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코 축일을 축하드리며 성인 마르코 와 마르코 복음서 공부

2011. 4. 22. 오후 5:58:36

글자
 

마르코(4.25)


성인명         마르코(Mark)

축일          4월 25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복음사가

활동지역

활동연도    +74년경

같은이름      마르꼬, 마르꾸스, 마르쿠스, 마크, 말구


   마르코 복음서의 저자인 성 마르코(Marcus)는 “마르코라고도 불리는 요한”(사도 12,12-25)과 동일 인물이며, 사도들이 예루살렘에서 회합 장소로 사용한 집주인 마리아가 그의 어머니인 듯하다. 또 그는 성 바르나바(Barnabas)의 조카이며(골로 4,10), 키프로스(Cyprus) 태생의 레위 사람이다. 그는 예수께서 체포되실 때 몸에 고운 삼베만을 두른 젊은이가 예수를 따라가다가 붙들리게 되자, 삼베를 버리고 알몸으로 달아났던 인물로 여겨지나(마르 14,51-52) 확실하지는 않다.

   그는 바오로(Paulus)와 바르나바를 수행하여 안티오키아(Antiochia)로 갔고(사도 12,25), 그 다음에는 키프로스로 바르나바와 함께 갔으며, 바르나바와 함께 바오로의 1차 전교여행을 수행하였다(사도 13,5). 그러나 밤필리아에서 바오로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온다(사도 13,13).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나 어쨌든 바오로와의 의견 대립 때문에 바오로의 제 1차 전교여행에는 동행하지 않았다(사도 15,36-40). 마르코는 바르나바와 함께 키프로스로 갔으며(사도 15,39), 바오로가 투옥되었을 때에는 로마(Roma)에 함께 있었다(골로 4,10).

   그는 분명히 베드로(Petrus)의 제자였는데 베드로는 그를 애정 깊게 “내가 아들로 여기는 마르코”라고 언급한다(1베드 5,13). 불확실한 전승이지만 그는 알렉산드리아의 초대 주교였으며, 신약에서 여러 번 언급된 바와 같이 요한 마르코임이 분명하다(사도 12,25). 동방에서는 이 요한 마르코를 또 다른 사람으로 여기는데, 그는 비블로스(Byblos)의 주교라고 하며 9월 27일에 축일을 지낸다.

   어쨌든 마르코는 60-70년 사이에 복음서를 기술했는데 주로 베드로의 가르침을 기초로 하였다. 소아시아의 히에라폴리스의 주교 파피아스는 그가 베드로의 통역자였다고 하며, 이방인 그리스도인을 위하여 로마에서 복음을 기술했다고 전한다. 마르코는 베네치아(Venezia)의 수호자이며 그의 유해는 그곳의 산마르코(San Marco) 대성당에 안장되었다고 한다. 그의 문장은 사자이다.


마르코 복음서


1  개요.

   현재 학자들에 의해 3복음 중 가장 오래된 전승으로 인정 되고 있는 이 복음은 그 저술의도가 예수님의 인생인 전기를 기록함에 있지 않고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기쁜 소식”을 전하는데 있다.

이 복음의 중점은 예수의 가르침보다는 그분의 행적 특히 십자가에 못 박힌 메시아에 대한 내용이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로써 성부에게 (11,11.9,7) 악마에게도 (1,24. 3,11. 5,7)사람에게 까지(8,27)인정 받는 하느님의 아들로 기록하고 있다.

 또한 그분은 메시아이며 천사보다 높고 (13,32) 사죄권을 갖고 있는 분이며(2,10)기적과 구마로써 그 능력을 나타내는 분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유다지도자들과 군중으로부터 이해 받지 못하고 자신이 메시아임을 애써 숨겨야 했던 것은 당시 유다인은 정치적 메시아를 원했기 때문에 정치적 메시아로 오해 받을까 염려했기 때문이었다. (기적 후 이웃에게 알리지 말라“)함은 이 때문이다.  메시아적 삶은 수난, 죽음, 부활이다.  

마르코 복음은 공관 복음의 모체이다.       

마태오와 루까 는 어록 집 (하느님의 문헌집)과 마르코 복음이 자료가 됨 마태오는 1,1에서처럼 우리와 함께 계시는 임마누엘이 주제이다.

마태오는 유다인 들을 상대로 썼다. 권위와 권능을 부각 시킨다.권위와 권능을 가진 전권대사로써 마태오는 구약성서를 만이 인용했다.

 루까는 개인전승이 많이 나온다. 당시 소외계층에 대해서 관심과 구원을 주시는 분, 자비와 용서를 베푸시는  구원언자이신하느님께서는 예수를  말한다.

