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서 (1) 예수님의 땅 팔레스티나
송창현(미카엘)|신부,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성서학
환경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특히 지리적 환경과 기후는 사람의 삶과 그 지역의 정치, 경제, 역사, 문화, 사상, 종교에 큰 영향을 미친다. 역사의 예수님을 이해하는데도 그분이 사셨던 환경을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는 그분이 태어나서 사셨던 땅, 가르치시고 기적을 행하셨던 땅, 돌아가셨으나 부활하신 그 땅으로의 여행을 떠나려 한다. 우리는 역사의 예수님이 사셨던 발자취를 따라 나서려고 한다.
팔레스티나
예수님이 사셨던 땅을 우리는 가나안, “약속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거룩한 땅”, 이스라엘, 팔레스티나 등으로 부른다. 구약의 성조시대 때 이 땅을 가나안이라고 불렀는데, 하느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시기로 약속한 땅이라서 “약속의 땅”(창세 12,7; 13,15 등)으로도 불렀다. 또 “젖과 꿀이 흐르는 땅”(탈출 3,8; 레위 20,24; 민수 14,8 등)이라는 표현도 구약성경에 나온다. 이 땅을 여호수아가 점령한 이후에는 “이스라엘 땅”으로 불렀고, “거룩한 땅”(즈카 2,16)으로도 불렀다. “팔레스티나”라는 명칭은 본래 지중해 연안에 살았던 필리스타인들이 살았던 지역을 가리키는 필리스티아에서 유래하였다. 이 용어는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기원전 5세기)가 사용하였으며, 로마 제국 시대인 기원후 134년에 제2차 유다 봉기를 진압한 하드리아누스 황제(117년~138년)가 사용하였다.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 이후 1919년부터 1948년까지 영국의 위임통치하에서 팔레스티나라는 공식 명칭이 사용되었다.
예수님의 땅 팔레스티나를 가리키는 구약성경의 경계는 북쪽의 단에서 남쪽의 브에르 세바에 이르기까지(판관 20,1; 1사무 3,20 등)이다. 즉 북쪽 경계는 헤르몬 산에 이르고 남쪽 경계는 네겝에 이른다. 그리고 서쪽은 지중해에 닿고 동쪽은 요르단 강의 동부에 이른다. 팔레스티나는 남북의 길이는 242km에 이르고, 동서로는 북부의 경우 지중해에서 갈릴래아 호수까지가 45km, 남부는 지중해에서 사해(死海)까지가 87km에 걸쳐 있다.
지정학적 위치
팔레스티나는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를 연결하는 “비옥한 초생달 지역”의 한 부분이다. 북쪽으로는 시리아를 거쳐 소아시아와 유럽으로 이어지고 동쪽으로는 메소포타미아와 아시아로 연결된다. 남쪽으로는 이집트 등 아프리카로 이어진다. 이와 같이 팔레스티나는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의 세 대륙을 연결하는 지정학적 요충지에 위치한다.
지형
팔레스티나는 지형적인 특징에 따라 지중해 해안 평야 지대, 중앙 산악 지대, 요르단 강 계곡 지대로 나눌 수 있다.
① 지중해 해안 평야 지대
지중해 해안을 따라 북쪽의 아코에서 남쪽의 가자 지역까지 약 270km에 걸쳐 평야 지대가 있다. 이것은 해안에서 안쪽 40km까지 펼쳐진 비옥한 평야지대이다. 북쪽에서 남쪽으로 페니키아 평야, 아코 평야, 도르 평야, 사론 평야, 필리스티아 평야가 있다.
해안 평야 지대는 해발 200m 이하의 지역으로 중요한 국제 도로인 바닷길(Via Maris)이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를 연결하는 교통로가 되었다.
이 지중해 해안 평야 지대에는 아코, 도르, 카이사리아, 야포, 아스돗, 아스클론, 가자 등의 도시가 형성되었다.
