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층천, 세번째 하늘

2014. 12. 31. 오전 11:50:47

글자

  

바오로가 받은 환시와 계시 (2고린 12:1-4)

1 이로울 것이 없지만 나는 자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아예 주님께서 보여 주신 환시와 계시까지 말하렵니다.  2 나는 그리스도를 믿는 어떤 사람을 알고 있는데, 그 사람은 열네 해 전에 셋째 하늘까지 들어 올려진 일이 있습니다. 나로서는 몸째 그리되었는지 알 길이 없고 몸을 떠나 그리되었는지 알 길이 없지만, 하느님께서는 아십니다.  3 나는 그 사람을 알고 있습니다. 나로서는 몸째 그리되었는지 몸을 떠나 그리되었는지 알 길이 없지만, 하느님께서는 아십니다.  4 낙원까지 들어 올려진 그는 발설할 수 없는 말씀을 들었는데, 그 말씀은 어떠한 인간도 누설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200주년 신약성서 해설서(분도출판사) P953-954 ]
근동의 엣 사람들은 여러 층층 하늘을 상상했다.  (3. 5. 7. 8. 12층)
바울로 및 동시대 사람들은 흔히 하늘을 3층으로 상상 했으니,
제3층은 제일 높은 하늘로서, 지존하신 하느님이 현존하는 곳이다.

낙원은 의인들이 죽어서 또는 또는 의인들이 종말에 부활하여 가는 곳이다.
 
(루가 23;43  묵시2:7)

바울로는 낙원(4절)과 세째하늘(2절)을 같은 곳으로 여겼다.
그는 세째하늘 낙원에서, 인간의 말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말,
남들에게 발설해서는 안되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루가는 바울로가 자주 이런 체험을 한 신비가였던 것처럼 기록했다.
(사도16:9  18;9  22;17-18  23;11  27;23)

신비적 체험은 되도록이면 혼자 간직할 일이지 동네방네 선전하고
선동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러니 무슨 현시, 무슨 계시를 받았답시고 떠벌리는 자들을 조심하라
.
-*해설부분 에서 *-


 

참고사항

그래서 대부분의  성당 제대 위치가 높이3층으로 되어 있어요.
안 그런데도 있긴 한답니다만......

 

성경에 언급되는 하늘은 첫째로는 가시적인 우주공간을 의미하는 경우가 있고,
둘째로는 하느님이 계시는 초월적인 영역(삼층천, 셋째 하늘)을 의미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히브리인들은 우리의 눈에 보이는 우주공간(하늘)을 이층천(둘째 하늘)로 표현하고, 하느님이 계시는 곳을 삼층천(셋째 하늘)로 표현했다 합니다.
신약의 코린토2서 12장에 보시면 바오로 사도께서 삼층천 체험하신 내용에 대해 언급하셨는데, 그러한 체험이 14년 전에 이루어졌다는 것과 과연 몸(육신)을 지닌 상태로 그런 체험을 한 것인지 육신을 떠난 영혼만이 그런 체험을 한 것인지를 본인은 모르나 하느님은 아실 것이란 언급이 있을 뿐, 삼층천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는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이는 언어문자(필설)로 표현해 낼 길이 없는 초월적인 영역(시공간을 초월한 영역)이기에, 삼층천에 대해 묘사하지 않으신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하느님이 계신 하늘, 즉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시어 어좌 우편에 계신 바로 그 하늘은 언어문자로 형용할 수 없는 초월적인 곳이기에, 교리서에서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교리서 2794  "하늘에 계신"
 
이 성서적 표현("하늘에 계신")은 어떤 장소(공간)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존재양식을 가리키는 것이며,
하느님께서 멀리 계심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위엄을 가리키는 것이다.
우리 아버지께서는 ''''다른 어느 곳에'''' 계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가 그분의 거룩하심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초월하여'''' 계시는 분이시다.
 
