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화> 죄를 피하고 선을 행하는 신앙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2010. 3. 8. 오전 9:57:41

글자
문득 옛날 학창 시절 때가 생각납니다.                             조명연 신부

고등학생 때 저는 처음 커닝이라는 것을 해보았습니다. 친구들과 미리 상의해서 커닝하기로 했던 것이지요.
친구들 중의 몇 명은 이런 말도 합니다. 학창시절에 이런 추억하나 없으면 어떻게 하냐면서
커닝은 성장기에 반드시 있어야 할 것처럼 이야기했지요. 정말로 그런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 역시도 커닝에 동참하기로 했지요.

처음 커닝을 했을 때 얼마나 떨렸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 커닝을 성공한 뒤에는 점점 대범해지고, 처음에 가졌던 죄책감도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더욱 더 많은 커닝을 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어떤 선생님께 적발되어 크게 혼난 뒤로는 커닝을 전혀 하지 않았지만,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면 죄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나쁜 것은 무조건 나쁜 것입니다.
나쁜 것을 합리화시키는 순간, 죄의 굴레에서 벗어나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큰 죄를 짓고 수감생활을 하는 분들이 처음부터 큰 죄를 지었을까요?
물론 실수로 그런 경우도 있겠지만, 많은 분이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속담처럼
작은 죄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죄와는 절대로 타협해서는 안 됩니다.
즉, 마귀에게 발붙일 기회를 주어서는 안 됩니다. 

복음의 비유 말씀에 등장하는 소작인들이 처음부터 주인의 아들을 죽이려고 했을까요?
아닙니다. 먼저 소출을 받으러 온 종들에게 악행을 저지르다가 그런 악행들이 확장되어
결국 극단적인 행동까지 나아갔던 것입니다.

이러한 극단적 행동 후에 그들은 “이제 포도밭은 우리 것이다.”라면서 기뻐했겠지요.
그러나 그 기쁨은 그리 오래 갈 수가 없지요.
왜냐하면 악을 통해서 얻은 기쁨은 순간의 기쁨만을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이 비유의 말씀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께 범할 이스라엘의 죄악을 예고하시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는 곧 우리들 역시 이 모습을 반복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죄에 대해서 합리화 시키는 우리들의 모습, 죄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약함을 간직하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 등에서
 과거 예수님을 반대했던 이스라엘의 모습이 또 다시 반복해서 나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런 분입니다.

“악한 자들은 가차 없이 없애 버리고, 제때에 소출을 바치는 다른 소작인들에게 포도밭을 내줄 것입니다.”

이 점을 기억하면서 제때에 소출을 바치는 의로운 소작인, 즉 죄를 피하고 선을 행하는 신앙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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