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화> 십자가 - 더 큰 선을 위한 하느님의 손길

2010. 3. 16. 오전 11:16:45

글자

하루 종일 밖에는 비만 내립니다. 나가서 걷고 싶은데 꼼짝 없이 갇혀 창밖만 내려다보니 답답하기만 합니다.

그러나 이 비가 메마른 대지를 적시고 나무에게는 생기를 준다고 생각하니 답답한 기분이 조금은 옅어집니다.

 

사순절의 중간에 서 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 수난과 죽음을 기억하고 그 삶을 배우는 시기입니다.

우리는 가끔 주어진 십자가가 은총이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

물론 너무나 큰 삶의 무게에 짓눌려 있는 사람에게는 이 말이 결코 쉽게 받아들여질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리는 비를 보면서 십자가가 은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늘 날씨가 맑다면 우선은 편하겠지만 그곳은 살 곳이 못되는 메마른 땅으로 변해 갑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곳에는 화창한 태양만이 아니라 비가 오는 흐린 날도 필요하고, 때로는 거친 바람도 필요합니다.

모든 것이 적절히 조화롭게 이루어질 때 풍요로워집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우리는 늘 성공과 안락함만을 바라지만 그것만으로는 우리의 삶이 풍요로워질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성공만이 아니라 실패, 기쁨만이 아니라 슬픔까지도 적절히 배분하여 우리의 인생을 꾸미시고 성장시켜 나가십니다.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는 고통스럽고 힘든 순간이지만 그 역시 하느님께서 배려하신 내 삶의 한 부분인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나에게 주어진 십자가는 선물이고 은총일 수 있습니다.

 

성경속의 인물들 역시 하느님의 선택을 받았지만 실패와 좌절, 시련과 고통을 거쳐서 성장함을 볼 수 있습니다.

그중 성조 요셉은 형제에게 버림받고 노예로 팔려갔으며,

파라오의 경호대장 포티파르의 노예가 되어서는 충직하게 일하고도 누명을 써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재상이 된 후, 자신을 노예로 팔아넘긴 형제들을 만나자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형님들은 나에게 악을 꾸몄지만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습니다.

그것은 오늘 그분께서 이루신 것처럼 큰 백성을 살리기 위한 것이었습니다.”(창세 50,20)

 

그의 삶은 고통의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원망과 분노보다는 그 모든 고통이 더 큰 선을 위한 하느님의 손길이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그것은 은총이 되기도 하고, 장애물이 되기도 합니다.

물론 어떨 때는 긴 가뭄과 태풍처럼 우리에게 주어진 십자가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버거울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가뭄 끝에 단비가 오고, 거센 바람 뒤에는 맑은 하늘이 드러나듯...

우리가 인내하고 기다린다면 십자가를 통해 하느님께서 나에게 이루고자 하시는 뜻이 분명히 드러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원망하고 회피하기보다는 그 역시 내 삶의 한 부분을 채워가는 과정임을 인정하고 잘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모든 것은 모두가 나름대로 다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어진 십자가를 회피하고 내 살길만을 찾는다면 그 고통의 시간은 아무 의미 없는 시간이 되고 맙니다.

그리고 회피한다고 그 십자가가 없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그 십자가의 무게만 더 무겁게 느껴질 뿐입니다.

 

특히나 레지오 단원들은 그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서 다른 그리스도인들보다 더 많은 것을 희생하고 봉헌할 것을 요구받습니다.

그래서 어떨 때는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편히 쉬고 싶다는 생각도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나에게 주어진 이 책무와 모든 어려운 상황들은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선물이 되기도 하고

애물단지가 되기도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기 나름입니다.

 

사순절 동안, 나는 주어진 십자가를 어떤 태도로 대하고 있는지 깊이 묵상해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들이 내려놓고 싶어 하는 그 십자가가 은총으로 다가올 수 있는 사순시기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마산교구 백남국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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