하느님께서 당신 성전에 계시듯이, 의인들의 마음에 계신다는 의미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는 말을 알아듣는 것이 올바른 이해입니다.............(중략)
하늘은 또한 천상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이들이며, 그들 안에 하느님께서 사시고 거니시는 것입니다.
 
위 교리서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바와 같이 구약의 성전(솔로몬이 성전을 짓기 전에는 성막)에 거하시던 하느님께서 신약에 들어와서는 성경에서 이야기 하는 바와 같이 교회(그리스도를 믿고 새생명으로 다시 태어난 사람들) 안에 살고 계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믿음으로 그리스도(하늘) 안에 거할 때, 그리스도(삼위일체 하느님)께서도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입니다.
즉, 부활하시고 사십일만에 승천하신 주님께서 영적으로는 성령과 함께 우리 안에 살아 계시는 것입니다. 이는 삼위일체의 신비에 속한 부분이긴 하지만 하느님의 속성에는 무소부재하심이 있는데, 이로 인해 성령이 계신 그곳에 성부 성자도 함께 계십니다.
다시 말해 성령께서 오순절 마르코의 다락방에 강림하시었을 때, 하늘 어좌에 계신 성부와 성자께서도 믿는 이 안에 동시에 살아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로마서 8장 9절)에서 "그리스도의 영(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시지 않으면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이야기함"과 동시에 8장 10절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시면" 이라는 표현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신약의 바오로 서신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여러 곳에서 성령 뿐만 아니라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우리 안에 살아 계심을 계시의 말씀을 통해 전해 주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어좌 우편에 계실 뿐만 아니라 우리들(그리스도인들) 안에 생명으로 살아 계신다 라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승천하시어 하늘 어좌에 계심과 동시에 믿는 이의 마음 안에도 살아 계신 것이며, 믿는 우리도 또한 이 세상에 살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승천하여 하느님 안에 숨겨져 있기도 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골로사이서 3장에 다음과 같은 말씀을 바오로 사도께서 남기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미 죽었고, 여러분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안에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거하고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거할 때, 우리는 하늘(교회)에 속한 것입니다.
이러할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주인이 되시어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의 온전한 뜻 안에서 하느님 보시기에 자녀다운 삶을  살게 하시며, 또한 우리로 하여금 하늘(천상)의 삶을 지상에서  미리 맛보게 하십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하늘(하느님 계신 곳)은 초월적인 곳이므로 육안으로 보이는 그것은 다만 우주공간(하늘)일 뿐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우주공간 어딘가에 우리가 있다 할지라도(설령 공중부양하고 있을지라도), 우리는 다만 육신(세상) 안에 갇혀서 아직도 세상(피조계) 속에 있을 뿐이지요.
 
결론적으로 하늘(하느님이 계신 하늘)은 어디부터인가 하면, 바로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세례라는 성사를 통해 우리에게 허락되는 하느님의 초월적인 영역(교회, 즉 지상의 하느님 나라)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한 초월적인 영역을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맛을 보게 될까요?
성경(로마서 14장 17절)에서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로움과 평화와 기쁨입니다."
 
 
 

 

삼층천,三層天.third heaven 의 의미

 

유대인들의 하늘생각은 층으로 되어있다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중세까지도 지구는 평평하다고 생각하여 갈렐레오가 지구가 돈다고하자 미친놈 취급은 한 것입니다.

 

성경에 하늘은 3층으로 되어 있습니다. 

첫째 하늘은 새가 날아다니고 비행기가 날아다니고 비가 내리는 대기권 하늘, “sky” 하늘이고

둘째 하늘은 해와달과 별들이 있는 우주 하늘, “space” 하늘입니다.

셋째 하늘은 천국이 있는 3층천 하늘나라, “heaven”입니다.

 

 예수믿고 죽으면 다 갈수 있는 나라 (천국&낙원)

 “하나님의 나라”가 통치의 개념이라면 “하늘나라”는 장소의 개념이고 장차 우리가 들어가 영생복락을 누릴 장소입니다.

