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집 안팎에 비닐하우스를 만들어 놓고 예쁜 장미꽃을 재배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특이한 점이 늘 휘파람을 불고 다닌다는 것입니다.
집 안에서도 또 집 밖에서도 계속해서 휘파람을 불면서 일을 하였지요.
그러던 어느 날, 이웃에 새로운 사람이 이사를 오게 되었습니다.
새로 이사 온 사람이 가만히 보니까 이 장미꽃을 키우는 농부가 쉴 새 없이 휘파람을 부는 것입니다. 이웃집 부인은 ‘혹시 내게 마음이 있어서 휘파람을 부는 것 아냐?’라는 착각을 하기도 했지요. 물론 이웃집 부인이 있건 없건 상관없이 휘파람을 분다는 것을 알게 되어 오해는 풀었지만, 사람들은 너무나 궁금해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왜 당신은 그렇게 휘파람을 계속 불어대는 거죠?”
그러자 농부는 자기 집으로 사람들을 데리고 들어갔지요. 집 안에는 이 농부의 부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앞을 보지 못하는 소경이었어요. 농부는 말했지요.
“제가 왜 항상 휘파람을 부는지 궁금 하시다고요? 그 이유는 제가 집 안에서나 집 밖에서 일할 때 이 사람은 저의 휘파람 소리를 들어야 함께 있는 것으로 알고 안심하기 때문이랍니다.”
맞습니다. 이 휘파람 소리는 함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신호였던 것이지요.
그리고 이 신호로 인해 안심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과 우리 사이에도 주님이 함께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는 신호가 있을까요?
물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아버지와 당신이 하나이듯이, 우리 역시 하나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셨기 때문에 함께 하기 위한 신호를 지금도 계속해서 보내고 계십니다.
나의 일상 삶 안에서,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 안에서, 또한 내가 기도하고 묵상하는 가운데에서 주님께서는 여러 가지 신호를 우리들에게 보내십니다.
그리고 그 신호를 듣고, 보는 사람은 평화를 느끼고 안심을 하게 됩니다.
바로 주님께서 함께 하심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하느님께서 보내시는 신호를 누구보다도 잘 인식하셨습니다. 그래서 자신 있게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라고 선포하실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보내시는 신호를 얼마나 잘 인식하고 있을까요?
예수님 시대의 유대인들은 그 신호를 전혀 깨닫지 못해서 이렇게 말했지요.
“당신은 언제까지 우리 속을 태울 작정이오? 당신이 메시아라면 분명히 말해 주시오.”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믿지 않기 때문에 깨닫지 못함을 이야기하십니다.
만약 내 자신이 지금 주님께서 보내시는 신호를 깨닫지 못한다면 바로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아니 과거 유대인들처럼 믿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주님께서 주시는 신호를 들을 수도 또 볼 수도 없는 것입니다. 주님께 대한 믿음을 다시금 점검해야 할 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