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은집사의비유 (루카 16,1-8}

2014. 11. 9. 오후 10: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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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평화신문/2014. 10. 05발행 [1284호]
 
신약의 비유 <18 >약은 집사의 비유

정직하지 못한 집사가 신앙인의 모범?

▲ 목숨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지 못한 채 돈을 헤아리는 어리석은 부자는 종말이 다가옴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나타낸다. 그림은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렘브란트 작).



루카 16,1-8


이 비유는 예수의 비유 중에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옛날부터 지금까지 많은 학자가 그 뜻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 노심초사했다. 가장 어려운 것은 일단 주인공이 정직하지 못한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그 사람이 모든 사람이 닮아야 하는 모범으로 제시된다는 것이다.



주인의 이해하기 힘든 칭찬


이 비유에 나오는 집사라는 직업은 자기 주인의 재산을 관리하는 사람이다. 주인을 대신해서 사업 경영을 총괄하는 권한과 의무를 지닌 사람으로서, 물건을 판매할 수도 있고, 대출을 줄 수 있었다. 그리고 주인 대신 빚을 회수하고, 경감하거나 면제해줄 수도 있었다. 그의 수입은 여러 판매나 대출에서 나오는 수수료나 보상금이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집사가 주인의 재산을 낭비했다고 고발한다. 왜 고발했는지, 그것이 진실인지 아닌지 설명이 없다. 아마도 사실이라고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주인이 그것을 추궁할 때 어떤 설명이나 자기변호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집사는 소환당해서 해고된다.

여기에서 집사의 내적 독백이 나오는데, 이는 루카복음서의 특징으로, 주인공의 생각을 독자가 같이 읽으면서 동참하게 한다. 집사는 땅을 파자니 힘이 부치고 구걸하자니 창피하다고 생각하며 주인 재산으로 친구들을 만들어 그들 덕으로 살아갈 결심을 한다. 그러고는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을 하나씩 불러 그들의 채무를 경감해 준다.

처음에 나오는 사람이 빚진 기름 백 항아리는 올리브유 4000ℓ에 해당한다. 집사는 50%를 낮추어 얼른 앉아 오십 항아리로 고쳐 적으라고 한다. 이 비유에는 두 사람의 채무자만 나오지만 모든 채무자가 빚을 경감받았고 모든 것이 빨리 진행됐음을 보여주는 표지이다.

채무자들은 그 상황에서 집사가 해고되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고 또 알 수도 없었을 것이다. 다만 집사에게 그런 권한이 있었으므로 사실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이 비유에 나오는 다른 채무자의 빚은 백 섬에서 팔십 섬으로 경감된다. 백 섬으로 번역됐지만 본래의 양은 두 배보다 많은 약 220섬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 일을 알게 된 주인은 그 불의한 집사를 칭찬한다. 바로 이 구절에 비유의 어려움과 핵심이 담겨 있다. 주인이라고 번역된 “퀴리오스”라는 용어는 주인이나 주님으로 번역될 수 있다. 주인이라고 볼 때, 주인이 자신에게 손해를 끼친 집사를 왜 칭찬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주인이 아니라 주님이 집사를 칭찬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영리하게 자신의 앞날을 준비한 자세를 칭찬하며 본보기로 세우셨다는 것이다.



신속한 상황 판단과 결단은 높게 사야


그러나 많은 학자는 주인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본다. 왜냐하면 집사의 행동 다음에 주인의 반응이 나오는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손해를 끼친 집사를 칭찬한 이유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가지 설명이 있다. 첫 번째로는 집사가 주인에게 손해를 끼친 것이 아니었다는 설명이다. 당시 집사는 따로 월급을 받은 것이 아니라 소작인들이나 채무자들과 계약을 맺으면서 주인에게 돌아갈 원금과 이자 외에 자신의 수수료를 따로 받는 것이 그의 수입이었다. 이 수수료는 법으로 규정된 것이 아닌 만큼 임의대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 그래서 이 이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집사가 소작인이나 채무자들에게 부린 횡포 때문에 고발을 당하고 해고됐다고 보면서, 집사가 줄여준 채무는 주인의 몫이 아니라 집사 자신의 몫이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두 번째 설명은 집사가 주인에게 손해를 끼쳤다고 본다. 이 이론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고대 문학에서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손해를 끼치거나 골탕을 먹이는 이야기들이 있으며 그중 몇몇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랫사람이 칭찬을 받거나 상을 받는 내용이 나오는 것을 근거로 든다.