 

성경에 하늘은 3층으로 되어 있습니다.

첫째하늘은 새가 날아다니고 비행기가 날아다니고 비가 내리는 대기권 하늘,“sky” 하늘이고

둘째 하늘은 해와 달과 별들이 있는 우주 하늘, “space” 하늘입니다. 

셋째 하늘은 천국이 있는 영(靈)적인 3층천 하늘, “heaven”입니다.

신비주의자나 이단들이나 성경을 잘못 이해한 자들은 천국이 몇층이냐를 놓고 논쟁합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후서 12장 2절에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사 년 전에 그가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caught up to the third heaven)라고 신비의 경험을 다른 사람의 경험처럼 겸손히 말씀했습니다.

 

히브리서9장 24절에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오직 참하늘(heaven)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라고 하셨습니다.

 

열왕기상8장 30절에 “…이곳을 향하여기도할 때에 주는 그 간구함을 들으시되 주의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Hear from heaven your dwelling place) 들으시사 사하여 주옵소서”라고 했는데 “하나님의 계신(dwelling place) 곳,  하늘”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베드로전서1장 4절에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고 했습니다.시편11장 4절에 “여호와께서  그 성전에 계시니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무지하여 성경을 곡해하는 경우가 종종발생 합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1. 지금부터 약 3400년전에 기록된 창세기 22장 17절과 예레미야 33장 22절에 보면 하늘의 별은 바다의 모래와 같이   셀 수 없이 많다고 기록되어있다.

그러나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늘의 별은 수천개 정도에  불과하며 성경이 틀렸다고 주장하였다.

그런데 근래에 와서 천체망원경이 발달하면서 하늘의 별은 엄청나게 많으며  우리가 살고있는 은하계(Galaxy)만 해도 별이 1000억개나 되며, 우주에는 이러한 은하계가 1000억개 이상이나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결국 성경말씀 그대로 하늘의 별은 1000억 곱하기 1000억개나 되는, 셀수 없이 많다는 사실이 증명된 것이다.

 

2. 욥기 38장 31절에 보면 하나님이 욥에게, "네가 묘성(황소자리의 별)을 매어 떨기(성단) 되게 하겠느냐?   삼성(오리온자리 별)의 띠를 풀겠느냐?"라고 하시면서 인간능력의 제한성을 지적하시고 하나님은 할 수 있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런데 근래까지만 해도 묘성은 아무관계 없이 흩어져 있는 별이며, 삼성의 별자리는 요지부동의 띠모양이라고 생각하여서 성경이 틀렸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현대천문학의 발달로 인하여 묘성은 떨기별(성단)이라는 사실이 밝혀졌고, 오리온자리 별의

허리띠인 삼성은 지구에서 볼때만 허리띠 모양이었고, 실제로는 우주공간에 뚝뚝 떨어져있는(풀려있는) 아무 관계없는 별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창세기 만큼이나 오래전에 기록된 성경이 20세기에 와서야 밝혀진 것이다.

 

3. 고대인들은 거대한 거북이 등이나 여신의 허리 위에 지구가 얹혀있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욥기 26장 7절에 보면 하나님이 "땅(Earth=지구)을 공간(Space, Nothing=우주공간)에 다시며"라고 하여, 지구는 우주공간에 떠있다는 사실을 가르쳐주고 있다.

 

과학적으로는 근래에 와서야 밝혀진 사실을 성경은 지금부터 수천년전에 이미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4. 운석의 존재가 과학적으로 밝혀진 것은 1803년이다.

그런데 지금부터 수천년 전에 기록된 여호수아서 10장 11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큰 덩이우박(Great Stone)을  아세가에 이르기까지 내리게 하시매"라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덩이우박 (Great Stone)'은 운석을 뜻하는 것으로서, 성경은 과학적 기록보다 수천년 앞서서 운석의 존재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5. 시편 8편 8절에 보면 "공중의 새와 바다의 어족과 해로에 다니는 것이니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해양학의 아버지 Matthew Maury박사는  이 성경귀절을 듣고 깨달아 세계 최초로 해로를 발견하였다.

