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4복음서의 각 역할-(마태오,마르코,루카,요한)복음에 관한 이해
세례자 요한에게 찾아 가서 받은 예수님의 <세례식>은 카톨릭의 신자들에게는 크게 2 가지의 의미가 있다.첫번째 의미로는 <7성사> 중의 하나인 - <세례성사>의 중요성에 관한 가르침이다. 동시에, 이 사건은 공식적으로 예수님이 대중 앞에서 당신을 선 보이신 <무대 데뷔식>이었다는 점이다.이렇게 의미 있는 세례로 데뷔식을 마친 예수님이 산에 올라 두 번째 과정을 통과하신다.바로 사탄과의 한판승-이를 통해서 하느님이 예수님과 함께 하심을 인증 받으신다.
마르코 복음서의 저자인 '마르코'는 베드로 사도가 아들과 같이 아끼는 제자였다. 그의 유대식 이름은 '요한'이었다. 당시 사람들은 유대식 이름과 희랍어 이름을 동시에 갖는 것이 흔한 일이었다. 마르코는 열심한 믿음을 지녔던 그의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베드로 사도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또한 마르코는 희랍어에 능통했기 때문에 베드로 사도의 통역사로 전교의 일선에서 많은 활동을 할 수 있었다. 베드로 사도가 청중에게 복음을 전할 때 마르코는 예수 그리스도의 기쁜 소식에 관해 자연스럽게 많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베드로 사도가 전하는 주님의 복음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정리한 내용이 바로 '마르코 복음서'였다.
마르코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은 예루살렘 초대 교회의 산실이었다. 마르코의 어머니는 자신의 집을 예배모임의 장소로 기꺼이 봉헌했다. 마르코의 어머니는 자신의 집을 신도들이 모임의 장소, 즉 교회로 사용할 수 있게 했을 정도로 신심이 깊었다. 이런 신심을 가진 어머니 밑에서 자라고 영향을 받은 마르코도 자연스럽게 어머니의 신심을 본받았을 것이다.
마르코의 집에서 주님의 제자들과 신자들이 함께 모임과 예배를 가졌다. 그러다 보니 마르코는 자연히 사도들과도 잘 알게 되었고, 세례를 베푼 베드로 사도와는 아주 절친한 사이가 되었던 것 같다. 그 단적인 예로 헤로데에 의해 감옥에 붙잡힌 베드로가 천사의 도움으로 탈출해서 제일 먼저 찾은 집이 바로 마르코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이었다.
죽음의 위기에서 탈출한 베드로가 마르코의 집을 찾아 문을 두드렸다. 그러자 여종이 나와 베드로의 목소리를 듣고는 너무 반가와 황급히 안으로 들어가 소리쳤다.
"베드로 사도께서 문 앞에 와 계십니다."
그러나 안에서 기도하고 있던 신도들은 여종의 말을 도대체 믿으려 하지 않았다.
"무슨 소리 하니? 야, 너 미쳤구나!"
그러나 계속해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서 문을 열었다. 정말 베드로 사도가 거짓말처럼 문 밖에 서 있는 것을 보고 모두 깜짝 놀랐다.
베드로 사도는 "쉿, 조용히들 하시오. 내가 감옥에서 천사들의 도움으로 빠져 나오게 된 경위를 다 말하리라. 어서들 들어가십시다." 하면서 그간의 경위를 알려주었다.
마르코 어머니의 집은 대문을 지키는 여종이 있었던 재산이 많은 큰 주택이었던 것 같다. 또한 남편의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과부였던 것 같다. 그리고 마르코는 유명한 바르나바 사도와는 사촌지간이었다. 그래서 오순절 이후 유대지방에 큰 기근이 들었을 때 예루살렘에 구호를 위해 바르나바 사도가 바오로 사도와 함께 올라온 적이 있었다. 처음으로 사도 바오로는 마르코를 만나게 되었다. 바오로 사도는 대뜸 마르코의 됨됨이와 능력을 보고 자신들과 함께 같이 일할 것을 권고했다.
"마르코, 우리 같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활동을 하지 않겠나? 우리 같이 떠나세."
"저는 모든 게 아직 부족한 사람인데요.…"
"이 사람 겸손하기는 아무 말 말고 함께 떠나세."
두 사도는 예루살렘을 떠날 때 마르코를 데리고 갔다. 마르코는 바오로와 바르나바 사도와 함께 얼마동안 동고동락하며 전도 활동을 했다. 바오로 일행이 바포에서 배를 타고 밤필리아 지방 베르게로 건너갔을 때였다. 마르코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갑자기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선생님, 저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무슨 소리야, 이제 전도여행이 시작인데…"
마르코는 만류하는 바오로 사도와 헤어져 결국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바오로 사도는 몹시 실망했다. 그만큼 마르코에게 기대가 컸던 탓이었다. 부유한 생활을 했던 마르코가 바오로 사도의 권고에 따라 따라나섰지만 앞에 놓여있는 어려움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을 것이다. 베르게에서 시작되는 전도여행 앞에는 홍수 등 자연적인 재해, 유대인의 박해, 풍토병, 강도의 위험 등이 바오로 사도 일행을 괴롭혔다. 결국 두려움과 어려움을 이기지 못한 마르코는 일행에서 혼자 빠져 나와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던 것이다.
마르코는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깊은 좌절감에 빠졌다. 용기 없는 자신이 너무 초라하고 참담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예루살렘에 돌아온 마르코는 얼마 후 다시 용기를 내어 주님의 복음 전파자로 활동을 하게 되었으며, 베드로 사도의 통역을 맡아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열심히 전했다.
