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 간다’고? 그럼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건 뭐야?

2015. 4. 12. 오후 4:17:33

글자

 

‘천국 간다’고? 그럼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건 뭐야?

마태4:17↔3:2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말도 있는데 ‘천국 간다’는 말만 쓰는 이유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천국에 간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세례요한과 예수께서는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셨습니다. 여기서 질문이 생깁니다. 사람들은 왜 ‘천국 간다’는 말만 사용하는 것일까요? 왜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말은 사용하지 않는 것일까요? 혹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말하면 시한부 종말론자가 되거나 아니면 ‘너 죽을 때 다 됐어’의 뜻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일까요?

물론 ‘천국 간다’는 표현이 틀린 말은 아닙니다. ‘천국에 들어간다 혹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는 표현이 성서의 여러 곳에 있습니다(마5:20; 7:21; 18:3,8,9; 19:23,24; 21:31; 25:46; 막9:43,45,47; 10:15,23,24,25; 눅16:22; 18:17,24; 행14:22; 딤후4:18; 히2:10; 4:3,11; 벧전5:10 비교참조). 그런데 이 구절들은 한결같이 ‘죽음 이후’를 전제하는 것 같은 생각을 하도록 인상지어집니다.

이런 인상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은 죽으면 천국 간다’는 개념이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나 ‘천국 간다’는 말이 죽음 이후의 특별한 사후세계에로 들어가는 것을 가리키는 의미라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죽음 이후의 사후세계와 연관된 개념이라기보다는 현세에서의 행위에 근거한 심판경고 문맥 속에서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천국 간다’에 대한 바울의 입장
바울은 ‘죽는 것’을 ‘잠자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살전4:13~15). 그렇다면 바울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대로 죽으면 가게 되리라는 사후세계에 대해서는 개념이 없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을 통해 죽은 사람의 영혼은 그 육체와 분리되어 육은 흙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지구와 전혀 다른 별도의 세상에 들어간다는 그림을 그릴 수 없습니다. 오히려 재림주께서 오시면 죽었던 사람들이 마치 잠자다가 일어나는 것처럼 주를 만난다는 그림이 그려집니다. 바울의 가르침이 잘못된 것일까요?

누가복음에 분명히 나타나는 ‘사후의 세계’
바울의 가르침과는 다르게 우리는 사람이 죽은 후에 그 영혼은 육체와 분리되어 믿는 사람은 ‘천국 간다’는 개념에 아주 잘 들어맞는 누가복음의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에 따르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던 두 강도 중 한 사람은 ‘너는 오늘 밤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는 은총의 말씀을 들었습니다(23:43). 여기서 우리는 어렵지 않게 사람이 죽으면 곧 그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어 육체는 썩게 되고 영혼은 천국을 가든지 지옥을 가든지 판가름 나게 된다는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됩니다.

이런 생각은 누가복음이 전하는 다른 내용에 의해 재차 확인됩니다. 누가복음이 전하는 내용에 의하면 거지 나사로는 죽어서 아브라함의 품에 안깁니다. 그러므로 죽은 자들의 영혼은 그 육체와 분리되어 어떤 사람은 천국에 가고 어떤 다른 사람은 지옥에 가게 된다는 의심할 수 없는 명백한 그림 같은 말씀과 만나게 됩니다(16:22~23).

누가복음의 헬라 철학적 개념과 바울의 히브리식 개념의 차이
누가복음에 나타나는 이런 개념은 인간존재를 영혼과 육체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헬라철학의 이분법적인 이원론에 영향을 받은 시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형적인 헬라철학의 이분법적 관념론에 근거한 인간론에 바탕을 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헬라철학은 인간존재를 비물질적인 정신영역으로서의 영혼과 물질적인 영역으로서의 육체로 구성되었다고 봅니다.