2, 마르코 복음에 대한 초대 교회의 전승

  마르코에 대한 제일 오래된 증언을 AD 115년경 papias의 증언인데 그에 의하면“베드로의 통역관인 마르코는 주님의 말씀과 행적을 정확히 기록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레옹의 이레네오스도 papias의 증언을 보충하면서 베드로의 제자요. 통역관 이었던 마르코는 베드로와 바오로 사후에 설교를 기록하여 우리에게 전해주었다고“ 증언하고 있으며 이밖에도 ALexandrinus 의 elemens (AD 225) 도 저자에 대해 신임 할만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3, 저자와 저술 년대

  사도행전 12,12에 나오는 마리아의 아들 마르코라는 설이 있고 사도행전12,25.17,5-13 바올로와 발라바와 동반했던 마르코라는 설도 있다. 그러나 그가 팔레스티나에 대해 정통하지 못한 점(7,31) 유대인 풍습을 신랄하게 (7,1-2)한것으로  보아 유다 출신이라는 설도 있으나 위의 것으로 확정 할 수 있겠다.

마르코 13,1-2에 예루살렘 멸망에 대한 기사가 나오는데 이 멸망은AD 70년에 이뤄짐 그러므로 이 이 책이 예루살렘 멸망 전 (AD 70년)에 쓰여 진 것은 확실하다.

성전 1차 파괴, 바빌론  2차 파괴, 로마 폼페이  (헤로데 재건)  3차파괴, 마호멧.  아직 재건 못함  

 마르코 13,14-20에 유대지방의  전쟁위기에 대한 말이 있는 것으로 봐서 저술 연대를 일차 유대독립 전쟁이 시작될 적전 (AD 66)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베드로, 바오로,  AD,65-67 사이에 순교 한 것으로 봄)

  모든 전승을(독자, 집필 연대, 주제) 종합해 보면 마르코 복음은 베드로의 생존시에 나온 것 같이 않다. 이레네우스는 66-68년경이라 본다.  

 (
저자 마르코는 전통이고 실지는 사도들의 증언을 몸소 익힌 사람으로서 복음에 전념한 해외 교포에 속한 유다 계 그리스인)  




공관 복음서란

마태오, 마르코, 루까, 3 복음을 한데 일컬어 공관 복음이라 한다.

  이 3복음서를 읽어 보면 서로 일치 하거나 공통된 점이 많아서 이 복음서 사이에 비교와  대조를 쉽게 하기위해서 공통된 대목을 한데 모아 복음서를 출판하게  되었고 이렇게 공통되는 대목들은  각 복음사가에 따라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다 해서 공관 복음이라 함

예수 전승의 문헌화 (복음서의 생선 과정)
      처음 구전으로 전해지던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이 오늘날 우리가 갖고 있는 하나의 복음서가 되기까지에는 긴 시간과  여러 과정을 거쳤다

전승이 기록되는 제1단계(사도 교회와 예수님의 직제자들 시대의 예수님의 전승) 당시에는 바로 그들이 (예수님의 생존시 제자, 목격 중인 들이 살아 있을) 교회복음의 선도자였기 때문에 서면 화 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그때는 예수님에  관한 행적이나 가르침 등을 구전으로 전하면서 예배나 모임에서 전하고 필요에 따라서는 그것을  설명하고 해설 한 정도였다.

전승이 기록되는 제2단계(사도와 직제자후의 전승)
그러나 이스라엘부터 시작된 복음 선포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외교 지방에 전수할 책임과 유럽, 아프리카, 소 아세아 등으로 퍼지자 선포 자들은 수적 부족을 느끼게 되었고 때문에 후임자를 파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또 제자들과 목격증인들이 점차 세상을 떠남이 따라서 문서화의 느끼게 되었고 문서화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오늘 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처럼 문이 아니고 부분적으로 기록한 것들이었다.

 더구나 당시에는 종이의 질이 좋지 않아서 쉽게 마모되어 또 다시 사본을 만들어야 했다. 또 인쇄술이 이전이어서 일일이 손으로  한자 한자 옮겨 써야 했기 때문에 옮겨 쓰는 과정에서 오자, 누락, 오역 등이 나타나고 이들의 사본 회 수가 늘어남에 따라 내용도 차이가 심해지게 되었다.
(현재 2600년까지의 사본 발견)

 

댓글 2

  • 2011년 4월 22일 오후 6:01

    이영배 마르코 단장님 오는 25일 축일 축하 드립니다.

  • 2011년 4월 24일 오후 1:38

    축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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