② 중앙 산악 지대
해안 평야 지대의 동쪽에는 중앙 산악 지대가 있다. 이 지역은 평균 해발 500~700m 정도로, 북쪽 레바논 산맥의 연장으로써 해발 600m 이상의 상부 갈릴래아 산악 지대, 600m 이하의 하부 갈릴래아 산악 지대, 사마리
아 산악 지대, 에프라임 산악 지대, 유다 산악 지대, 그리고 남쪽의 네겝 지역으로 연결된다. 이렇게 중앙 산악 지대는 팔레스티나의 등뼈 역할을 한다. 이 중앙 산악 지대에 위치한 도시들은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는데, 예루살렘과 사마리아는 남북 왕국의 수도였으며 헤브론, 베들레헴, 베텔 등이 중요하다.
③ 요르단 강 계곡 지대
이 계곡 지대는 북쪽의 헤르몬 산에서부터 갈릴래아 호수, 요르단 강, 사해 지역까지 지층의 침강으로 형성된 단층 지역을 가리킨다. 이곳은 해수면보다 낮은 지역으로 사해 지역은 해저 400m에 이른다. 이 지역에는 오래 전부터 거주지가 형성되었는데, 발달된 도시로는 예리코, 벳 스안(스키토폴리스), 펠라 등이 있다.
기후
팔레스티나의 1년은 크게 우기와 건기로 나뉜다. 우기는 10월경에 시작해서 4월경까지 계속된다. 연중 강우량의 70%가 11~2월 중에 집중된다. 우기라고 해서 매일 비가 오는 것은 아니고 대략 우기 중의 절반 정도에만 비가 온다. 1월이 습도가 가장 높고 가장 춥다. 기후적인 면에서 팔레스티나는 일반적으로 지중해성 기후이다. 요르단 강 계곡 지대는 스텝 기후, 예리코 일대는 아열대성 기후이다. 그리고 네겝 지역은 사막 지대이다.
예수님은 기원후 1세기 전반부에 팔레스티나에 사셨던 유다인이셨다. 당시는 지리적으로 북쪽에는 갈릴래아 호수와 요르단 강을 동쪽 경계로 하는 갈릴래아 지방, 그 남쪽은 사마리아 지방, 그리고 그 남쪽은 유다 지방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예루살렘은 이 유다의 수도이며 유다인들의 종교 생활의 중심지였다. 우리는 예수님이 사셨던 땅 팔레스티나에서 그분의 발자취를 찾으려 한다. 예수님의 땅에서 신약성경의 복음서를 다시 읽으려 한다. 우리는 복음서에 나타나는 베들레헴, 나자렛, 갈릴래아 호수, 카파르나움, 벳사이다, 카나, 카이사리아 필리피, 예리코, 벳파게, 베타니아, 예루살렘, 엠마오 등지에서 예수님의 가르침과 행적을 찾으려 한다.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 나서는 이 여행에 여러분을 초대한다.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서 (2) 베들레헴
송창현(미카엘)|신부,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성서학
베들레헴은 이스라엘의 두 번째 임금인 다윗이 태어나고 자라난 곳이며, 무엇보다 예수님이 탄생하신 곳으로 유명하다. 베들레헴의 지명은 히브리어로 “빵(레헴)”의 “집(벧트)”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위치와 지형
베들레헴은 예루살렘으로부터 남쪽으로 약 10km 떨어진 곳으로 해발 777m 지점의 석회암 언덕 위에 형성된 마을이다. 팔레스티나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중앙 산악 지대에 위치한 이곳은 이집트에서 헤브론을 거쳐 메소포타미아에 이르는 주요 대상로(隊商路)에 위치했다.
구약성경의 베들레헴
구약성경에서 베들레헴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것은 야곱의 사랑스런 아내인 라헬의 죽음과 관련 있다. 그녀는 베텔에서 베들레헴으로 가던 중에 야곱의 열두 번째 아들인 벤야민을 낳고 죽게 되었다. 그래서 그녀는 에프라타, 곧 베들레헴으로 가는 길 가에 묻혔다.(창세 35,16~20) 그리고 판관 19,1에서 베들레헴은 유다 땅으로 소개된다. 룻기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장소는 유다 베들레헴이다. 즉 나오미와 보아즈의 고향이 베들레헴이다. 나오미의 며느리인 모압 출신 룻은 보아즈와 결혼하여 오벳을 낳았는데, 오벳은 이사이를 낳고 이사이는 다윗 임금을 낳았다.