이런 인간론에 영향을 받은 누가복음에 따르면 인간존재는 영혼과 육체로 된 이중구조의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의 죽음과 죽음 이후의 상태에 대한 관념이 바울과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영육이 분리되는 이중구조의 인간론 개념을 전혀 알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헬라철학적 인간론이 아니라 히브리식 인간론 개념을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식 인간론에 따르면 인간은 영혼과 육신이 분리되거나 영혼이 육신에서 이탈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가 없습니다. 인간존재는 영육을 분리할 수 있는 이중구조로 된 두 차원의 결합이 아니라 이 둘을 결코 따로 분리할 수 없는 완전통합체로서의 존재로 보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생각이 수정되어야 할까?
그렇다면 바울과 누가복음 중에 어느 한 쪽이 틀렸거나 수정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마태복음이 동시에 말씀하고 있는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표현과 ‘천국에 들어간다’는 표현을 어떻게 조화시켜야 하는 것일까요? 왜 성서의 표현은 이렇게 일관되지 못하게 이렇게도 표현되고 저렇게도 표현되어 있는 것일까요? 어느 표현이 맞는 겁니까? 믿는 사람이 죽을 경우 그 영혼은 육체에서 분리되어 천국으로 가고 세상을 살면서 함께 했던 육체는 매장되거나 화장되어 없어지지만 부활의 때에는 새로운 몸을 입는 것이 진정한 성서의 내용이 아닐까요? 그렇게 볼 경우 바울의 가르침은 뭡니까?

*누가복음에 나타나는 사후세계 관련 본문은 ‘강도의 예수에 대한 고백’과 ‘부자의 사회적 무책임’이라는 주제 하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따라서 누가복음의 이원론적 사고에 의한 영혼의 육체이탈, 혹은 육에서 영혼이 분리되어 사후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그림이 위치하는 문맥은 "예수를 고백하는 강도의 믿음"과 나사로를 전혀 돌보지 않았던 "부자의 사회적 무책임"에 대한 형벌을 말하는 곳에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내용으로 볼 때 분명하게도 누가복음은 헬라철학의 이원론에 근거하여 사후세계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사람이 죽은 후에 그 영혼이 육체에서 이탈하거나 분리되어 사후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가르침을 주려는 목적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누가복음은 강도의 고백을 통해 "믿음에는 반드시 보상"이 있으며 지옥에 간 부자의 모습을 통해 "사회적 행위가 없는 자들에게는 반드시 그에 대한 댓가가 주어지게 될 것"이라는 교훈을 위한 문학적 장치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누가복음에 사후세계를 말씀하는 내용이 있다고 해서 문자로 나타난 겉표지적인 표현인 그것만 갖고 사후세계에 대해 비신학적이고 비성서적인 자기주장을 되풀이하거나 타성화된 관습적 생각을 진리인 것처럼 생각하는 오류에서 벗어나도록 해야 합니다.

‘천국 간다’는 말은 믿는 자의 죽음을 가리키는 표현
‘천국 간다’는 말은 사실 ‘죽는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천국 간다’라고 말할 때 그것은 믿는 자가 죽었다는 뜻의 표현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신앙적인 소망을 담아 생전에 예수를 구주로 고백하고 믿었으니 죽은 후에는 죽음의 세력에서 건짐 받아 죄와 죽음과 질병의 세력에서 자유케 되었음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그림으로 그려지는 것이지요.

이것은 “구원”의 개념을 이 땅에 있는 죄와 고통과 질병과 죽음의 세력에서 벗어나 영원한 복락의 나라인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장소이동 개념으로 이해하는 관습에서 추출된 언어표현입니다. 따라서 ‘천국 간다’는 말은 장소이동이나 공간이동을 생각하게 되는 그림과 연관되어 죽음에서 생명으로의 이동을 표현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말은 심판개념의 표현
그런데 이런 일반적인 이해와는 달리 세례요한과 예수께서는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사람 쪽에서 움직이는 장소이동이나 공간이동의 그림과는 전혀 상관없는 표현입니다. 하나님 쪽에서 행하시는 ‘심판개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은 이 심판을 피하기 위하여 ‘회개해야 한다’고 말했던 겁니다.

세례요한이 말한 ‘회개하라’는 방향전환을 뜻합니다. 하나님을 등지고 살던 모습에서 방향을 돌이켜 이제는 하나님을 마주대하고 사는 모습으로 그림이 바뀌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회개하라’는 것은 ‘돌이켜 하나님과 마주하라’는 의미가 됩니다. 그럴 때 ‘나를 향해 다가오는 하나님의 나라’를 맞아들일 수 있게 된다는 말씀이지요.

