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뜻에 일치하는 삶

2022. 2. 11. 오전 5:4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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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뜻에 일치하는 삶



하느님의 뜻에 합하면서 살아 가는 사람은 충만하고 영원한 기쁨을 맛본다 

이것이 하느님의 아들딸들이 누리는 가장 큰 자유이고, 이 세상의 모든 귀한 것, 

즉 좋은 가문, 높은 지위, 엄청난 권력, 아니 모든 왕국의 어느 것보다도 

값진 보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평화는 여러 성인들이 실제로 경험을 통하여 얻은 것을 우리에게 전해 

주듯이 '사람의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하느님의 평화'(필립 4, 7 참조)를 

말해 준다.


이러한 기쁨은 우리의 오감을 통하여 얻는 기쁨, 사회생활 속에서 맛보는 쾌락,

기타 다른 어떠한 즐거움보다 훨씬 차원 높은 기쁨이다.

세상적인 기쁨은 잠시 우리의 오감을 사로잡지만, 그러한 기쁨은 우리를 속이는 

기쁨이고 허무한 기쁨일 뿐 아니라 결코 오래 지속되는 기쁨이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기쁨은 우리 안에 깊이 자리잡고 있는 영혼에 해를 가져오는 

방해물이 되어 진정한 평화를 맛볼 수 없게 한다.


세상에 있는 쾌락이란 쾌락은 모조리 맛보았으나 모든 것이 허무하다고 느낀 

솔로몬 왕은 다음과 같이 비통한 말을 했다.


"이 또한 허무요 바람을 붙잡는 일이다."(코헬 4, 16)


"미련한 자는 달처럼 변하나 경건한 자는 변하지 않는 해처럼 그 지혜가 계속 되리라."

(집회 27,11 참조)


어리석은 자 곧 죄인은 달과 같아서 오늘은 기뻐하고 내일은 울고, 오늘은 양과 같이 

순하나 내일은 곰과 같이 사나워진다.

왜 그럴까? 

그의 마음의 평화는 그가 만나는 세상일, 즉 때로는 좋은 일, 때로는 궃은 일에 

달려 있기 때문에 수시로 일어나는 세상일에 지배된다.

반면에 의인들은 해와 같아서 그 마음은 늘 슬기롭고 평화로워 어떠한 일이 

일어나더라도 흔들리지 않는다.

그의 평온한 영혼은 하느님의 뜻에 일치돠어 있기 때문에 흔들림이 없다.

이러한 평온이 바로 예수님 탄생 때에 천사들이 목동들에게 나타나서 노래했던 

평화이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

(루가 2, 14)


여기서 말하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이란, 무한히 좋으시고 완전하신 

하느님의 뜻에 자기의 뜻을 합치는 사람말고 과연 다른 누구를 가리키겠는가?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하느님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로마 12,2)를 식별하면서 그분의 뜻을 살피는 사람이야말로

의로운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거룩하신 하느님의 뜻에 합하면서 살아간 많은 성인들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천국을 맛보면서 살아갔다.

도로테오 성인은 말한다.


"성인들은 그들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하느님의 손으로부터 직접 받는다고 

생각하는 것에 습관이 되어 있으므로 늘 영혼을 성스럽게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파치(Pazzi)의 마리아 막달레나 성녀는 얼마나 하느님의 뜻에 합하는 생활을 했던지 

'하느님의 뜻'이라는 말만들어도 즉시 황홀경에 들어 갔다고 한다.

세상살이에서 일어나는 여러 사건들이 우리의 감각에 작은 파문을 일으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니 이러한 파문은 영혼의 표면만을 건드릴 뿐 우리의 뜻이 하느님의 뜻과 

합해 있는 한, 영혼의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평온과 평화에는 조금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우리 주님께서도 말씀하셨다.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요한 16, 22)이며

"너희 기쁨이 충만해 질 것이다."(요한 16,24)


하느님의 뜻에 합하면서 살아 가는 사람은 충만하고 영원한 기쁨을 맛본다.

충만한 기쁨은 그가 바라는 것을 모두 얻는 데서 오는 기쁨이고 영원한 기쁨은 

아무도 그 기쁨을 빼앗지 못하는데서 오는 기쁨이다.



-3장 온전한 합일에서 비롯되는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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