1사무 16,1~13에 따르면, 베들레헴은 다윗이 태어나서 자란 곳일 뿐 아니라 사무엘로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곳이다. 그 후 베들레헴에는 필리스티아인들의 수비대가 있었고(2사무 23,14), 르하브암 임금은 그곳에 견고한 성읍을 세웠다.(2역대 11,6)
특히 베들레헴이 주목 받고 메시아 신앙의 중심지가 된 것은 미카 5,1의 예언 때문이다. “너 에프라타의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의 부족들 가운데에서 보잘 것 없지만/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을 다스릴 이가/ 너에게서 나오리라.” 즉, 메시아는 다윗의 후손으로서 다윗의 고향인 베들레헴에서 태어나리라는 것이다.
신약성경의 베들레헴
마태 2,1-12에 따르면, 헤로데 임금 때에 예수님이 유다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고, 동방 박사들이 그분을 경배하였다. 그 후 마태 2,16~18은 헤로데가 베들레헴과 그 온 일대에 사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들을 학살하였다고 전한다. 그리고 루카, 2,1~20에 의하면, 요셉과 마리아는 호적 등록을 위해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 고을을 떠나 유다 지방 베들레헴이라고 불리는 다윗 고을로 갔다. 거기에 머무는 동안 마리아는 해산하였고 아기 예수님을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뉘었다. 그 고장에서 들에 살면서 양떼를 지키던 목자들이 예수님을 찾아 와 경배하였다.
요한 7,41~42에서는 군중 중의 사람들이 “메시아가 갈릴래아에서 나올 리가 없지 않은가? 성경에 메시아는 다윗의 후손 가운데에서, 그리고 다윗이 살았던 베들레헴에서 나온다고 하지 않았는가?”라고 말한다. 이것은 예수님 당시의 유다인들이 메시아와 관련하여 가지고 있던 생각을 잘 드러낸다.
중요 순례 장소
베들레헴의 여러 중요한 장소들 중에서 예수님의 탄생과 관련된 몇 곳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① 예수 성탄 성당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인 최초의 로마 제국 황제는 콘스탄티누스이다. 그의 어머니 헬레나 성녀는 324년 베들레헴에 와서 예수님의 탄생지로 전해 오던 동굴에 순례하였다. 사실 기원후 2세기의 그리스도교 전승에 따르면 예수님이 베들레헴의 동굴에서 태어나셨다고 한다. 이 전승은 나블루스 출신의 유스티누스 교부가 150년경에 쓴 “트리폰과의 대화”와 외경 중의 하나인 “야고보의 원 복음서”에 의해 전해진다. 헬레나 성녀는 이 동굴 위에 성당을 세우게 하였는데, 339년 5월 31일에 완성된 성당이 축성되었다. 콘스탄티누스 성당으로 불렸던 이 첫 번째 성당은 불행히도 화재로 소실되었다. 오늘날의 예수 성탄 성당은 531년에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에 의해 세워졌다. 지금은 그리스 정교회의 소유인데, 현재의 성당에서 옛 콘스탄티누스 성당의 모자이크와 팔각형 구조를 발견할 수 있다.
② 겸손의 문
아르메니아 수도원을 오른쪽에 두고 구유의 광장이라 불리는 넓은 광장을 지나 예수 성탄 성당을 향해 걷다보면 성당의 출입문을 만난다. 이 출입문은 시대에 따라 여러 차례 변화를 겪었다. 오늘날에도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때의 성당 상인방을 확인 할 수 있는데, 그 아래에는 중세 시대의 아치 모양의 출입문 흔적이 있다. 그 아래에 있는 현재의 출입문은 높이가 1.2m, 너비는 80cm가 채 되지 않는 매우 작은 형태이다. 이것은 말이나 마차를 타고 성당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작게 만든 것으로서 누구든 예수 성탄 성당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머리를 숙여야 한다. 그래서 이 출입문을 “겸손의 문”이라 부른다.
③ 예수 탄생 동굴의 은색 별
예수 성탄 성당의 중앙 제대에서 계단으로 내려가면 예수 탄생 동굴이 있다. 이 동굴은 그리스 정교회의 소유인데, 동굴 바닥에는 베들레헴의 별이라 불리는 은색 별이 있다. 이것은 예수님의 탄생 지점을 가리킨다. 14조각의 은색 별은 마태오 복음서의 예수님 족보가 14대씩 나누어진 것을 상징한다.