‘죽으면 가는 나라, 또 다른 공간? 지구 말고 다른 장소?’
따라서 세례요한에 의하면 ‘죽으면 가는 나라, 하나님 나라’는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로 돌이키면 살아서 맞게 되는 나라, 하나님 나라’가 있을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례요한에 의하면 ‘믿는 사람이 죽으면 가는 나라, 하늘나라’가 아니라 ‘돌이켜 하나님을 마주하면 죽음과 상관없이 맞는 나라, 하나님 나라’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세례요한이 말하는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선포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표현하는 ‘천국 간다’의 개념과 전혀 같지 않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천국 간다’는 말은 믿음의 사람들이 죽을 때 이 세상과는 다른 곳으로 이동하게 된다는 생각이 들어간 ‘공간이동’이나 ‘장소이동’의 그림인데 그것은 죽은 이후의 삶을 소망하는 헬라철학의 이분법적인 사고인 이원론에서 유발된 상상적 표현입니다.

세례요한이 전파한 ‘천국이 가까이 왔다’를 “믿는 사람이 죽으면 가는 나라, 하늘나라”라는 장소이동이나 공간이동의 개념(눅16:22; 23:43; 고후12:4; 계2:7 참조)으로 이해한다면 아마도 천체 물리학적인 해석을 가하는 ‘비신학적 견해’가 난무하게 될 겁니다. ‘가까이 왔다’로 표현되었으니 지구와는 전혀 다른 하나님이 다스리는 별도의 세계가 천체 망원경으로 관측될 정도는 되어야 할 테니까요.

하나님은 인간세계의 시간에 제한을 받지 않으시니까 지구에서 몇 십만 광년 떨어진 곳쯤에 하나님의 통치가 있는 또 다른 공간이나 장소로서의 새 나라가 이르렀어도 ‘가까이 왔다’라고 표현될 수 있을까요? 그렇게 주장한다면 별로 할 말은 없겠습니다. 성서본문을 신학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아님이 분명하기 때문이니까요. 하지만 세례요한 이후 오늘날까지 세례요한이 전파한 이 표현에 대해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천체 물리학적인 견해를 주장하는 비신학적인 해석’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말의 신학적 의미
그렇기 때문에 세례요한이 선포한 ‘천국’이 무엇인지에 대해 잘 이해하려면 ‘장소이동’ 개념도 아니고 ‘공간이동’ 개념도 아닌, ‘삶의 방향전환’ 개념을 가져야 합니다.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말은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있다가 심판받지 말고 돌이켜 하나님의 지배를 받는 천국의 삶을 살도록 하라는 뜻으로 전파된 말씀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합니다.

회개와 천국맞이
세례요한과 예수의 선포인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선포에 근거하여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회개하지 않으면 그 사람에게 천국은 없다’는 교훈입니다. 이것은 죽은 후를 기약하는 내용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천국은 죽어서 가는 나라’가 아니라 지금 살아 있는 중에 맞아 누려야 하는 나라입니다. 하나님께로 방향을 전환하여 누려야 하는 현재적인 나라입니다.

따라서 죽어서 다른 장소나 공간으로 이동하는 것을 ‘천국 간다’고 말하기보다는 살아서 하나님의 지배를 받는 삶을 살도록 인생 방향을 바꾸는 것을 ‘천국 가는 것’이라고 해야 적절합니다. 세례요한이나 예수께서 선포한 ‘가까이 와 있는 천국’은 살아 있는 자들의 현재의 삶을 향해 외친 회개의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세례요한과 예수께서 선포한 천국은 ‘죽으면 가는 나라’가 아니라 살아서 누리는 나라를 지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살아서 누리는 천국은 심판받지 않도록 방향이 전환된 삶일 때 경험되는 나라입니다. 세례요한에 의하면 살아서 누리는 천국의 삶은 알곡의 삶입니다. 사람이 알곡의 삶을 살려고 노력해서 얻게 되는 삶이 아니라 회개하고 방향을 바꾼 자가 예수와 함께 살 때 맺게 되는 열매입니다(12절 참조).