마르코는 과거의 실패를 거울삼아 다시 일어서는 기회로 삼았던 것이다. 마침내 초대교회에서 전승을 모아 마르코 복음서를 저술해서 오늘날의 신앙인들에게 귀한 복음을 전해주었다. 마르코에게 있어서 신앙의 길은 좌절과 낙담을 반복하면서도 끝내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었다. 최후의 승리가 진정한 승리인 것이다.
루가는 잠시 눈을 감고 지난 시간을 회고했다. 머리 속으로 지나가는 젊은 시절, 수없이 많은 일들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 중에서도 자신의 일생을 한 순간에 바꾸었던 사도 바오로와의 만남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사건이었다. 루가는 자신의 일생을 결코 사도 바오로의 삶과 떼어 생각할 수 없었다.
사도 바오로와의 만남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지금 생각하면 모든 것이 하느님께서 섭리하고 준비하신 만남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아주 우연히 사도 바오로의 주치의 노릇을 하면서 그의 전도에 도움을 주게 되었다. 사실 사도 바오로는 고질병을 갖고 있었고 전도 중에도 자주 육체적인 질병과 고통으로 신음하였다. 그때마다 루가는 사도 바오로의 곁에서 극진하게 간호하곤 했었다. 루가는 유다인이 아니라 안티오키아 출신의 시리아 사람이었다. 그의 직업은 사람들의 병을 고치는 의사였다. 그런데 사도 바오로의 인간적 인품에 매료되어 그의 제자가 되었던 것이다. 그는 사도 바오로를 만난 후 진정한 영혼의 의사이신 그리스도를 만나고 주님으로 받아들였다.
그 후에 루가는 사도 바오로의 충실한 동반자이며 제자가 되었다. 사도 바오로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함께 따라 다니려고 노력했다. 루가는 모름지기 신의와 충성을 중요시하는 충실한 사람이었다. 사도 바오로를 같이 따랐던 사람들이 가끔씩 세상의 유혹과 어려움에 굴복하여 바오로를 떠났어도 루가는 항상 사도 바오로의 곁을 지켰다.
그는 자신이 전해 들어 알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소식을 기록하기로 작정했다. 루가는 이미 많은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을 기록했지만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위해서 그 분의 생애를 보다 객관적으로 기록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는 의사였기 때문에 모든 것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면밀히 조사하고 관찰하고 기록하는 직업 의식이 몸에 배 있었다. 또한 그는 특히 뛰어난 필체와 문학가로서의 능력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드디어 전해 들은 구전 지식과 전승들을 모아놓고 붓을 들어 편지 형식으로 복음서의 첫머리를 써 내려갔다.
"존경하는 테오필로님, 우리들 사이에서 일어난 그 일들을 글로 엮는 데 손을 댄 사람이 여럿 있었습니다. 그들이 쓴 것은 처음부터 직접 눈으로 보고 말씀을 전파한 사람들이 우리에게 전해준 사실 그대로입니다. 저 역시 이 모든 일을 처음부터 자세히 조사해둔 바 있으므로 그것을 순서대로 써서 각하에게 써 보내드리는 것이 옳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오니 이 글을 보시고 이미 듣고 배우신 바가 틀림없다는 것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루가 1,1~4)
루가 복음의 첫 대목만 보아도 저자가 얼마나 지혜롭고 명석한 지식인지를 쉽게 알 수 있다. 그는 자신의 글의 재료와 편집의 방법과 목적을 분명히 밝히면서 논리 정연하지만 들뜨고 감격스런 마음으로 마치 신앙을 고백하듯이 복음서의 글을 써 내려가고 있다.
루가는 자신 안의 어떤 큰 힘에 이끌려서 글을 쓰고 있는 것을 자주 체험하게 되었다. 루가는 자신 안에서 활동하시는 분이 자신을 구원해주신 주님이란 사실을 한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마치 자신은 하느님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는 영적 체험을 한껏 할 수가 있었다. 물론 자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실제로 만나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오랜 시간 사도 바오로와 동고동락하면서 그를 통해 알게 된 예수 그리스도를 마치 살아있는 분으로 느끼곤 했다.
그는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가 병든 몸과 영혼을 치유하는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에 매력을 느꼈다. 루가는 육신의 질병을 고치는 의사이기도 했지만 한편 죄악으로 곤란함에 빠져있는 영혼들을 치료하는 의사가 되고자 했다. 특히 이방인 지역에는 죄악에 빠져 허덕이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루가는 이런 상황이 후손들에게 그대로 전수되는 것을 막고자 마음 먹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체계 있게 기록하여 구원의 기쁜 소식을 널리 전하고자 했던 것이다.
루가는 지식의 사람이요, 활동가인 동시에 덕이 높은 신사로 존경받았고 사도 바오로가 "사랑을 받는 의원 루가"라고 칭송해 주었다. 그 모든 것이 루가는 자신 안에서 늘 활동하시고 이끌어주시는 주님의 은혜라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 루가는 자신의 지식을 가지고 교만하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의 재능으로 모든 이에게 겸손되이 봉사하였으니 사랑을 받아 마땅한 인격자였다. 루가는 오늘날도 우리에게 아름다운 필체로 살아있는 주님을 전해주고 있다.
[평화신문, 제666호(2002년 3월 10일),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성서못자리 전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