집사는 소작인들과 채무자들의 빚을 경감시켜 줌으로써 그 사람들에게 영웅 대접을 받았을 것이다. 집사가 사람들 앞에 나타나면 사람들은 환호하며 감사의 표시를 했을 것이다. 만약 주인이 자기가 집사를 해고했기 때문에 집사로부터 받은 계약서가 무효라고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자기에게 분노와 조롱을 퍼부을 것이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주인은 결국 집사가 한 일을 받아들이고, 화가 나지만 그 교활함에 탄복했다는 것이다.

주인이 칭찬한 것은 그의 부정직함이 아니라 “영리하였기 때문” 즉, 위기에 대한 신속한 상황 판단과 단호한 결단이었다. 복음서에서 영리하다는 표현은 흔히 종말론적 차원을 파악하고, 그에 대비하는 사람의 태도를 지칭한다. 아마도 예수께서는 하느님 나라가 도래하였는데도 민첩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유다 백성들과 지도자들에게 대한 경고의 뜻으로 이 비유를 말씀하셨을 것이다.

루카 복음사가는 원래의 이 비유 말씀을 제자들에게 주신 가르침으로 기술하면서 이 집사의 태도를 예수의 재림을 준비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하나의 귀감으로 제시하고 있다. 세속의 자녀들이 자신들의 앞날을 위해 얼마나 현명하고 단호하게 처신하는지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보고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 집사의 비유는 예수께서 이미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를 맞이하기 위해 지금 단호하게 결단을 내리고 행동하라는 메시지이다.

**********************************************송두석

루카복음 16장의 말씀은 세상의 이치와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난해의 비유입니다.

즉, 주인(부자)의 재산을 집사가 임의로 장부를 조작하여 부채를 감하여 줌으로 인해

주인(부자)는 재산상의 손실을 입었으므로 화를 내야됨에도 불구하고 16장 8절의 말씀에 보면 "주인은 그 불의한 집사를 창찬하였다. 그가 영리하게 대처하였기 때문이다." 라고 나옵니다.

즉, 자신의 재산관리를 잘못하여 받아야할 것을 받지 못함으로 인해 재산상의 손실을

입은 주인이 오히려 자신에게 손실을 입힌 집사를 칭찬할 뿐만 아니라, 그러한 장부 조작 행위로 인해 집사가 친구들을 만들어 결과적으로 그들이 불의한 집사를 영원한 거처에 맞아들인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상식으로 보면 분식회계에다가 배임, 횡령, 사문서 위조등의 범죄행위로 형사처벌을 받아 감옥에 가야 함에도 오히려 주인이 집사를 칭찬하고 이러한 죄로 인해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린다는 것입니다.

 

이 비유를 이해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세가지는 첫째로, 주인(부자)로 등장하는 사람은 재산을

불리는 것보다 재산이 줄어드는 것을 더욱 기뻐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즉 받을 것을 탕감해주는

것을 기뻐하고 그렇게 관리해주는 집사를 칭찬하는 사람입니다. 우리의 재산관리와는 180도로 다른

하늘나라의 회계방식, 즉 완전한 용서, 완전한 탕감, 값없이 베푸는 은총을 나타내는 하느님 나라의 계산법이기 때문입니다.(하느님 입장에서는 집사가 한 명이 아니고 우리 모두가 집사임. 즉, "갑"이라는 집사가 관리하는 재산이 부채를 탕감해주어 줄었지만 "을"이라는 집사가 관리하는 재산은 부채가 탕감됨으로 인해 순자산이 늘어나는 것임. 이를 회계적으로 설명하면 "갑"이라는 집사의 대차대조표상의 자산항목(계정과목)인 대여금이 줄었지만, "을"이라는 집사의 부채항목(계정과목)인 차입금이 줄어서 "갑"의 순자산은 감소한 반면 "을"의 순자산이 그만큼 늘어서 주인 입장에서는 "갑"과 "을"의  순자산을 합할 경우 재산이 줄지 않고 동일한 것임. 주인의 집사가 한 명일 경우에 재산이 주는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우리 모두가 하느님의 재산을 관리하는 집사인 것이므로 한 사람의 재산이 다른 사람의 재산으로 옮겨간 것 뿐이지 재산이 준 것이 아님. 실제로는 주인의 재산이 줄지 않는다는 것을 쉽게 이해하시도록 회계용어를 사용하여 설명드린 것이오니 참고가 되었으면 합니다.)


