 않으면 죽었다. 

③ 사제는 <제사상>에 <제사빵>을 놓아 두어야 했다. (탈출 25,30 : 레위24,6-8) 사제는 성소안에 있는 제사상에 매 안식일마다 12개(이스라엘 12지파를 상징)를 올려 놓아야 한다.<제사빵>은 영적으로 생명의 빵(성체)이요,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④ 사제는 <등잔대>(탈출25,31-40)에 불이 꺼지지 않게 점검하고, 정리하는 일을 했다.(탈출30,7-8) 올리브유의 순결한 기름으로 등불을 켜고, 저녁부터 아침가지 사이 사이 점검하고, 불이 꺼지지 않도록 하는 사명이 있었다. 이 빛은 세상의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일곱 등불은 칠성사를 상징한다. 

⑤ 사제는 <분향 제단>에 향을 피워야 했다. (탈출30,7-8) 사제는 아침마다 향기로운 향을, <등>을 정리(손질)할 때와 저녁(해거름)에 등을 켤 때도 피워야 한다. 사제는 분향 제단에서 향이 끊이지 않고 타오르도록 해야 할 책임이 있는데, 향을 피우는 것은 하느님께 드리는 기도를 의미한다.


◀구약의 대사제(대제사장)의 임무▶ 

① 지성소에서 속죄하는 일을 행했다.  1년에 한 번 대 속죄일 7월 10일에 지성소에 들어가서 자신과 온 백성들의 지은 죄를 속죄하는 의식의 임무를 담당했다.(레위16,17 : 히브9,7) 

② 판결하는 일을 했다. (신명21,5) 

③ 만남의 천막안의 모든 일을 총지휘했다. (민수3,21-37 : 4,46-48) 

④ 하느님의 말씀(율법)을 가르치는 일을 했다. (2역대15,3 :신명6,6-7 : 8,3) 대사제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하느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실천하여 살 수 있도록,가르치는 임무를 담당했다. 

⑤ 대사제는 대를 이어 종신토록 직무를 담당했다. 

⑥ 대사제는 축복하는 일을 하였다. "주 너희 하느님께서 그들을(레위의 자손 사제들) 선택하시어 당신을 섬기고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게 하셨으며, 그들의 판결에 따라   모든 송사와 폭력 사건이 해결될 것이기 때문이다." (신명21,5) 

대사제는 모든 백성들에게 하느님의 축복을 빌어 주어야 한다. 주님께서 대사제 아론과 그의 아들들 사제들에게 일러,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위해 축복을 빌라고 하셨다. 그 축복이 바로 유명한 사제의 축복이다. (민수6,24-26)

    "주님께서 그대(이스라엘 자손)에게 복을 내리시고, 그대를 지켜 주시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비추시고, 그대에게 은혜를 베푸시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들어 보이시고, 그대에게 평화를 베푸시리라." (민수6,22-26)  주님께서는 사제가 백성들을 행해 비는 복을 그대로 이루어 주시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들이 이렇게 이스라엘 자손들 위로 나의 이름을 부르면,  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겠다." (민수6,27)

 주님께서는 사제들에게 축복권을 주셨다. (신명21,5) 축복은 사제가 하지만, 축복을 보장하시고, 이루어 주시는 분은 주님이시다. 그러므로 사제는 계속 축복해야 한다. 주님의 종 모세도 백성들을 위해 하느님 앞에서 마음껏 축복했다. 바로 유명한 축복장이 있는 곳이 신명기 28장 1-6절이다.

   "너희가 주 너희 하느님의 말씀을 잘 듣고,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그분의 모든 계명을 명심하여 실천하면,  주 너희 하느님께서 땅의 모든 민족들 위해 너희를 높이 세우실 것이다.  너희가 주 너희 하느님의 말씀을 잘 들으면, 이 모든 복이 내려 너희 위에 머무를 것이다. 너희는 성읍 안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다. 너희 몸의 소생과 너희 땅의 소출도, 새끼 소와 새끼 양을 비롯한 너희 가축의 새끼들도 복을 받을 것이다. 너희의 광주리와 반죽통도 복을 받을 것이다. 너희는 들어올 때에도 복을 받고,나갈 때에도 복을 받을 것이다."

