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넷째 주 레지오 훈화 주제 : 나는 신앙의 여인인가
가난한 과부의 헌금 루카복음 21,1-4
예수님께서 눈을 들어 헌금함에 예물을 넣는 부자들을 보고 계셨다. 그러다가 어떤 빈곤한 과부가 랩톤 두 닢을 거기에 넣는 것을 보시고 이르셨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을 예물로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지고 있던 생활비를 다 넣었기 때문이다.”
넉넉지 못한 생활을 살아가고 있는 과부가 가진 것을 다 바쳤다는 것에 우리는 금방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당장 끼니를 해결할 돈이 없으면 누구에게 어떻게 부탁할지 난감하지요. 예수님께서는 부자와 가난한 자의 마음가짐을 보시는 것 같습니다. 부자라면 꼭 돈만 가진 사람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사랑을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은 다 부자이지요. 자신의 재산도, 건강도, 시간도, 모두 자신만을 위해 사용하는 사람들입니다. 모든 것이 다 하느님으로부터 주어졌다고 재산을 모을 수 있었던 것도 하느님께서 건강을 주시고, 시간을 주시고, 기회를 주셔서 거기에 나의 노력이 들어가 이루어졌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내가 뼈 빠지도록 일한 대가라고 여긴다면 우리는 하느님께 드리고 이웃과 나누기가 너무 어려울 것입니다. 그래서 매순간 내 삶 안에서 나를 이끄시는 분이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믿고 사는 신앙생활도 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왜? 내가 열심히 하면 다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우리가 하느님을 마음으로 느끼고 내 마음 안에 가득 차 계심을 느끼는 생활이 되기 위해서는 삶에 실천이 필요합니다. 주일 미사 후 성당 문을 나서면서 하느님을 잊고 내 것을 나누는 희생적인 생활을 실천하지 않는 다면 주일 미사만 겨우 참석하는 미지근한 신자생활을 면하지 못할 것입니다. 가난한 과부는 어떻게 해서 가진 것을 다 바칠 수 있었겠습니까? 과부는 자신의 삶 안에서 하느님을 빼고는 생각도 하지 못할 정도의 믿음의 생활을 하는 사람임이 틀림없습니다. 가난한 과부는 나를 살아갈 수 있게 해주시는 분이 하느님이시고 그분이 나에게 살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주시니 그분께 모든 것을 드리는 것은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즉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고 그분께 자신의 삶을 온전히 내맡긴 신앙의 여인입니다. 그래서 과부는 가난하지만 하느님 때문에 기쁘고 가난이 짐스럽지 않고 자신의 처지를 만족 해 하며 감사의 생활을 하는 영적으로 부자입니다. 가난한 사람이 행복하다고 하신 말씀이 이런 사람을 두고 하시는 말씀일 것입니다.
자신의 삶을 하느님께 전적으로 투신하는 과부와 다르게 우리의 신앙생활은 풍족한데서 얼마를 바치는 부자와 같이 액세서리에 불과한 것은 아닌지요. 전례력으로 새해인 대림절을 맞이하며 우리의 신앙생활도 점검해 봅시다.
자신의 삶을 하느님께 전적으로 투신하는 과부와 다르게 우리의 신앙생활은 풍족한데서 얼마를 바치는 부자와 같이 액세서리에 불과한 것은 아닌지요. 전례력으로 새해인 대림절을 맞이하며 우리의 신앙생활도 점검해 봅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