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그리스도의 평화) 예수님께서 황금률을 말씀하시고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하신 다음 열매를 보면 나무를 안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열매는 바로 바오로 사도께서 말씀하시는 성령의 열매라고 생각합니다."성령의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 절제입니다." (갈라 5,22-23)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성령의 열매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예수님 없이도 행복을 느낄 수 있고, 기쁨을 느낄 수도 있고... 그러나 예수님 없이 누리는 행복과 기쁨은 참 행복과 참 기쁨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는 예수님 없이 내 힘으로 내 방식으로 사랑하며 살아 왔다면 이제는 그 삶의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율법을 자신의 말씀과 행위로 완성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지는 요청이십니다.
황금률을 말씀하시기 전에 있는 텍스트들의 흐름을 읽어 보시면 대략 이렇습니다.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는 삶에 대한 말씀에 이어서 그러한 삶은 남을 심판하지 않는 삶이라고 하십니다. 남을 심판하지 않는 삶이 거룩한 삶이고 그다음으로 그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이 바로 하늘의 아버지 이시라고 알려 주시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그러므로" 라고 하시며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라고 하시는데 여기서 남은 인간적인 우리의 이웃이 될 수도 있지만 저는 근본적으로 인간적인 내 이웃보다는 내가 하느님께 받고 싶은 그대로가 아닐까 합니다.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좋은 것을 얼마나 더 많이 주시겠느냐?" (마태 7,11) "그러므로" 라고 하십니다.
그러니 여기서 그러므로의 주어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아닐까 합니다. 곧 율법을 당신의 말씀을 온 몸으로 살아내신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현재는 예수님께서 보내 주신 협조자 성령과 함께 사는 삶이겠지요?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마태 7,20)고 하시며 그 열매를 맺으려면 주님의 뜻을 실천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그러므로 나의 말을 듣고 실행하는 이는 모두 자기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며 당신의 말씀을 듣고 실행할 것을 촉구 하시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황금률의 "그러므로"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청해서 받고 싶은 그 모든 것을 그대로 남에게 해 주라는 의미로 이해합니다. 만약 어떤 이가 자기가 미운 사람을 죽이러 가자고 했을 때에 남이 원하므로 그대로 하면 되는지요? 그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여기서의 그러므로는 내가 하느님께 청하고, 찾고 , 문을 두드려서 얻고자 하는 좋은 것들을 그대로 남에게 해 주라고 하시는 것일 것입니다.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로 그것을 몸소 사시지 않으셨습니까?
저는 그동안 성경을 공부하며 이런 결론을 얻었습니다. 사람이 거룩함을 잃은 것은 근본적으로 어디에 원인이 있었을까? 창세기의 아담을 통해서 깨달은 것이 바로 하느님께 묻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에덴 동산 한가운데에 선악과를 심어 놓으시고 그것을 따 먹지 말라고 하셨는데 모든 것을 아시는 하느님께서 아담이 그것을 따 먹을 것을 모르시지 않으셨을 텐데 왜 그것을 심어 놓으셨느냐고 궁금해서 물었어야 하지 않을까요? 사람이 거룩함을 상실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 저는 바로 이 부분이라고 묵상한 것입니다.
이 말씀은 곧 사람이 인생을 살면서 도저히 하느님의 의중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인데 그럴 때에 보통 아담처럼 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아담이 하지 않았던 부분을 해 주셨습니다. 살아계실 때에 얼마나 기도를 많이 하셨습니까? 이 세상을 살면서 진심으로 기도하며 피땀을 흘린 적이 있습니까?저는 없습니다.
또한 성경을 통하여 보면 바리사이들이나 율법학자들이 기도하는 장면을 보셨습니까? 물론 루카 복음서에 바리사이와 세리의 기도가 나옵니다만 그들의 기도가 어땠는지 아시지 않습니까? 결국 항금률의 그러므로도 기도와 관련이 있다고 본 것입니다. 바로 앞에 기도하라는 요청이 있기에 그렇습니다. 바로 기도는 우리가 거룩함을 회복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기도는 하느님과의 관계가 회복이 되었을 때에 가능하기에 그렇습니다.
"너희의 눈은 볼 수 있으니 행복하고, 너희의 귀는 들을 수 있으니 행복하다."(마태13,16) ~ 성경은 모두 하느님의 말씀으로 기록된 것이지요. 하느님께서는 영 이십니다. 그러므로 '남이 너에게 해주기르 바라는 대로'에서 남이란 나 아닌 이웃을 두고 함도 있겠으나 그렇게 되면 오류를 범할수가 있어요. 소순태 형제님께서 기록하신 글중에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勿施於人)'이 있습니다.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 일을 일으킬수 있어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 봅니다. 영적인 면에서 본다면 '성령의 은사'라고 봅니다. 글라라 님께서 하신 말씀들... 감사하게 배웠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러니 저의 생각으로는 훈계하지말고, 미움, 시기 질투하지 말고 사랑으로 대하라는 겁니다.
글라라님과, 소순태 형제께서는 잘 설명하실듯하여 소순태님의 글에 자케오의 예화를 설명 부탁드렸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케오에게 야단 안치시더라구요. 그냥 끌어 안지요. 난 이대목이 참으로 감동적입니다. "자케오야 얼른 내려와 오늘 니집에 머룰께"~ 자케오 아주 기분 죽입니다. '아1~~~야그들아 봤지롱. 그이가 우리집에 가신대, 룰룰랄라~~' 어때요? 맞나요. 또 누가 그럴라 , 성경가지고 장난친다고?? 과연 장난친 걸까요?~~ 글라라님께 감사와 찬사를 전하며 살롬입니다요.~살롬~
♡사랑 받고 싶으면 먼저사랑하세요♡~행복한 주일 보내세요. 살롬.
이정임님(kr3217)
+샬롬(그리스도의 평화)감사합니다. 그 사랑은 우리 주님 안에서 주님과 함께 하는 사랑이어야 하지요. 내 방식대로의 사랑이 아니라 주님께서 원하시는 방식으로 사랑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요. 예수님 말씀의 골자이지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