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2주간 수요일] 열병 (루카 4,38-44)

2017. 9. 6. 오전 4:3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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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2주간 수요일] 열병 (루카 4,38-44)


바오로 사도는 콜로새 신자들에게 인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님에 대한 그들의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전해 듣고 감사한다. (콜로 1,1-8)
1 하느님의 뜻에 따라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도가 된 바오로와 티모테오 형제가 2 콜로새에 있는 성도들 곧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형제 신자들에게 인사합니다. 하느님 우리 아버지에게서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내리기를 빕니다.
3 우리는 여러분을 위하여 기도할 때면 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4 그리스도 예수님에 대한 여러분의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여러분의 사랑을 우리가 전해 들었기 때문입니다.
5 그 믿음과 사랑은 여러분을 위하여 하늘에 마련되어 있는 것에 대한 희망에 근거합니다. 이 희망은 여러분이 진리의 말씀 곧 복음을 통하여 이미 들은 것입니다. 6 이 복음은 여러분에게 다다라 여러분이 그 진리 안에서 하느님의 은총을 듣고 깨달은 날부터, 온 세상에서 그러하듯이 여러분에게서도 열매를 맺으며 자라고 있습니다.
7 여러분은 하느님의 그 은총을 우리가 사랑하는 동료 종 에파프라스에게 배웠습니다. 그는 여러분을 위하여 일하는 그리스도의 충실한 일꾼이며, 8 성령 안에서 이루어지는 여러분의 사랑을 우리에게 알려 준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시몬의 장모를 고쳐 주시고 이어서 갖가지 질병을 앓는 이들을 모두 고쳐 주시고는, 유다의 여러 회당에서 복음을 선포하신다. (루카 4,38-44)
38 예수님께서는 회당을 떠나 시몬의 집으로 가셨다. 그때에 시몬의 장모가 심한 열에 시달리고 있어서, 사람들이 그를 위해 예수님께 청하였다.
39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가까이 가시어 열을 꾸짖으시니 열이 가셨다. 그러자 부인은 즉시 일어나 그들의 시중을 들었다.
40 해 질 무렵에 사람들이 갖가지 질병을 앓는 이들을 있는 대로 모두 예수님께 데리고 왔다. 예수님께서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손을 얹으시어 그들을 고쳐 주셨다.
41 마귀들도 많은 사람에게서 나가며,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하고 소리 질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꾸짖으시며 그들이 말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셨다. 당신이 그리스도임을 그들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42 날이 새자 예수님께서는 밖으로 나가시어 외딴곳으로 가셨다. 군중은 예수님을 찾아다니다가 그분께서 계시는 곳까지 가서, 자기들을 떠나지 말아 주십사고 붙들었다.
43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다른 고을에도 전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도록 파견된 것이다.” 44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유다의 여러 회당에서 복음을 선포하셨다.


 연중 제22주간 수요일 제1독서(콜로1,1~8)   

"그 믿음과 사랑은 여러분을 위하여  하늘에 마련되어 있는 것에 대한 희망에 근거 합니다.  이 희망은 여러분이 진리의 말씀 곧 복음을 통하여 이미 들은 것입니다." (5) 

그리스도인들이 지니고 있는 희망이란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향유하고 있는 구원의 미래적 양상이며, 이 희망은 부활 때 이루어지게 된다. 

즉 여기서 말하는 희망 믿음을 지닌 자와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자가 미래에 얻게 될 것에 대한 바람과 기대를 나타내는 것이다. 

여기서 '마련되어 있는'으로 번역된 '아포케이메넨'(apokeimenen; is laid up; is stored up)의 원형 '아포케이마이'(apokeimai)'간직해두다', '저축하다','미래에 사용하기 위하여 비축하다'라는 뜻이다. 