이 베들레헴의 별은 마태 2,1~12의 동방 박사들이 별의 인도로 아기 예수님을 발견하게 된 사실을 떠올리게 한다. 성경에서 메시아와 관련되는 별의 이미지는 민수 24,17의 발람 예언인 “야곱에게서 별 하나가 솟고/ 이스라엘에게서 왕홀이 일어난다.”에서 유래한다.
④ 성 가타리나 성당
예수 성탄 성당의 왼쪽에는 근대식으로 지어진 가타리나 성당이 있는데, 가톨릭 교회 소유로서 1881년에 프란치스코회의 수도자들에 의해 세워졌다. 이 성당에서는 매년 성탄 자정 미사가 예루살렘 총대주교의 주례로 거행되는데, 이 미사는 전 세계로 생중계된다. 여담으로 가톨릭 교회와 개신교회는 성탄절을 12월 25일에 지내는데, 그리스 정교회는 1월 6일, 아르메니아 교회는 1월 18일에 성탄절을 지낸다.
⑤ 예로니무스 성인의 동굴
가타리나 성당의 계단을 통해 지하로 내려가면 근처의 예수 탄생 동굴과 비슷한 여러 동굴들이 있다. 그 중의 한 동굴에서 예로니무스 성인이 386년부터 34년간 머물면서 신·구약 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하였는데, 이것이 불가타(Vulgata) 성경이다.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서 (3) 나자렛
송창현(미카엘)|신부,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성서학
예수님은 “나자렛 출신”(마태 21,11; 요한 1,45; 사도 10,38) 혹은 “나자렛 사람”(마르 1,24; 10,47; 14,67; 16,6; 요한 18,5.7; 19,19; 사도 2,22)이라고 불리신다. 예수님은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을 나자렛에서 보내셨고 공적인 활동을 거기에서 시작하셨다. 그래서 나자렛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성지 중의 성지이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예수, 베들레헴의 예수가 아니라 나자렛의 예수로 불리신다.
위치와 지형
갈릴래아 지방의 나자렛은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약 134km, 갈릴래아 호숫가에 위치한 티베리아스에서 서남쪽으로 약 30km, 카나에서 서쪽으로 약 7km 되는 지점에 위치한다. 나자렛은 해발 약 375m에 위치한 산 위의 고을로(루카 4,29), 사방이 산들로 둘러싸인 지대가 높은 분지에 자리잡은 산골 마을이다.
구약성경의 나자렛
나자렛이라는 지명은 구약성경이나 고대 유다 문헌에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는다. 즉 예수님 이전에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던 조그마한 촌락이 나자렛이었다. 사실 우리는 나자렛이라는 이름의 의미와 기원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한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은 히브리어로 “노츠리”라고 불린다. 그리스도교적 전승에 따르면, 이 용어는 이사 11,1인 “이사이의 그루터기에서 햇순이 돋아나고 그 뿌리에서 새싹이 움트리라.”에서 새싹에 해당하는 히브리어인 “네체르”에서 유래하였다는 것이다. 이 구절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해석에 따르면 새싹은 예수님을 가리킨다.
신약성경의 나자렛
루카 1,26-38에 따르면, 나자렛에 살고 있던 동정녀 마리아에게 예수님의 탄생이 예고된다. “여섯째 달에 하느님께서는 가브리엘 천사를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이라는 고을로 보내시어, 다윗 집안의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를 찾아가게 하셨다.”(루카 1,26-27) 요셉과 마리아는 원래 나자렛에서 살았는데, 아우구스투스의 칙령에 따라 호적을 등록하기 위해 다윗의 고을 베들레헴에 갔다가 거기서 아기 예수님을 낳았으며(마태 2,1-12; 루카 2,1-20), 이집트 피신 후(마태 2,13-15) 다시 나자렛으로 돌아가 그분을 키웠다.(마태 2,23; 루카 2,39-40.51-52) 마태 2,23에 따르면, “나자렛이라고 하는 고을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이로써 예언자들을 통하여 ‘그는 나자렛 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격적인 공생활을 시작하신 예수님은 나자렛 회당에서 가르치셨는데(루카 4,16-30), 고향 사람들로부터 불신과 배척을 받기도 하셨다.(마르 6,1-6)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듣고 화가 잔뜩 났다. 그래서 그들은 들고일어나 예수님을 고을 밖으로 내몰았다. 그 고을은 산 위에 지어져 있었는데, 그들은 예수님을 그 벼랑까지 끌고 가 거기에서 떨어뜨리려고 하였다.”(루카 4,28-29) 요한 1,46에서는 사람들로부터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라고 말해질 만큼 대수롭지 않게 여겨졌던 나자렛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기원 후 1세기부터 유명해졌다.