교회는 오늘 우리 민족의 큰 명절인 설날이기 때문에, 미사를 통해 사제의 축복을 받을 수 있도록, 민수기 6장 22-27절의 말씀을 선포한다. 

구약을 통해 사제들의 변천사를 보면, 축복의 변천사도 함께 묵상할 수 있다.  아담으로부터 아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은 족장(가장) 사제들이었고, 그 다음 율법시대에는 아론과 그 아들들,  그 다음은 레위지파, 그 다음은 나지르인으로 넘어가다가 이제 신약의 시대에는  영원한 대사제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피로 말미암아, 만인 사제단이 탄생하였다. 

 "여러분도 살아 있는 돌로서 영적 집을 짓는데에 쓰이도록 하십시오. 그리하여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영적 제물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바치는 거룩한 사제단이 되십시오." (1베드2,5) 

"여러분은 선택된 겨레고 임금의 사제단이며, 거룩한 민족이고, 그분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여러분을 어둠에서 불러내어 당신의 놀라운 빛 속으로 이끌어 주신 분의 위업을 선포하게 되었습니다." (1베드2,9) 


   오늘 설 명절 미사를 통해 영원한 대사제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자이신 사제의 축복을 받은 우리들도, 성모님과 함께 이 세상 한 복판에서 삶의 노고와 희생을 통해영적 제물을 바치는 사제이기에,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가깝게는 가족들, 친지, 친척, 친구들, 믿음의 형제 자매들을 한 사람 한 사람 축복하고 복을 빌어 주자.


 

 설날 복음 (루카 12,25-40)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 (35~36)


루카 복음 12장 35절에서부터 38절까지는 깨어 주인을 기다리는 종들의 비유인데, 루카 복음 12장 35절에는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자세와 관련해서 두 가지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로, 허리에 띠를 매고 있는 모습이다. '페리에조스메나이'(periezosmenai; girded about)'띠를 매다'는 뜻의 동사 '페리존뉘미'(perizonnymi)완료 수동태로서 '이미 허리에 띠가 매여져 있는 상태'를 말한다.  다시 말해서 허리띠를 지금 당장 매는 것도 아니고 앞으로 맬 것도 아니며, 이미 허리띠를 맨 상태에서 현재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당시 유대인들이 입었던 겉옷은 길고, 그 통이 넓은 것이었다. 따라서 일을 할 때나 여행을 하거나 전쟁을 수행할 때에는 겉옷을 허리띠로 졸라 매야만 했다.  

여기서 종들이 허리에 띠를 맨 이유는 문맥상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을 맞을 준비를 철저히 하고 있는 것을 말한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하느님의 백성들도 혹시라도 나태해져 방심하지 말고, 하느님 나라를 위해 열심히 일하며 깨어 있는 사람이 되도록 항상 준비하라는 의미인 것이다.


둘째로,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등불을 켜 놓은 상태로 있어야 함을 보여준다. '켜 놓고'로 번역된 '카이오메노이'(kaiomenoi; burnning) '불을 켜다' 뜻의 동사 '카이오'(kaio)현재 분사 수동태로서 '계속적으로 불이 켜 있는 상태'를 가리킨다. 

여기서 등불을 켜 놓고 있는 목적은 어두워진 이후에도 계속 일을 하며 기다리던 주인을 맞아들이기 위한 것이다(마태25,1~13). 따라서 본문은 주님이 언제 오실지라도, 주님께서 맡기신 일을 성실히 감당하고, 항상 깨어 주님의 오심을 준비하는 사람이 될 것을 교훈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있어라'에 해당하는 '에스토산'(estosan; let be)'에이미'(eimi; be) 동사의 현재 명령형 3인칭 단수로서 '계속적으로 있어라'는 뜻이다. 여기서 '에이미'(eimi)동사는 '있다' 또는 '존재하다'는 의미로 사용되어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는 상태를 계속 유지하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동사가 여기서 현재형으로 사용된 것은 이러한 상태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예수님께서 언제 다시 오실 지는 아무도 모르므로, 하느님의 백성은 늘 주님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혼인 잔치'로 번역된 '가몬'(gamon; wedding banquet)의 기본형 '가모스'(gamos)혼인 잔치 자체를 가리킨다.