 

6. 아인슈타인 박사에 의해 밝혀진, 현대과학의 대단히 중요한 발견중의 하나가 '질량과 에너지는 근본적으로  동등하다'는 사실이다. 즉 물질은 실제로는 에너지의 한 형태이며, 원자에너지로 알려져있는 에너지 형태의 표출이다.

 

우주의 물질은 궁극적으로 물질적인 것이 아니며, '나타나지 않은' 그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지금부터  1900년전에 기록된 성경기록인 히브리서 11장 3절을 보면 '믿음으로 모든 세계(world-time)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라고 되어있다.

 

 성경은 공간과  질량과 시간의 연속체로서의 우주를 설명하고 있으며, 우주의 물질적 본질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무한한 에너지의  근원으로부터 나오는 능력에 의해 창조되고 지탱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성경은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을  발표하기 1900년 전에 이미 물질의 근본을 정확히 과학적으로 기록하였던 것이다.

 

[그것이 아니고 천국에도 3층 같은 새로운 하늘 같은것으로 이해 하고 싶은데...

무슨 대기권 우주 천국 이건 좀 아니라고 봅니다.

 

바울이 그당시 대기권 우주 천국 이런식으로 말하지 않았습니다. 천국에서도 더 높은 3층까지 올라 갔다고 문자  그대로 알고 있습니다. 너무] 그 다음은 다 알아야요.이제까지 목사님들도 천국이 삼층으로 되어있다고 알고있는 분도 있습니다.

 

 

 

삼층천의 환상과 계시 (고후 12:1-3)

어쩌다가 이상한 꿈을 한번 꾸어도 앉는 자리마다 그것을 쏟아놓지 아니하고는 입이 간지러워 견디어내지 못하는 것이 인간인데 삼층천의 황홀한 영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바울은 어떻게 장장 14년 동안이나 함구하고 있었을까요? 물론 바울대로의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1) 이런 일은 특별한 경우에 특별한 사람에게 어쩌다가 한번 보여지는 특별한 일로써 누구에게나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누구나 듣는다고 이해될 사건이 아닙니다. 

(2) 아무리 영험한 일이라 해도 모두 기독교적일 수 없습니다. 또한 그것 자체가 최고의 메시지가 아니기 때문에 그리스도와 십자가 이상으로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3) 영험을 강조하다 보면 자기 자신이 사람들에게 지나치게 부각되지나 않을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종으로서 조심성과 진실성과 충성심과 겸손함이 역력히 나타나 흐뭇합니다. 하나님의 종은 진실성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부흥사는 개꿈을 꾸고 크게 계시를 받은 것처럼 영험으로 팔아먹는 자가 있습니다. 예수를 전하기 위해서인지 자기의 하찮은 경험을 전하기 위해서인지 분간키 어려운 짓을 하고 다니는 자들입니다. 어떤 분은 서양 신학자가 한 마디 하면 다음 날 그 말을 전하기에 급급하며 야단법석을 떱니다. 아직 신앙에 대해 미숙한 신자를 모아놓고 서양 신학을 번역하여 어린 성도들을 망쳐 놓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가 직접 체험한 사건을 심사숙고하여 14년만에야 공개하면서도 사람들이 올바로 이해하지 못할까봐 조심하며 염려하는 것이었습니다. 왜 바울이 자신의 경험을 자랑하지 않았을까요? 

1. 환상과 계시를 자랑함은 무익합니다 

(1) 무익한 이유 환상과 계시는 그 뜻을 모르는 것이 많으므로 무익합니다. 옳은 해석이 아니고 대강 짐작 해석하므로 시험과 올무에 빠지기 쉽습니다. 계시는 성경의 미완성이니 계시의 진부는 판단하기 어렵고 함부로 계시받았다고 자랑하다가는 망신당하기 일쑤입니다. 