두번째로는 우리가 모두 하느님 것을 관리하는 집사인데, 집사인줄 모르고 내것이 내것이라고 믿고 나만 잘먹고 잘살면 된다 라는 사고방식으로 살면, 하느님 보시기에 우리는 불의한 집사인 것이고 우리가 하느님 재산을 낭비하는 것으로 보신다는 것입니다. 자기 혼자만 잘 먹고 잘 살겠다고 곳간에 쌓아 놓고 썩히는 것을 하느님께서는 낭비하는 것으로 보시는 것입니다.


세번째로는,  하느님의 재산을 관리하는 집사라는 의식을  주님의 은혜로 영적인 각성을 통해 우리가 불현듯 깨닫게 되면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심이 우리의 심령에서 살아나와서 불우한 이웃과 어려움을 같이하고 우리의 소유를 이웃과 나누게 된다는 것을, "집사가 빚을 감해주는 것으로" 표현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는 재산관리를 잘못하는 것이 아니고(세상의 이치로 보면 잘못하는 것이지만), 하느님께서는 칭찬하시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본인의 재산이 나눔을 통하여 이웃과 함께 사용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본 비유를 우리가 읽을 때, 말이 안되는 것으로 생각하게 되는 이유를 논리적으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낭비한다는 이유로 집사를 해고하겠다는 주인이 어찌하여 낭비(빚을 감해줌)한 집사를 칭찬하는가? 과연 낭비한다는 것이 무엇인가? 우리가 생각하는 낭비와 주인이 생각하는 낭비가 같은 것인가?

---->혼자만 먹고 살겠다고 곳간에 쌓아두고 호의호식하는 것을 하느님께서는 낭비라고 보시는 것임. 그 이유는 우리에게 재산을 맡겨두신 이유는 이웃과의 나눔을 위한 것이기 때문인데 나누어지지 않는 것은 하느님의 목적에 위배되는 것이기에 낭비되는 것으로 하느님은 바라보심. 빚 문서를 조작하여 빚을 감해주는 것이 바로 이웃과 나눔을 실천하는 것이므로 하느님은 기뻐하시고 칭찬하시는 것임.


2.주인은 왜 재산이 줄었는데 기뻐하고 불의한 집사를 칭찬하는가?

-----> 위에 설명한 대로 하느님의 재물이 사랑으로 이웃과 나누어 질 때 하느님께서는 기뻐하시고 그런 일을 행한 사람을 칭찬하실 뿐만 아니라, 그러한 자선 행위로 인해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시는 것임.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축복으로 재물을 많게 하시는 이유는 나눔을 위한 것이므로 하느님의 뜻에 맞게 행한 것이므로 기뻐하시는 것임.


3.집사가 관리한 재산이 줄었지 않는가?

-----> 집사가 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주인의 재산이 줄어든 것으로 생각하는데, 사실은 우리 모두가 집사인 것이며, 한 사람의 재산이 이웃과 나누어질 때, 한 쪽은 줄고 한 쪽은 늘어나므로 결과적으로 줄어든 것이 없음. 따라서 하느님(주인)은 화를 내실 이유가 없는 것임. 신구약을 막론하고 하느님의 율법은 빚진 자의 빚을 탕감해 주시는 것임. 구약의 신명기 15장에 안식년에 이웃의 빚을 탕감해주라고 하느님께서는 명령하셨음.

이는 사실 영적으로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상에서 우리의 모든 죄(빚)를 대신 지고 죽으심으로써 우리를 사탄(빚쟁이)에게서 해방시키시는 것을 예표하는 것임.

 

우리가 세상의 지식으로 성경을 읽게되면  장부를 조작하고 부채를 줄여 적어서 결과적으로 재산이

감소하게되어 재산상의 피해를 입은 주인이 화를 내야함에도, 오히려 그런 몹쓸 짓을 한 집사를 칭찬할 뿐만 아니라 영원한 거처(하느님 나라, 영원한 생명 예표)를 얻게된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도저히 세상의 이치로는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지만 하느님 나라의 장부 계산법(탕감법과 나눔의 법칙)에 의하면 영적으로 쉽게 깨달아

알 수 있게되는 것입니다. (탕감법과 관련된 성경말씀은 밑에 답변글에 신명기와 마태오 복움서의 말씀을 인용하여 자세히 설명을 했으므로 참고바랍니다.)

 

이러한 비유의 말씀을 이해함에 있어, 등장인물이 상징하는 실체를 이해해야 하고

그러한 등장인물의 행위는 과연 영적으로는 무엇을 상징하는가에 대한 고찰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다음에 기술하는 내용은 제가 묵상한 내용인데 참고가 될까해서 나눔 차원으로

적어봅니다.