중요 순례 장소
① 주님 탄생 예고 기념 성당
5세기 초에 마리아의 집터로 여겨지던 곳에 작은 성당이 세워졌다. 이것은 페르시아 군인들에 의해 파괴되었다. 그 후 이 터에 십자군 시대의 성당이 세워졌으나 이슬람 사람들에 의해 파괴되었다. 그 후로도 다시 세워진 성당들이 거듭 파괴되었는데, 1730년에 프란치스코 수도회에서 기념 성당을 세웠으나 이 또한 1955년에 파괴되었다.
오늘날 현존하는 주님 탄생 예고 기념 성당은 1960년부터 이전의 기념 성당 터 위에 다시 건설되어 1969년에 완공되었는데 2층의 구조로 된 큰 규모의 성당이다. 이 성당에서는 1954년부터 11년간에 걸친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서 여러 동굴과 물 저장소, 곡식 저장소, 기름과 포도즙을 짜는 틀, 그리고 비잔틴 시대의 성당 터도 발견되었다. 성당의 바깥 전면에는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주님의 탄생을 예고하는 장면과 마태오, 마르코, 루카, 요한의 네 복음사가가 조각되어 있다. 그리고 성당 바깥에는 가브리엘 천사와 마리아의 동상도 있다.
② 주님 탄생 예고 동굴
주님 탄생 예고 기념 성당 아래층의 중앙에는 제대가 있는데, 여기에서 반 지하 형태의 계단을 내려가면 동정녀 마리아의 집터로 여겨지는 주님 탄생 예고 동굴이 있다. 이 동굴 안에 있는 제대에는 라틴어로 “VERBUM CARO HIC FACTUM EST”라고 쓰여 있는데 번역하면 “말씀이 이곳에서 사람이 되셨다.”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단어는 바로 “HIC”, 즉 “이곳에서”이다. 나자렛은 어떤 곳이었나? 예루살렘이 나라의 중심이었던 것에 비해, 갈릴래아는 변두리 땅이었다. 이러한 갈릴래아의 나자렛은 어둠과 침묵, 망각과 소외의 땅, 가난과 고단한 삶의 장소였다. 바로 그곳에서 말씀이 사람이 되셨던 것이다.
주님 탄생 예고 기념 성당 위층의 벽면과 성당 마당의 벽면에는 세계 각국의 예술가들이 그린 다양한 성모자상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중에는 한복을 입은 마리아가 색동옷을 입은 어린 예수님을 안고 있는 모자이크가 있는데, 바로 우리나라의 이남규 화가의 작품이다. 이와 같이 여러 나라, 여러 민족의 피부색을 가지고 그 전통의상을 입은 마리아와 예수님의 모습은 온 인류의 구원자이신 예수님에 대한 신앙의 보편성과 풍요로움을 표현한다.
④ 성가정 성당
주님 탄생 예고 기념 성당에서 북쪽으로 약 100m 정도 떨어진 곳에 성가정 성당 혹은 성 요셉 성당이 있다. 이 성당의 명칭은 성가정이 살았고 요셉의 작업장(마태 13,55)이 있었던 곳에서 유래한다. 십자군 시대에 세워진 성당 터 위에 비잔틴 시대의 기념 성당이 지어졌으나 파괴되었다. 오늘날 현존하는 성당은 1914년에 세워진 것이다.
⑤ 유다인 회당 기념 성당
* 송창현 신부는 1991년 사제수품 후 로마성서대학원에서 성서학 석사학위(S.S.L.)를, 예루살렘 성서· 고고학연구소에서 성서학박사학위(S.S.D.)를 취득하였고,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과 성서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