‘천국 간다’는 말의 성서적 이해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믿는 사람들이 죽으면 가게 되는 별도의 공간이나 장소’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므로 천국이 있네 없네, 지옥이 있네 없네로 갑론을박하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않다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우주 공간 어디에 있을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하는 특정 장소로서의 천국개념이나 죽으면 간다는 식의 영혼분리, 혹은 육체이탈에 의한 공간이동을 상상하면서 ‘죽으면 가는 나라, 하나님 나라’ 대한 믿음이 있네 없네 하며 열을 올리고 상대방에게 천국을 부인하네 어쩌네 하며 성질부리며 나대는 것은 결코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말씀을 적절하게 해석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천국 간다’는 말의 뜻은 오히려 세상에서 살 때 ‘하나님께 등 돌리고 살다가 방향을 돌이켜 하나님의 지배를 받는 삶을 산 후 지상에서의 수를 다하고 잠자는 것처럼 된 상태(바울적 관념)’를 말하는 것이라고 이해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성서적 내용에 충실한 ‘천국관’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에 의하면 성도의 부활은 재림주의 강림과 함께 자다가 일어나 맞이하는 것과 같이 될 상황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살전4:13~18 참조).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말의 뜻
한편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말은 아직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이 말과 연관되어 ‘천국 간다’는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이미 앞에서 연구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두 가지 입니다. 하나는 ‘가까이 왔다’는 말의 뜻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에 대한 이해입니다.

‘가까이 왔다’는 말은 지리적인 거리나 시간적인 거리를 통해 나타나는 대로 하나님의 심판이 “곧 있을 것”이라는 임박성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하나님의 나라인 천국이 완성될 때가 “거의 다” 되었다는 뜻을 갖습니다. 따라서 이 말을 통해 분명하게 정립할 수 있는 개념은 “천국은 왔다. 그러나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다”입니다. 하지만 ‘가까이 왔다’는 말은 “곧 완성될 것”이라는 뜻이므로 지금은 하나님의 나라, 곧 천국이 완성을 향해 ‘현재진행 중’임을 말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의미를 염두에 두고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말의 뜻을 살필 때 우리는 죽은 후에 있을 영혼의 공간이동이나 장소이동에 관한 그림을 그릴 수 없음을 알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 표현은 죽은 후에 맞게 될 천국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동안 누려야 할 참다운 기쁨으로서의 하나님의 지배를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천국에 간다’와 성도의 죽음의 개념
그러므로 결론적으로 우리의 용어가 바뀌어 그 표현을 통해 나타내는 천국의 개념이 새롭게 규정되어야 하겠다는 생각에 이르게 됩니다.

천국이란 믿는 사람이 죽어서 가는 나라? 육체에서 분리된, 혹은 육체에서 이탈한 영혼이 이동하는 특별한 저 우주의 어떤 장소? 지구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어떤 공간?..... 그러므로 ‘천국 간다’는 말은 죽은 후에 가게 되는 지구 이외의 또 다른 공간? 장소?

No.... 그런 개념이 아니고..., 살아있는 동안 지금 여기서 하나님과 함께 경험하는 하나님의 통치, 성도들에게 허락되는 특별한 하나님의 지배, 믿는 자들을 위한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복된 삶, 바로 그런 복을 누리는 현재적인 지상에서의 삶, 그러나 그런 삶이 완성되지 않은 나라, 예수 재림 때에 완성될 새 하늘과 새 땅,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충분히 경험할 수 있는 복된 삶, 그 후에 세상에서의 수를 다한 뒤 재림의 때까지 편하게, 아주 편하게 마치 잠자는 것과 같은 상태로 들어가는 것! 그래서 죄와 질병과 고난과 죽음을 비롯한 모든 악의 세력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진 상태!.... 를 말하는 표현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기술할 수 있겠습니다.

따라서 ‘천국 간다’는 말의 뜻을 죽은 후에 영혼이 육체에서 이탈하여 어느 공간이나 특정 장소로 이동하는 개념으로 이해하지 말고 지금 살아 있는 동안 예수와 함께 사는 현재적인 삶이 완성되는 때를 의미하는 표현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더 신학적이며 성서적이라는 점을 상기해야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표현의 신학적이며 성서적인 개념도 ‘천국 간다’는 개념과 함께 포괄적으로 이해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경험하여야 하는 천국은 죽은 이후에나 비로소 가능한 그런 종류의 나라가 아닙니다. ‘지금 여기서’ 경험하다가 주의 재림과 함께 참여하게 될 완전한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천국 간다’는 말은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말과 함께 긴요하게 사용되어야 하는 ‘현재적 표현’이라는 점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천국은 성도가 살아 있는 동안에도 넉넉하게 누려지는 특별한 복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박경은
감신대및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신학박사(신약학)학위를 취득했다. 성서신학의 현장화를 추구하며 한책의교회를 담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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