(2) 거짓 사도들의 육체적 자랑을 막기 위해서 사도 바울은 삼층천의 경험을 자랑하기를 중단했습니다. 그런 환상과 계시를 받았다는 것만으로도 거짓 사도들의 자랑을 반박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신령한 체험을 말하면 사도 바울을 능가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3) 바울의 신중성과 사랑 바울의 환상과 계시를 다룸에 있어서 그가 얼마나 신중하며, 또 성도들에 대한 사랑을 여실히 보여주는가 알 것입니다. 이는 분명히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을 아끼며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온 아름다운 태도입니다. 함부로 환상과 계시를 말함으로 교인들이 혹시나 다칠까, 혹 미혹에 빠질까 염려했던 것입니다. 이것만 가지고도 바울의 참 사도됨을 역력히 알 수 있습니다. 

2. 환상와 계시의 특성 

(1) 성령으로 이끌릴 때 환상과 계시는 모두 성령으로 이끌려 되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보기 위해 눈을 ‘껌벅’ 한 것이 아니요, 듣기 위해 귀를 ‘쫑긋’ 한 것도 아니요, 방언하기 위해 ‘할렐루야 라라’를 빨리 연습하여 빠른 속도로 하면 방언이 나온다는 그런 방언 선생에게 배워 아는 방언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도 성령에 이끌려 영계에 깊이 들어가 사단과 대면했고 대화했던 것입니다. 베드로가 고넬료의 가정을 위해 환상과 계시를 본 것도 역시 성경적 계시와 환상이 성령에 의한 것임을 잘 증명해 줍니다. 

(2) 환상과 계시 환상은 우리 눈으로 보는 것을 말합니다. 육안으로 이상(異象)중에 어떤 사실을 목격한 것을 말하니 바울은 자주 이러한 경험을 했다고 말합니다(행 18장). 계시란 역시 듣고 보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환상과 계시는 흔히 동시에 경험되는 것으로 성형에 이끌리어 사는 성도에게는 흔히 있는 경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 입신과는 판이합니다. 항간에 최면술, 탈혼 등으로 천국에 가게 하거나 천국 성도와 대화를 하게 하는 자들이 있으니 이는 순전한 인간의 조작이며 매우 위험한 것입니다. 천당가서 ××× 목사 만났다. 그 부인에게 안부 전하더라는 얘기 등은 다 거짓입니다. 천당에는 부부가 없습니다(마 22:29-30). 지금은 예수 재림 전이기 때문에 모두 영으로 하나님 나라에 있으므로 얼굴을 보았다는 것은 거짓말임을 증명합니다. 영은 얼굴이 없습니다. 

3. 환상과 계시의 가능성과 내용 

(1) 바울이 말한 삼층천은 천당이나 낙원 등으로 모두 동일 장소를 말합니다. 환상과 계시에는 인간으로는 모르는 것이 더 많습니다. 영계의 일이나 사건을 장담, 호언하는 자들이 많으나 이는 가증한 일이며 심판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2) 성경에 기록된 환상과 계시는 표준적인 것으로 우리의 신앙과 행위에 표준이 됩니다. 현대에도 환상과 계시는 있습니다. 사도 시대에나 지금도 간혹 있는 것을 부인할 수 없으나 그러나 그 적용에 있어서는 다른 것임을 명심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 완성 이후의 환상과 계시는 그 진부를 엄히 가려야 할 것이며 그 적용은 오직 그 당사자에게만 있고 일반적인 효용은 없다는 것을 알고, 자랑하거나 이를 타인에게 강요치 말아야 할 것입니다.     송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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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층천, 세번째 하늘,          

 

고린도후서 12장 1~10절

 

1.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2.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3.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4.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5. 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하지 아니하리라
6. 내가 만일 자랑하고자 하여도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아니할 것은 내가 참말을 함이라 그러나 누가 나를 보는 바와 내게 듣는 바에 지나치게 생각할까 두려워하여 그만두노라
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8.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갑자기 삼층천 구절이 생각나 찾아보게 되었다. 바울이 말한 삼층천이 과연 무슨 의미일까.

