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마태 5,9)
여기서 '평화를 이룬다'는 말이 다툰 사람과 직접 화해를 하는
것(마태 5,23.25 참조)인지, 아니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하면서 발발한 전쟁을
중재하는 노력처럼 다른 이들의 싸움에 관여하는 것인지, 아니면 둘 다를 가리키는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는 싸움을 벌이는 사람들 또는 공동체들을 화해시키려는 노력을
떠올리게 합니다.
구약성경에서 하느님은 모든 것과 올바른 관계를 의미하는 평화
[샬롬](판관 6,23-24; 로마 15,33 참조)의 원천적 근원이십니다.
다시 말해, 평화는 인간 스스로 노력으로 획득할 수 있는 게 아니라 평화의 하느님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에제 37,26; 이사 48,18; 54,13; 60,17 참조).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과의 관계 덕분에 적과 우호 관계를 맺고
(레위 26,6; 에제 34,25 참조) 그들 가운데 임하신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하게 됩니다
(에제 37,26 참조).
또한 평화는 나라들 사이(판관 4,17 참조), 백성들 사이 (신명 20,10 참조), 개인들 사이
(1열왕 5,26; 즈카 6,13; 애가 3,17 참조)의 우호 관계와, 공동체나 개개인이 구원된 상황을
서술하는 데 사용됨으로써 '관계'를 표현하는 어휘가 됩니다.
예언서는 하느님께서 메시아를 통해 결정적 평화, 즉 '온전한 구원'을 가져다줄 것을
예언합니다.
대표적으로 이사 9,5-6와 즈카 9,9-10에서는 ‘메시아’ '평화의 왕'을 지상에서 평화를
성취하는 인물로 묘사합니다.
마태오 복음에서 평화는 주로 사람들 사이의 화해와 화목을 가리키는 데 사용됩니다.
마태 10장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어느 집에 들어갈 때 습관적으로
인사를 건네라고 권고하십니다:
"집에 들어가면 그 집에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여라"(10,12).
그리고 이미 그곳에 거주하는 이들
이 받아들이는 모습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질 거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사명은 평화 안에서 이루어지며 평화를 가져가 줍니다.
그런데 그것이 꽃피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반응하는 이들의 태도에 달려있습니다.
-이승엽 미카엘 신부 | 선교사목국 신앙교육부(의정부교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