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5: 12,15
형제 여러분, 한 사람을 통하여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죄를 통하여 죽음이 들어왔듯이, 또한 이렇게 모두 죄를 지었으므로 모든 사람에게 죽음이 미치게 되었습니다. 사실, 그 한 사람의 범죄로 많은 사람이 죽었지만, 하느님의 은총과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의 은혜로운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충만히 내렸습니다.
사도 바오로의 말씀을 들으면서 세상의 밝음과 어두움의 역할을 생각해 보면 많은 사람이 이렇게 만드는 것만은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듭니다. 소돔과 고모라 멸망에도 의인 10명이 필요했습니다. 이렇듯 소수, 또는 한 사람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는 미사시간이나 레지오 시간이나 모임에 참석할 때 나 하나 지각하는데 무슨 영향을 끼치겠는가 하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들이 모이면 질서가 없어지고 일찍 오는 사람들에게 분심을 주고, 늘 먼저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불편한 마음을 가지게 만듭니다.
길을 안내하는 데는 지팡이와 이정표가 있습니다. 운전을 하다보면 이정표의 중요성을 알게 되고 고마움을 느끼게 됩니다. 이정표는 우리가 가야할 길의 방향을 알려줍니다. L.A., West Covina, San Diego등 가야 할 방향을 가르쳐 줍니다. 이렇게 갈 곳을 알려만 줄 뿐입니다. 그러나 지팡이는 몸소 같이 가주는 움직이고 행동으로 실천합니다. 이정표는 꼼짝도 하지 않고 마우것도 안 하면서 남에게 알려주기만 합니다. 즉 자기는 가지 않으면서 남에게만 가라고 일러줍니다.
우리 중에도 지팡이 역할보다 이정표 역할을 하는 사람이 더 많은 게 안타깝습니다. '단장님, 제대포가 너무 더럽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이정표와 같은 사람이고, '단장님, 제대포가 너무 더러워서 제가 빨아 왔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지팡이와 같은 사람입니다. 어느 본당이나 쁘레시티움에 이정표와 같은 사람이 있지요. 자신은 이정표처럼 꼼짝도 안 하고 가만히 있으면서 신자가 해야 할 일들을 알려주고, 본당에서 해야 할 일들을 알려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 공동체에 진정으로 펄요로 하는 사람들은 이정표가 아니라 지팡이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진정한 길은 이정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지팡이가 되는 것입니다.
나 자신부터 남에게만 갈 길을 알려주는 이정표가 되지 말고 스스로 움직이고 행동하는 지팡이가 되어 우리 공동체에 기쁨을 가져다주는 자신이 되도록 해야 하지 않을 까요?
'나는 이정표인가?, 지팡이인가?'
~~ 신 영주 수녀님의 10월 넷째주 레지오 훈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