우선 고린도후서 12장의 내용을 읽어보자. 바울이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는 내용인데 십사년전에 세번째 하늘로 갔다고 증언한다. 이상하게 그가 본 '그'는 바울 자신인데 '그'라고 표현한다. 이것은 곧 몸 안에 있는지 몸 밖에 있는지 모른다는 설명을 덧붙인다. 또한 낙원으로 이끌려가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다고 증언한다.

그 이후 여러 설교에서 많이 인용되는 것으로 이런 것들로 자랑치 아니함을 당부하고 육체의 가시를 말한다.

 

내용상으로 보면 환상을 통해 바울이 하늘에 이끌려 갔다는 의미로 보시면 된다.

 

셋째 하늘이라고 일컬은 것은 트리토스(G5154) 우라노스(G3772)이다. 내가 이 층위적 하늘관을 찾아보기 위해 정경에는 내용이 없어서 불가피하게 외경을 찾아보게 되었다. 사실 이 바울이 언급한 삼층천의 내용을 정확하게 설명하시는 목사님은 별로 없으실 것이다. 그저 층위적인 해석으로만 해석하여 하늘나라, 천국이라고 두리뭉실하게 말하는 것이 전부일 것이다. 유대랍비들과 조로아스터교 등에서는 하늘이 7계층으로 되어있다고 한다. 이러한 개념이 바울시대에 지배적인 것이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분명 하늘을 층위로 구분하던 것은 있었다.

 

문제는 성경 어디에도 하늘이 7계층으로 이루어져있다고 말하는 부분이 없다. 그러나 바울의 이러한 층위적 개념은 구약성경에서 빌려온듯 하다.

 

신명기 10:14

14. 하늘과 모든 하늘의 하늘과 땅과 그 위의 만물은 본래 네 하나님 여호와께 속한 것이로되  

여기서 하늘과 하늘의 하늘이라고 구분되어 언급한 내용이 그것이다. 이와 비슷한 표현으로

 

열왕기상 8:27

27.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이오리이까

 

여기서도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또다른 구절을 시편에서 찾아보면

 

시편 68:33

33. 옛적 하늘들의 하늘을 타신 자에게 찬송하라 주께서 그 소리를 내시니 웅장한 소리로다  

이런 구절이 나온다. 이것을 눈에 보이는 하늘과 초월적 하늘, 창조전의 묵시의 하늘, 혹은 성도 등으로 바로 대입하여 이해하기는 곤란하다.

그러나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에서 이해하자면 우리가 하늘과 우주와 같은 눈에 보이는 시공간의 세상이 아닌 초월적인 다른 하늘로 언급하는 것으로 받아들여보자.

 

또다른 측면에서 즉 단어적 의미로 이해해보자면

 

1층천을 이에르, 2층천을 에프라니우스, 마지막으로 3층천을 우라노스로 보는 것이다. 이에르는 시공간의 세상의 하늘, 곧 대기권의 하늘을 의미한다. 2층천인 에프라니우스는 대기권을 벗어나 더 위쪽의 학한 영이 지배하고 있는 하늘의 의미로 중간하늘이라고 일컫는다.

 

3층천은 바로 우라노스, 우라노스는 영원한 하늘, 초월적 개념의 하늘, 하나님만 온전히 존재하고 계신 하늘을 의미한다.

 

이런 해석도 있다고 기억하시기 바란다.

 

또한 히브리어로 샤마임이 하늘이다. 구약에 의해 설명되어진 하늘은 여러 하늘이 존재한다. 하늘이 복수형으로 쓰였기때문에 기계적으로 하늘들이 있을 것이라 여길 수 있으나 일단 복수형으로 받아들여 하늘들이 있다고 생각해 보자.

