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도 나를 떠나고 싶으냐?(요한 6.60-69)
수많은 이들이 예수의 기적을 보고 그분의 제자가 되기를 자청했다.
그러나 메시아와 함께 걷는 길 위에 놓여 있던 건 달콤한 과실이 아니었다.
예수를 따르는 길에서 얻을 세상의 보상이 자신의 생각과는 다른 것임을 알고
많은 이들이 실망하며 떠나간다.
이제 예수의 눈길은 사도들에게 머무른다.
그리고 물으신다.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열두 사도 각각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삶의 못자리를 내려놓고. 가족의 만류를 뿌리치고, 새로운 예언자요
스승이라 생각하며 길을 나섰건만, 함께 지내며 알게 된 스승의 정체는 자신들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그리스도. 기름 부음 받은 이!
천상의 목소리가 보증하고 구약의 예언자들이 일컫던 메시아가 아니던가.
진정한 세상의 왕인 예수를 따르며 제자들은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에
희열을 느꼈다.
그러나 그 확신했던 마음 한가운데 넌지시 던져진 예수의 예상치 못한 질문에
사도들의 마음은 파도친다.
이미 답을 얻었다고 생각했다. 각오를 다잡았다 생각했다.
하지만 제자들의 의지를 되묻는 스승의 질문 앞에서 모두들 자신이 했던 결심을
돌아본다.
계속 이 길을 걷는 것이 옳은 것인가?
세속의 영광과 천상의 신비 앞에서 이미 저울질을 끝냈다 생각했건만 가르침이
거북하다는 이유로 떠나가는 이들을 보며 열둘의 마음은 더욱 크게 요동친다.
언제부턴가 세상을 바꿀 하느님의 불길이 되겠다던 초심은 잔잔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렇기에 '떠나고 싶으냐?'는 예수의 말씀에 그들은 '나를 따르겠느냐?'는
처음을 보게 된다.
주님 말씀에 나 또한 나의 처음을 되돌아보게 된다.
조금 어슬프지만 자신감 있었고, 무엇이든 받아들이려고 했던 순진함도 있었다.
하지만 경험이 쌓이고 사람들을 만나며 내 생각과는 다른 것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지금은 예수님 뜻에 맞는 것을 고민하기보단 일반적으로 좋은 것을
선택하는 데 익숙해졌음을 깨닫는다.
문득 내가 처음 목적했던 곳과 멀리 떨어진 채 걷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그럴 때면 열심히 걷는 이 길 끝에 있는 것이 처음 내가 바랬던 목표였는지
헷갈리기도 한다.
앞으로만 달리던 걸음을 멈추고 잠시 숨을 골라보자.
주님과 함께 걷는 길이 세상이 말하는 좋은 것과는 조금 멀리 떨어져 있을 수도
있지만, 장말 중요한 건 빨리 도착하는 것이 아닌 바르게 걷는 것이 아닌가.
우리가 따르는 예수님의 길은 나 혼자가 아닌 예수님과 함께 걷는 길이기에...
-최재관 신부. 육군 53사단 하상바오로 성당주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