여기서는 현재 분사형으로 사용되어 미래에 받게 될 상급을 위해서 이 땅에서 삶을 계속적으로 지혜롭게 살아가면서 미래를 준비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가리킨다. 그리고 사도 바오로는 매우 의도적으로 '하늘에 마련되어 있는'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것은 당시 콜로새의 세속적인 사람들이 추구했던 이 땅에서의 안락한 삶과 대조되는 단어이다. 그리고 '희망'으로 번역된 '엘피다'(elpida; hope)의 원형 '엘피스'(elpis)미래에 성도들이 성취하게 될 궁극적인 목표를 가리킨다. 

그리스도인들의 궁극적인 목표이 땅에서 그 무엇을 얻는 삶이 아니라 미래에 이루어질 천국에서의 영광스러운 삶이다. 

당시 콜로새는 오로지 세상적 관심과 목표를 가지고 자신과 가족을 위해서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하지만 콜로새의 그리스도인들은 이들과 달리 하늘에 희망을 쌓아두고 살고 있었다. 

사도 바오로는 바로 이러한 콜로새의 성도들이 가진 희망으로 말미암아 감사하고 있는 것이다.  

'여러분이 진리의 말씀 곧 복음을 통하여 이미 들은 것입니다'

여기서 '진리의 말씀 곧 복음'은 무엇을 말하는가? 문법적으로 보면 '복음'에 해당하는 '유앙겔리우'(euanggelliu; of gospel)소유격 명사로서 '진리'를 수식한다. 

또한 '진리의'에 해당하는 '알레테이아스'(elletheias; of truth) 역시 소유격 명사로서 '말씀'(토 로고; to logo; the word)를 수식한다. 따라서 이것은 여러분이 전에 들은 '말씀'이 바로 '진리'에 속한 것이며, 그 '진리'가 바로 '복음'에 속한 것이라는 의미이다. 

결국 사도 바오로는 성경에서 사용되는 주요 단어인 '복음'(euanggellion; 유앙겔리온), '진리'(alletheia; 알레테이아), '말씀'(logos; 로고스)이라는 세 단어를 사용해서 각각의 단어들 앞에 정관사를 붙임으로서 콜로새 성도들이 전에 들은 것이 바로 '그 복음'이며, '그 진리'이고, '그 말씀'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사도 바오로는 당시 콜로새 성도들이 신앙 생활의 유일한 기준이요 교과서인 리스도의 복음에 입각해서 살고 있음을 칭찬하고 있는 것이다.


 연중 제22주간 수요일 복음(루카4,38~44) 

"예수님께서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손을 얹으시어 그들을 고쳐 주셨다." (40) 

루카 복음 4장 40절고통과 질병에 허덕이는 사람들에게 연민의 정을 느끼셔서 그들 중 단 한사람이라도 소홀히 여기지 않으시고, 개별적으로 치유해 주신 예수님의 자상함을 잘 드러내 주는 부분이다. 

특히 '한 사람 한 사람'으로 번역된 '헤니 헤카스토'(heni hekasto; each one; everyone)치유의 능력이 흘러나오는 예수님의 따뜻한 손병자 중 어느 한 사람도 지나치지 않고, 그들 각각의 머리를 감쌌다는 사실을 밝혀준다. 

특히 '손'에 해당하는 '타스 케이라스'(tas cheiras; his hands)복수형이며, 이것은 예수님께서 한 손이 아닌, 두 손으로 병자들의 머리를 안수하셨다는 사실을 부각시킨다. 병자들은 두 손을 통해 전해오는 따뜻하고 자비가 많으신 예수님의 마음에 감동했을 것이다. 

안식일 하루 종일 복음 선포에 힘쓰신 예수님께서는(루카4,31~39) 해가 져 피곤하셨을텐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당신을 찾아 모여든 병자들의 무리 사이에 돌아다니면서 그들에게 일일이 안수하셨다. 