 

후대의 유대인들은 하늘을 7층위로 되어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모두는 모든 하늘 위라는 표현으로 에베소서 4장 10절에 불리었다. 바울이 언급한 세째하늘(삼층천)에 대하여 이것이 추론되어 첫째와 둘째하늘을 유추하여 구별하기도 하지만 칼빈의 해석으로는 완전수 '3'이라는 숫자를 사용하여 지극히 높은, 완전한 의미에서의 하늘을 의미한다고 한다.

 

어찌 되었건 초월적의미의 하늘이라는 것에는 모두 동의하고 있는 해석인 것이다.

 

하늘을 의미하는 것이 또 궁창이라는 것이 있다. 궁창은 히브리어로 라키아이고 헬라어로 스테오마이다. 이는 두들겨펴다, 때려 확장시킨다라는 라카에서 파생된 말로 두들겨 넓게 편 판이란 뜻이다. 히브리인들은 궁창을 얇게 편 단단한 금속판일 것이라고 믿었다. 즉 하늘이 단단한 어떤 판이고 그 위에 하늘에 대량으로 그 나라를 지탱할 수 있는 고체일 것이라고 여겼다. 이는 곧 궁창을 땅의 천장 혹은 지붕으로 이해했고 이 궁창을 버티고 있는 기둥역할을 높은 산들에 의해 지탱되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이런 궁창이 넓은 의미로 하늘과 같은 천체의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이 궁창은 대기권의 하늘을 포함하여 가시권의 천계와 비가시권의 높은 하늘까지 포함하고 있는 개념이다. 여기서 부터 하늘의 층개념이 도입되었는데 대체로 3개의 층위를 이루고 있다고 여겼다.

 

대기권의 하늘로 공중의 조류들이 날아다니고 구름이 떠다니고 비, 바람, 우뢰, 이슬등이 내려오는 장소로 이해되었다.

그리고 두번째 층위가 광대한 우주, 해와달과 별, 뭇 유성들이 붙어있는 궁창판과 거대한 양의 물을 포함하는 광대한 우주공간으로서의 하늘로 이해하였다.

마지막으로 3층천은 하나님의 무한성을 말하고는 있었지만 분명 하나님의 거처가 있을 것이라고 소박하게 믿고 있었다.

 

또다른 해석으로 첫째하늘을 새들과 구름의 집이라 여기고 둘째 하늘을 해와 달과 별들의 집이라 여기고 셋째하늘을 천사들과 죽은 성도들의 집이라고 여기는 것도 있다.

즉, 바울의 삼층천 언급을 죽은 성도들의 집으로 이해하였다.

 

 

내가 외경중 바울의 묵시록을 보면서 영지주의적 해석의 방식을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 영지주의의 방식중 하나는 우리가 잘 모르는 부분에 대하여 어떤 환상이나 철학, 경험적 소산을 가지고 새로운 관점에서 그것을 마치 보고 듣고 느낀 것과 같은 꿈같은 이야기로 펼쳐놓는다. 즉, 모르는 것을 모르는대로 두지 못하고 알고자하는 노력이 그 당시에 소통되던 철학과 종교적 환상을 다 동원하여 설명하고자 한 것이 문제였던것 같다. 물론 다 가치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정작 내가 외경의 처음을 바울의 묵시록을 본것이 좀 실망감이 크다. 문제는 국문번역을 담당했던 몇몇 해석들과 영문판이나 결국 그들의 신앙적 관점에서 재해석된 해석이라는 점이 좀 안타깝다. 이 나이에 콥트어니 이집트어니 그런 것을 배울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도 읽어보면서 느꼈던 것은 그 바울의 묵시록을 읽었던 당시의 독자들에게는 참 매혹적인 자료가 아니었는가 생각이 든다.

 

바울의 묵시록에서는 하늘의 층위가 10번째까지 이른다. 그 하늘의 층위마다의 설명이 곁들여져 있다.