당시 유대인들의 혼인 잔치는 주로 밤중에 이루어졌기에, 그 주인이 혼인 잔치로부터 돌아올 때는 모든 사람이 잠든 시간이 되므로, 그 종들은 잠들지 말고 깨어 있어라는 교훈을 주기에 적절한 배경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이러한 배경 설정의 이유만이 아니라, '혼인 잔치'천상에서의 기쁨과 영광의 혼인 잔치를(묵시19,9), '그 주인' 재림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혼인 잔치의 집'하늘 옥좌를 암시함으로써, 종말론적인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한 목적도 있다고 본다.  

그리고 '돌아오는'으로 번역된 '아날뤼세'(analyse; he will return)의 기본형 '아날뤼오'(analyo)'풀다'는 뜻에서 발전하여 '떠나기 위해 천막을 걷거나 배의 닻줄을 푼다'는 점에서 '떠나다','출발하다'는 뜻도 갖는다.

여기서는 혼인 잔치 집을 떠난 것을 가리키며, 이것은 앞으로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주님으로 오셔서, 온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해서 하늘 옥좌를 떠나 내려오실 것을 상징하고 있다.  

 

 



<어떤 복을 바랄 것인가?>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 주인은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 것이다. 주인이 밤중에 오든 새벽에 오든 종들의 그러한 모습을 보게 되면, 그 종들은 행복하다!

이것을 명심하여라. 도둑이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루카 12,35-40).”

이 말씀은 종말, 재림, 심판에 관한 말씀인데, 설날 복음 말씀으로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시간의 주인은 인간이 아니라 하느님”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하면, 이 말씀은 ‘설날’ 같은 날에는 더욱더 묵상해야 할 말씀으로 생각됩니다.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라는 말씀은, 주님의 재림이 ‘지금 곧’ 이루어질 수도 있음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언제인지 모르는, 막연하고 먼 훗날의 일이 아니라, 지금 당장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곧바로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 라는 말씀은, 하느님의 심판에 대비해야 하는 때는 ‘나중’이 아니라 ‘지금’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라는 말씀은, “재림의 날이 언제일지 계산하지 말고 ‘지금’ 준비하여라.” 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종말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각 개인의 인생의 마지막에 대해서도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야고보서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생명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한 줄기 연기일 따름입니다. 도리어 여러분은 ‘주님께서 원하시면 우리가 살아서 이런저런 일을 할 것이다.’ 하고 말해야 합니다(야고 4,14-15).”

‘내일’은 하느님의 권한에 속한 날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내일’을 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오늘’만 살고 인생을 마감하게 될 것입니다. 또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한 줄기 연기처럼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여기서 “주님께서 원하시면”이라는 말은, 뜻으로는 “주님께서 허락하시면”입니다.

우리가 하루를 지내고 나서 새날을 맞이하는 것은, 주님께서 새로운 하루를 허락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게 된 것은, 자동적으로 된 일이 아니라, 주님께서 새로운 한 해를 허락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얻은 시간들을 겸손하게 받아들여야 하고, 헛된 일로 시간을(인생을) 낭비하지 말아야 합니다.


요한 1서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세상도 또 세상 안에 있는 것들도 사랑하지 마십시오. 누가 세상을 사랑하면, 그 사람 안에는 아버지 사랑이 없습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 곧 육의 욕망과 눈의 욕망과 살림살이에 대한 자만은 아버지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온 것입니다. 세상은 지나가고 세상의 욕망도 지나갑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은 영원히 남습니다(1요한 2,15-17).”

하느님께서 새로운 날을 허락해 주셨으니, 새로 얻은 날을 하느님 뜻에 합당하게 사용하는 것이 옳습니다. 허무하게 사라질 것들이나 일들에 대해서 집착하지 말아야 합니다. 신앙인은 ‘영원’을 추구하고 희망하는 사람입니다.


