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부활에 대해 전하는 4복음서의 내용은 서로 약간의 차이를 보입니다. 예를 들어 예수가 묻힌 무덤에 가는 여인들의 이름과 숫자가 복음서마다 다르며, 그들이 무덤에서 만나는 젊은이/천사의 수 역시 복음서들 간에 서로 일치하지 않습니다. 그 젊은이 또는 천사가 여인들에게 하는 언사의 내용이 다르고, 그에 대한 여인들의 반응도 복음서에 따라 차이가 납니다. 하지만 4복음서들이 한목소리로 분명히 증언하는 점이 있다면 그것은 십자가상 예수의 죽음 이후 무덤을 찾은 첫 인물들은 (놀랍게도 사도들이 아니라) 예수를 따르던 여인들이었다는 점, 그리고 그 여인들은 그 무덤에서 예수의 주검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이 여인들이 전하는 “빈 무덤”에 대한 증언은 바로 오늘날 전세계의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고백하는 예수 부활에 대한 역사적 출발점입니다. 그것은 다시 말해 예수의 부활을 자신의 눈으로 목격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이미 복음사가의 시대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예수 부활에 대한 몇몇 음모설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의 시신을 훔치고 시침 뚝 떼고 그의 부활을 조작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어떤 이들은 예수가 아직 죽지 않은 상태여서 다시 정신을 차리고 도주하였다고 말하기도 하고, 급기야 어떤 이들은 이를 바탕으로 예수가 외계인이었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합니다.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났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참으로 믿기 어려운 일임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더 분명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예수의 부활이 과학적으로 증명될 수도, 반대로 부정될 수도 없다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부활은 우리가 아는 세상의 질서를 뛰어넘는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부활이란 단지 어떤 사람이 죽었다가 이 세상의 삶으로 회귀하는 사건이 아니라,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우리가 누리게 될 “영원한생명”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부활사건을 마주하는 인간은 하나의 선택 앞에 놓인 자신을 발견합니다. 그 사건 안에서 우리를 새로운 생명으로 초대하시는 하느님의 구원의지를 긍정하거나,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우연의 산물로 규정하며 그 궁극적 의미를 부정할 수도 있겠습니다. 우리들 그리스도인들이란 바로 부활사건을 통해 하느님의 구원의지, 즉 죽음을 넘어 우리에게 살아오는 하느님의 사랑을 만난다고 고백하는 이들입니다. 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미 하나의 선택에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루는 교회공동체는 아직 예수 부활의 의미를 세상 안에서 생생히 살아가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하기에 어떤 이들은 차갑게 비판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란 세상을 희망하지도 않으면서 세상을 떠나지도 못하는 존재라고… 그러나 이제 우리가 다시 한 번 용기를 내어 우리 선택의 참 의미를 살아가기 시작한다면 우리는 삶을 사랑하지만 죽음 역시 두려워하지 않는 예수 부활의 교회를 이루어나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은 마침내 예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부활이란 우리가 기억해야 할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바로 하느님 백성의 현재입니다.
최승정 베네딕토 신부
가톨릭대학교 성서신학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