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구나 주 그들의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기를 빈다."(2역 대 36,23)
오늘 복음에는 서로 반대되는 말들이 나옵니다.
생명과 멸망, 구원과 심판, 빛과 어둠. 이러한 말들을 구분 짓는 기준이
있습니다.
그 기준은'믿음'과 '믿지 않음'입니다.
생명과 구원과 빛은 '믿음'의 결과입니다.
반대로 멸망과 심판과 어둠은 '믿지 않음'의 결과입니다.
그러면'‘믿음'과 '믿지 않음'의 차이는 어디에서부터 생겨날까요.
어느 신부님의 사목 경험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한 신 자가 면담을 요청해왔다고 합니다.
그 신자가 신부님께 말했습니다.
"저는 믿음이 커지지 않아요."
그래서 신부 님은 신자에게 질문했습니다.
"기도는 하십니까?"
그 신 자는 "아니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신부님이 다시 '성경 은 읽으십니까?' 하고 물으니, 신자는 또 "아니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신부님이 다시 물었습니다.
"평일 미사는 참석하십니까?"
그 신자는 똑같이 "아니요."라고 대답했 습니다.
'믿음'이라는 말은 혼자 다니지 않습니다.
매번 붙어 다니 는 단어가 있는데, 그것은 '생활'이라는 말입니다.
'믿음 생활', '신앙 생활.' 이를 풀어서 말한다면, "믿음은 생활"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루를 생활하면서 거르지 않고 반드시 하는 것 이 있습니다.
바로 먹는 것입니다.
아침, 점심, 저녁 때가 되면 거르지 않고 꼬박꼬박 챙겨 먹습니다.
먹어야 우리 육신이 활동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 리 믿음도 먹어야 성장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양식은 기도와 말씀과 성사입니다.
기도는 꼭 많 은 시간을 투자해야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톨릭기도 서」에 있는 아침기도와 저녁기도를 빼먹지 않고 바치기 만 해도
영혼의 양식이 됩니다.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 전체를 다 읽는 것도 좋지만, 일단은 「매일미사」에 있는 그날의 말씀을
읽는 것으로도 충분합니다.
마지막 으로, 성사와 관련해 가장 좋은 실천 방법은 평일 미사에 자주 참여하는
것입니다.
매일 참여할 수 있다면 좋겠지 만, 그러지 못할 경우에는 한 주간에 적어도
한 번, 주일 미사만큼은 반드시 드려야 하겠습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우리는 하느님의 작 품"(에페 2,10)이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 느님의 작품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미 우리와 세상 모 두를 만드시고 나서 "참 좋았다."
(창세 1,31) 하시며 만족 해하셨습니다.
그런데 믿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참 좋게 만들어진 자신을
'자기 자신이 보기에' 좋도록 변질시켜 버립니다.
반면, 믿는 사람은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참 좋게 창조된 자신을 본래의
지향대로 '하느님께서 보시 기에' 참 좋게 가꾸고 보존하려고 합니다.
이것이 믿는 사 람과 믿지 않는 사람의 차이입니다.
-김시용 베드로 신부 (연천 주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