구약 시대에는 통상 '머리에 손을 얹는 행위'(안수)자신의 죄악을 동물에게 전가시키거나(탈출29,15.19) 증인들이 죄인을 돌로 치기 전에 그 사람에게 죄를 확정하는 방법으로(레위24,14) 사용되었으나, 예수님께서는 '안수'하느님의 은총을 전가하는 방법, 치유의 역사(役事)를 일으키는 통로로 사용하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안수'('타스 케이라스 에피티테이스'; tas cheiras epititheis; laying his hands on)를 통해서 하느님의 능력이 흘러내린다는 사실을 강하게 심어 주고자 하셨으며, 그 안수 행위를 통해서 당신께서 병자들 개개인에게 자상한 관심을 가지고 계시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자 하셨던 것이다.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회당을 떠나 시몬의 집으로 가셨다. 그때에 시몬의 장모가

심한 열에 시달리고 있어서, 사람들이 그를 위해 예수님께 청하였다.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가까이 가시어 열을 꾸짖으시니 열이 가셨다.

그러자 부인은 즉시 일어나 그들의 시중을 들었다(루카 4,38-39).”

 

여기서 중요한 말은, “열을 꾸짖으시니” 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예수님은 ‘병’이라는 것을 지배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단순히 병을 잘 고치는 의사가 아니라,

‘주님’으로서 만물에 대한 지배권을 가지고 계시고,

또 말씀만으로(명령만으로) 만물을 다스리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이 믿음을 처음으로 고백한 사람은 어떤 이방인 백인대장입니다.

“...... 그저 말씀만 하시어 제 종이 낫게 해 주십시오.

사실 저는 상관 밑에 매인 사람입니다만 제 밑으로도 군사들이 있어서,

이 사람에게 가라 하면 가고 저 사람에게 오라 하면 옵니다.

또 제 노예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합니다(루카 7,7-8).”

예수님께서는 그 백인대장의 믿음에 대해서 이렇게 칭찬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스라엘에서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루카 7,9).”

그 당시에는 아직 예수님을 ‘만물의 주님’이라고 믿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제자들에게도 아직은 그런 믿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백인대장이 처음으로 예수님을 그렇게 믿었고,

자기의 믿음을 공개적으로 고백했습니다.

어떻든 예수님께서 시몬의 장모를 고쳐 주신 일은,

당신이 만물의 주님이라는 것을 드러내신 일입니다.

 

“해 질 무렵에 사람들이 갖가지 질병을 앓는 이들을 있는 대로 모두

예수님께 데리고 왔다. 예수님께서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손을 얹으시어

그들을 고쳐 주셨다. 마귀들도 많은 사람에게서 나가며,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하고 소리 질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꾸짖으시며 그들이 말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셨다.

당신이 그리스도임을 그들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루카 4,40-41).”

 

예수님께서 안수 동작만으로 병자들을 고쳐 주신 일도,

‘병’을 지배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일입니다.

여기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라는 말은,

모든 병자를 한 번에 고쳐 주신 것이 아니라,

한 사람씩 따로 고쳐 주셨음을 뜻하는데,

이것은 병자들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예수님의 사랑과 자비를 나타냅니다.

“마귀들도 많은 사람에게서 나가며” 라는 말은, 마귀 들린 사람들도 많이 왔는데,

예수님께서 마귀들을 쫓아내심으로써 그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는 뜻입니다.

마귀들이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라고 소리를 지른 것은,

자기들의 패배를 인정한다는 뜻일 수도 있고,

반대로, 패배를 인정할 수 없다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뜻으로 한 말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하여간에 마귀들이 예수님을 믿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침묵을 지키라고 명령하십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꾸짖으시며 그들이 말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셨다.

당신이 그리스도임을 그들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라는 말은,

마귀들이 예수님에 대해서 알고 있다는 것을 예수님도 인정하시지만,

그 지식은 믿음과 상관이 없고, 오히려 사람들의 믿음을 방해하기 때문에

당신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말하지 말라고 명령하셨다는 뜻입니다.

마귀들은 원래 거짓말만 하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마귀들이 하는 말을 믿지 않습니다.

(마귀들이 하는 말을 믿으면 안 됩니다.)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드님이고, 그리스도라는 것은 진실이지만,

그것을 마귀들이 말하게 되면 거짓말이 되어버립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라는 말 자체는,

“나는 당신을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믿는다.” 라는 뜻인데,

마귀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이 말 전체가 거짓말이 된다는 것입니다.