 

1. 각 등장 인물은 누구를 상장하는가?

 

-부자(주인) : 하느님 상징

 

-집사 : 우리들 개개인을 상징(영적으로 집사인줄 깨닫지 못하면 불의한 집사로 죽어 지옥에 가는 것임)

 

-빚진 사람들 : 우리가 살아가며 매일 매일 만나는 사람들을 상징(그러나 그들도 하느님의 집사들임)

 

2.등장인물들과 관련된 성경말씀들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어떤 부자가 집사를 두었다 --->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청지기(집사)라는 말씀임. 그러나 이러한 깨달음이 있기 전에는 우리의 소유를 우리의 것으로 알게 됨. 우리의 소유는 사실상 하느님이 잠시 맡겨두신 것이고 우리는 하느님의 집사임.

 

-집사가 자기의 재산을 낭비한다는 말을 듣고 -----> 하느님께서 보실 때 재물에 나눔이 일어나지 않을 때, 즉 하느님의 재물을 자기 혼자 움켜쥐고 혼자서 호의호식하는 사람을 볼 때, 바로 하느님께서는 하느님의 재산이 낭비된다고 보시는 것임(혼자만을 위하여 곳간에 쌓아두고 썩히는 것을 낭비하는 것으로 하느님은 바라보심).

 

-자네는 더이상 집사일을 할 수 없네----> 이는 죽을 때가 되었음을 집사가 알게 되었다는 이야기임. 우리에게 맡겨진 모든 것을 하느님께서 거두신다는 것(죽는 것)이 바로 집사일을 할 수 없게 되는 것임. 인생의 어느 시점에 불현듯 이러한 영적인 각성이 일어날 때, 우리는 이웃이 우리와 한 몸이기 때문에 주님께서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임을 알게 됨. 즉 우리가 어느날 이러한 깨달음을 얻어 우리의 소유가 우리의 것이 아니고 하느님의 것이며 우리는 다만 잠시 사용하게 위임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됨. 즉 혼자만 먹고사는 것이 하느님 보시기에 낭비로 보이는 것이고 주변의 어려운 이웃들과의 나눔을 위해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것임을 알게 되는 것임.


-빚문서의 채무 숫자를 낮추어 적음-----> 영적으로 하느님의 빚문서 회계원칙은 전액탕감입니다.(안식년에 빚을 탕감해주라고 규정된 구약의 신명기 15장 말씀과 만 달란트 빚진 자에게 탕감해주신 신약의 마태오복음에 나오는 비유에서 보듯이). 다시말해 하느님께서는 완전한 사랑으로 탕감해주시는 회계원칙하에 장부를 관리하십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하느님과 같이 그렇게 완전한 사랑을 할 수 없으므로 부분적으로라도 탕감을 해주되 비유에서 보듯이최대 50%를 감하여 반으로 낮추어 줄 수 있는데, 바로 이와 같이 반으로 나누는 것이 이웃을 내몸과 같이 사랑하는 나눔의 실천, 같이 더불어 사는 것입니다("나만 살고 보자" 가 아니라 "나도 살고 너도 살자", 즉 "같이 살자" 로 바뀌는 것임).


-주인은 불의한 집사를 칭찬하였다.---->여기에서 "불의한" 이란 말은 이렇게 장부를 조작한 것 때문에 불의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에 집사가 깨닫지 못하고 재산이 자기 것인 줄 알고 자기를 위해서만 호의호식한 것을 두고 하느님께서는 하느님의 재산이 낭비된 것으로 보시고 불의한 것으로 보신 것이며, 과거의 그러한 집사의 행위를 인하여 불의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이지, 빚을 감해준 행위를 불의하다 라고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러한 행위(장부를 조작하여 빚을 감해준 행위)를 칭찬하시는 데, 그 이유는 비로소 집사가 재산이 자기 것이 아니고 이웃과 나누라고 하느님께서 맡겨놓으신 것임을 깨달아 알고 이웃의 부담을 낮게 해주는 것(사실상 집사가 받을 것을 안받는 것임)을 통해 소득의 재분배가 일어나는 것이며 이를 하느님께서는 칭찬하시는 것입니다.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만들어라. 그래서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친구들이) 너희를 영원한 거처로 맞아들이게 하여라. ------->영적으로 살펴보면 우리 앞에 있는 불쌍한 이들, 가난한 이들, 약한 사람들은 사실은 주님과 다르지 않습니다. 마태오복음 25장 40절의 말씀을 인용합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이 바로 나에게 해 준 이다."  <------- 이 말씀과 같이 우리가 주변의 어렵고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무언가 자선을 베푼 것이 바로 주님에게 베푼 것이고 실제로 그들이 바로 주님이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는 단체적으로 주님을 머리로 하여 한 몸을 이룰 때 주님의 몸된 교회가 되는 것이며 지체는 주님의 몸에 속하고 주님의 생명에 속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몸의 일부분인 그러한 지체를 도우면 바로 주님을 도우는 것이 되는 것이고 결과적으로 우리도 주님의 지체를 이루고 있으므로 이러한 자선은 스스로 자기 자신에게 베푸는 선행이 되어 영원한 거처(하느님 나라)에서 그사람들(주님)이 우리를 맞아들이시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보면 남에게 주는 것이 사실은 자기 자신에게 주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아주 작은 일에 성실한 사람은 ----> 물질적인 것을 나누는 사람은