“모든 인간은 풀이요, 그 영화는 들의 꽃과 같다.주님의 입김이 그 위로 불어오면,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든다. 진정 이 백성은 풀에 지나지 않는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지만, 우리 하느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 있으리라(이사 40,6-8).”

마른 풀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인가? 아니면, 영원한 생명을 얻어서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히 살 것인가? 이 질문은, “새해를 맞아서 어떤 복을 기원할 것인가?” 라는 질문에 연결됩니다. 


신앙인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기를 바라는 사람입니다. 그 복은 믿음 없는 사람들이 바라는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복이 아니라, 죽은 다음에는 하느님 나라의 영원한 생명이고, 지상에서 사는 동안에는 ‘참 평화’입니다. 마음의 평화, 영혼의 평화, 양심의 평화보다 더 좋은 복은 없습니다.

(신앙인이라면, 서로 복을 빌어 줄 때에 바로 이 평화를 빌어 주어야 합니다.)


시편 저자는 이렇게 찬미합니다. “언제나 주님을 제 앞에 모시어, 당신께서 제 오른쪽에 계시니 저는 흔들리지 않으리이다. 그러기에 제 마음 기뻐하고 제 영혼이 뛰놀며, 제 육신마저 편안히 쉬리이다. 당신께서는 제 영혼을 저승에 버려두지 않으시고, 당신께 충실한 이는 구렁을 아니 보게 하십니다. 당신께서 저에게 생명의 길을 가르치시니, 당신 면전에서 넘치는 기쁨을, 당신 오른쪽에서 길이 평안을 누리리이다(시편 16,8-11).”

이런 평화와 기쁨을 누리려면 언제나 하느님(예수님)과 함께 살아야 합니다.

회개해야 하고, 충실하게 신앙생활을 해야 하고, 그리고 예수님의 계명대로 사랑을 실천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요한 1서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되었다는 것은,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분처럼 살고 있기에 우리가 심판 날에 확신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에서 드러납니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쫓아냅니다. 두려움은 벌과 관련되기 때문입니다. 두려워하는 이는 아직 자기의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사람입니다(1요한 4,17-18).”

여기서 말하는 ‘두려움’은 벌에 대한 두려움, 즉 죄에서 오는 두려움이고, 참 평화를 누리지 못하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회개와 충실한 신앙생활과 사랑 실천은 우리를 두려움에서 해방시켜 주고, 참 평화를(참 복을) 누리게 해 줍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즐거운 설날연휴 보내세요~

우리는 설을 맞아 조상들을 기억하며, 그 은덕에 감사드리는 시간을 갖습니다. 이로써 조상들은 후손들의 마음 안에 다시 살아나며, 온 집안을 한 식구로 묶는 구심점이 되지요. 고인들을 기억하는 것은 과거 추억만을 회상하는 단순한 일이 아닙니다. 과거 사건이 지닌 의미를 오늘의 삶 안에서 되살려 내는 것이지요.
이처럼 조상을 기억하는 일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연결하는 고리가 됩니다. 더욱이 우리가 고인들을 위해 열심히 기도할 때 우리 후손들도 우리를 위해 정성껏 기도하지 않겠습니까? 이럴 때 ‘내가 드린 기도’가 언젠가는 ‘나를 위한 기도’가 되어, 나에게로 되돌아올 것입니다.
또한, 설을 맞아 특별히 가족을 생각했으면 합니다. 흩어진 형제자매들을 만나려고 고향으로 가는 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우리는 어렵고 힘들 때 고향을 생각하고 어머니를 생각합니다. 고향과 어머니는 우리의 근원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힘들고 지친 우리의 삶은 고향의 넉넉한 품 안에서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신앙인의 고향은 어디입니까? 우리 생명의 근원인 하느님의 품입니다. 오늘 설을 맞아 우리 삶의 근원과 최종 목적지에 대해 묵상했으면 합니다.
아울러 나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고인들을 위해 정성껏 기도했으면 합니다. 그리하여 그들이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다가 언젠가 하느님 나라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어야 하겠습니다.
(김준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설날 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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