(듣는 사람들 입장에서 생각하면,

마귀들의 증언을 통해서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갖게 되는 일은 없습니다.

믿음은, 믿는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서만 갖게 되는 법입니다.)

 

“날이 새자 예수님께서는 밖으로 나가시어 외딴곳으로 가셨다.

군중은 예수님을 찾아다니다가 그분께서 계시는 곳까지 가서,

자기들을 떠나지 말아 주십사고 붙들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다른 고을에도 전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도록 파견된 것이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유다의 여러 회당에서 복음을 선포하셨다(루카 4,42-44).”

 

여기서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다른 고을에도 전해야 한다.” 라는 말씀은,

“이 고을에서 전한 것처럼 다른 고을에도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한다.” 라는 뜻이기 때문에,

이 고을에서 병자들을 고쳐 주신 일은, 단순한 의료 활동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한 일이었다는 뜻이 됩니다.

사람들 쪽에서 볼 때에는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설교를 하신 일과

병자들을 고쳐 주신 일이 따로 구분되는 다른 일로 보이겠지만,

예수님 쪽에서는 사람들을 가르치신 일과 병자들을 고쳐 주신 일과

마귀들을 쫓아내신 일은 모두 다 구분할 수 없는 하나의 일,

즉 사람들을 구원하는 일이었고, 복음 선포였습니다(루카 7,22).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선포하실 때 말씀으로도 선포하셨고,

치유로도 선포하셨다는 것입니다.

(병자 입장에서 생각하면, 예수님께서 주신 치유의 은총 자체가 복음입니다.)

 

그러나 당시에 몸의 치유만 원하면서 영혼 구원에 대해서는 관심 갖지 않고,

예수님의 복음에 대해서도 관심 갖지 않았던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오늘날에도 그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떠나지 말라고 간청하면서 예수님을 붙든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입니다.

벳자타 못 가에서 어떤 병자를 고쳐 주신 다음에,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자, 너는 건강하게 되었다. 더 나쁜 일이 너에게 일어나지 않도록

다시는 죄를 짓지 마라(요한 5,14).”

몸의 건강은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영혼 구원입니다.

우리는 인사말로 “영육 간에 건강하시길...” 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는데,

이 말은 신앙생활의 최종 목적은 영혼 구원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루카 복음은 예수님의 일상을 아주 간략하면서도 핵심적으로 전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가장 가까운 당신의 제자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아시고 주저 없이 그 부인을 찾아가 치유하십니다.

그런데 그 “열을 꾸짖으시니”라는 표현을 보면 열병이란 것이 내 안에 있는 불평불만으로 생긴 화병 같은 것인가 봅니다. 내 안에 분노와 미움을 일으키는 악한 영을 예수님께서 꾸짖으셨기에 마음의 병이 치유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음의 병만이 아니라 육신의 병도 치유하십니다. 질병을 앓는 이들에게 손을 얹어 주시어 모든 것을 창조의 질서로 되돌리시는 하느님의 손길을 전하십니다. 그러자 마귀들이 먼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알아봅니다.

군중은 그런 예수님을 곁에 오래 두고 싶어 합니다. 수시로 삶을 괴롭히는 병과 고통으로부터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예수님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숨은 마음을 아신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외딴곳’으로 가시어 하느님의 뜻을 물으시고, 당신의 소명을 재확인하십니다. 칭송받고, 영웅시되는 곳에 안주하지 않으시고, 해방과 치유를 바라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찾아가시는 예수님의 선교 사명을 엿봅니다.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는 예수님의 이러한 복음의 기쁨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교회가 스스로 복음이 되고, 사람들의 칭송에 안주하지 않으며, 더 소외되고 가난한 이들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나의 믿음이 자기만족에 머물면, 믿음도 이기적 욕망의 도구가 되고 맙니다. 그래서 신앙인은 언제나 예수님처럼 자신을 되돌아보는 기도로 숨을 쉬고 살아야 하는 법입니다.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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