 

삼층천에 대한 이해를 위해 다양한 자료를 마주하면서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보통의 분들은 왜 그렇게까지 찾아보면서 확인하려고 하는가라고 물으실줄 안다. 그런데 나는 나의 지식적측면에서 보다는 어떤 개념이 모르는 것인지 해석이 잘못된 것인지 아니면 내가 기존에 알고 있는 그대로가 맞는지 아니면 오해하고 있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필요했다. 우리는 유대 묵시문학 혹은 영지주의적 문건들을 접하면서 혹여 단순히 누가 그것을 두고 영지주의라 하여 비판하면 그게 맞는줄 안다. 사실 영지주의적 해석은 거의 모든 기독교인들이 환상속에서 헤매고 있는 경험적, 환상적, 체험적 신앙 전체를 의미할 수 있다. 뭐 단순하게 기도를 하였는데 응답을 얻어서 신학을 하고 목사가 되었다느니 하는 것들까지도 말이다. 그들이 말로 안하고 그것을 글로 써 놓으면 그게 영지주의적 해석인 것이다.

남들이 못믿겠다고 하면 그 증거를 들이미는 근거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것에 좀더 가미하는 철학, 생색, 앎인 것이다.

 

나의 글을 읽으시는 분들도 참 많은 나의 영지주의적 요소를 아실 지 모르겠다. 이런 내가 영지주의가 옳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나는 오히려 그 영지주의적 해석관을 옹호하고 싶어진다. 그래도 그들은 말씀의 진정성과 의미의 확증을 위해 여러방법을 동원하여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은가. 뭔가 전달을 위해 강조하고 체험적 신앙을 말하고 환상을 증언하고 하는 것들을 무조건적인 비판을 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 말할 수 없다.

 

다만 귀신론이나 마귀론이나 어떤 경각심을 이용해서 선동하거나 위협하는 것은 어떤 다른 목적을 가진 것이다. 영지주의적 문건에 빠지게 되면 그런 신앙관에 매혹되어 다른 방식의 신앙은 맛이 없어진다. 나도 한동안 그런 것에 빠져있었는데 이내 그런 감동과 느낌등이 사라져버리자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어져 버렸던 적이 있다. 순복음교회쪽 성령타령도 그리워질때가 많았다.

 

나는 다들 경험해보셨으면 한다. 뭐는 이단이고 뭐는 비성경적이고 뭐는 틀렸다는 식으로 누구말듣고 피해가고 돌아가는 식은 정작 본인은 어떤 사람인가를 보면 놀라지 않겠는가. 사실 본인은 어떤지 잘 모른다. 그런데 누군가 본인에게 너는 영지주의적 해석을 하는거야 너가 생각하는 그것은 비성경적이야 니가 하고 있는 것이 이단이야라고 말하면 옆에 도끼라도 있으면 들고 말하는 이를 찍어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맞다. 정작 본인의 신앙이 어떤지를 잘 모르는 것이다. 근데 자기 자존심은 무성할 뿐이라는 것이다.

 

바울의 삼층천에 대하여 이해하기 위해 다양한 문건을 읽다보니 나는 그 삼층천, 세째 하늘을 하나님 나라라는 초월적 공간으로 봐야할지 아니면 바울이 체험한 환상의 일부분일지 나는 모른다. 다만 그도 자랑스레 말하지 않는 것으로 봐서 분명 그것을 드러낼게 아니라는 것은 동감한다. 오히려 복음의 내용을 말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만 더 확연해지고 은혜만 말해야 한다는 것만 더 중요해지고 있을 뿐이다.

 

어떤 분이 나를 보고 독특한 사람이라고 하신 분이 계신데 그것에 동감한다.

 

어찌보면 쓸데없어 보이는 짓거리일수도 있겠지만 궁금한건 못참는 성격이라 그렇다. 다 찾아보고 그 잣대가 나로 향해 있다면 그것으로 괜찮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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