-큰일에도 성실하고---->진정으로 하느님과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이고


-아주 작은 일에 불의한 사람은 ---->물질조차 나누지 않는 사람은


-큰 일에도 불의하다.----->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다.


-너희가 불의한 재물을 다루는데 성실하지 못하면, 누가 너희에게 참된 것(영원한 생명, 하느님 나라)을 맡기겠느냐?-----> 이 땅에서 물질적인 것도 나누지 못하는 불의한 자에게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나라(영원한 생명)를 상속받지 못한다는 말씀임.


-또 너희가 남의 것(하느님 것)을 다루는 데(나누는 데) 성실하지 못하면(이웃과 나누지 않으면), 누가 너희에게 너희의 몫(영원한 생명)을 내주겠느냐?----> 이 땅에서 이웃과 나누는 삶이 되지 못할 때, 하느님 나라를 우리가 상속받을 수 없다는 말씀임.

 

다시 말씀드려 세상의 계산법과 세상 이치로는 이해할 수가 없는데, 그 이유는 하느님 나라의 회계방식(탕감법)에 근거하여 비유로 말씀하신 것이기 때문이고 또 다른 이유는 하느님 재산을 관리하는 집사는 한 명이 아니고 우리 모두이기 때문에 설령 탕감을 해주어도 하느님의 재산은 줄지 않으시므로 화내시기는 커녕 오히려 재산을 축낸 집사를 칭찬하신다 라는 말씀입니다.


집사인 줄 모르고 자기 것으로 알고 자기만 쓰는 것이 바로 낭비(곳간에 쓸 데 없이 쌓아두고 좀이 슬고 녹이 슬게 하는 것이 바로 낭비하는 것임)하는 것이고 불의한 짓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재산이 바로 하느님께서 잠시 맡겨주신 것임을 알고 이웃과 나누면(이를  빚문서 부채를 감하는 것으로 표현함), 하느님께서는 이를 칭찬하시며 하느님 나라에서 하느님의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으며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은데 그 이유는 우리의 세상지식, 즉 우리의 지적능력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남기신 하느님께서 과연 무슨 의도로 어떠한 뜻을 표현하시고자 하는지 우리로서는 알 수 없는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이럴 때마다 성령하느님께 가르침을 청하면(겸손되이), 하느님께서는 가난해진 우리의 심령에 성령의 빛을 비추시어 성경에 계시된 하느님의 뜻을 알게 하실 것입니다. 성경은 성령의 도움으로만 깨달아 알 수 있도록 하느님께서 의도적으로 그렇게 완성하신 것입니다.


보아도 알 수 없고 들어도 알 수 없게 영적인 신비로 완성하신 것이 바로 성경입니다. 주님께서 은혜로 눈을 열어주시면 비로소 우리의 영적인 눈이 열려 성경말씀을 깨달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육적인 눈, 즉 세상적인 지식의 눈으로 성경을 읽는 사람은 성경을 읽으면 읽을 수록 의심만 늘어나고 분심을 갖게 됩니다. 육적인 눈으로 성경을 읽는 사람에게는 성경이 말이 안되게 하느님께서는 의도적으로 그렇게 성경을 완성하셨습니다. 오직 은혜와 믿음의 은사가 있을 때 성경을 하느님의 진리의 말씀으로 받아서 깨달아 알게 그렇게 의도적으로 하느님께서 완성하신 것입니다.


전기한 내용은 순전히 제 개인적인 묵상이므로 다만 참고가 되었으면 합니다.

만일 교회의 가르침과 다른 부분이 있다면 전적으로 제가 쓴 내용이 틀린 것임을 미리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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