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적인 것과 활동적인 것
내 삶의 여정이 어떠했는냐고 묻는 누군가의 물음에 상세히 답변해야 한다면,
내 삶의 여정의 특징 세 단계를 구분지어 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 첫번째 단계는 가정적, 문화적, 사회조직적 측면에서 철저한 생활체험의
단계였습니다.
대개 40세까지 그랬습니다.
이 시기의 특징을 총체적으로 드러내는 명칭이 있으니 바로
'가톨릭 액션(Azione Cattolica)' 이 그것입니다.
나는 마치 그 활동이 내 존재의 본질이기나 한 듯이 심취했습니다.
나는 그 활동으로 말미암아 작고 좁은 가정이라는 환경을 벗어나 교회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고, 교회의 깊은 긴장상태를 체험하게 되었으며,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윌' 라는 거룩한 개념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는 분명 그 활동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 활동에 대해서 내게는 소중한 기억만이 남아 있습니다.
40세 때에 다른 하나의 실체를 발견하게 된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놀라운
사막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하라 사막은 내게 참된 영혼의 피난처였고, 훌륭한 관상의 자리였으며,
하느님과 친교를 나눌 수 있는 참으로 마음에 드는 다락방이었습니다.
그 뒤 나는 원한 적도 없는데도 앞의 두 단계의 종합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관상의 침묵이라는 것도 알게 된 지금에 이르러 하느님께서는 나를 관상과 활동이
하나의 실체, 곧 교회 안에서 혼합되어야 하는 시기로 이끄셨습니다.
교회는 그 실체상 사막에도 존재하고 길 위에도 존재합니다.
교회는 역사의 밤 속에서 기도하기도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재생의 길로
부름받은 세상의 고통스러운 긴장 속에 존재하기도 합니다.
교회, 그야말로 진정한 교회는 관상적인 동시에 활동적입니다.
바로 그 창시자요, 유일한 모델이신 예수님께서 관상적이고 활동적이신 것처럼
말입니다.
-보이지 않는 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