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2월 20일(다해) 연중 제7주일:생명의 말씀:우리는 참 가톨릭적인 사람

2022. 2. 21. 오전 5:2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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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2월 20일(다해) 연중 제7주일:생명의 말씀:우리는 참 가톨릭적인 사람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황금률이라 합니다. 

그리스도교를 포함한 많은 종교들이 전하는 종교적인 가르침일 뿐 아니라 

인류 보편적 가치입니다. 

'선을 행하고, 악을 피하라.'와 더불어 사회 문화적 가치 그리고 윤리를 긍정하는 

모든 이에게 행위의 근원이 되는 가르침입니다. 

함께 사는 삶을 이해하는 평범한 사람이 일상을 살아가며 간직하려는 보편적인 

가르침입니다. 


보편성을 지닌 황금률은 시간, 장소, 문화, 민족의 한계가 없습니다. 

기간 한정, 지역 한정, 인물 한정 없이 소중한 가르침으로 지켜져 왔습니다…만, 

그 실현은 녹록지 않습니다.

그 현실적 가르침이 논어 공야장(公冶長)편에서 공자와 자공의 이야기로 전해 옵니다. 

자공이 말합니다. "남이 나에게 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 나도 남에게 그것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스승님이 말씀하십니다. 

"사야, 네가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안도감이 몰려옵니다. 


이 글을 발견하고 또 다른 보편성에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황금률에 담긴 보편적인 가치를 모두가 보편적으로 받아들이지만, 모두가 보편적으로 

실현하지 못한다는 그 보편성에 안도합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어. 마땅한 가르침대로 살지 못하는 현실에 부끄러운 마음을 

나만 갖고 사는 것이 아니었어. 가르침의 현실을 나만 못 사는 것이 아니었어.' 현실이…. 

그렇습니다. 

좋은 가르침이고, 당연한 말씀이며, 마땅히 그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합니다. 

남에게 내가 바라는 그대로 해 주고 착한 일을 하며 살아야 하는데, 내가 바라는 대로 

남이 해 주어야 하고 남들이 나에게 착한 일을 해 주기를 바라며 살아갑니다. 

그렇게 황금률의 반작용을 몸소 실천하며 살아갑니다. 


보편적인 황금률뿐 아니라 종교적 윤리를 대하는 마음도 비슷합니다. 

사람은 자기를 미워하는 사람을 싫어합니다. 

내 뺨을 때리면 나도 때립니다. 

내 것을 가져가면 경찰에 신고합니다. 

예수님은 그러지 말라 하십니다. 

미워하는 사람에게 사탕 하나 더 주고, 뺨을 때리면 지갑도 내주며, 내 것을 가져가면 

덤으로 더 주라고 하십니다. 

그 말씀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유치부 때부터 주일학교에서 배웠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못합니다. 

그렇게 다시금 우리의 보편성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우리는 보편적인 가치를 보편적으로 받아들이지만, 아주 보편적인 모습으로 

그 보편성을 살지 못합니다. 

나만 그런 거 아닙니다. 

알고 보니 옆 사람도 그렇습니다. 

건너편 사람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아십니다, 

우리가 아주 아주 보편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그리스도교인 역시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오늘 복음 말씀을 건네시는 겁니다. 

잘하고 있으면 이야기할 필요가 없을 테니 말입니다. 

그래도 해 보라고, 잘 안되는 거 아는데 그래도 해 보라고, 잘 좀 해 보라고. 

그렇습니다. 

잘 안되는 거 아는데도 해보려 애쓰는 것이 보편적인(catholic) 신앙인의 보편적인 

일상입니다.



-김한수 토마스 신부 | 종로성당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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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루카 6,36)


두 팔 벌린 예수님께서 할배 바위에게 자비로우라고 말씀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할배 바위는 세상에 대한 미움과 분노, 억울함을 호소하는 우리입니다. 

우리는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말씀을 실천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도 주님 앞에 꿇어앉아 그분 말씀에 귀 기울여 봅니다. 

그분을 닮아가려 애쓰는 우리를 주님께서는 품에 안으시며 힘과 용기를 주시지 

않을까요.


-사진 설명:홍덕희 아녜스 | 가톨릭사진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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