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의 포도밭

2017. 10. 27. 오전 7: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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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의 포도밭

 

 

우리가 주고받는 말은 진실성을 근간으로 한 신뢰 관계에 바탕을 둡니다. 나의 말은 누군가를 향합니다. 그 누군가가 그 말을 믿어주기를 희망합니다. 동시에 그 누군가가 맹목적이 아니라 자유롭게 자신의 말을 받아주기를 바랍니다. 나의 말이 거짓이라면, 혹은 상대가 온전히 자유롭지 못하다면, 신뢰의 관계는 깨지고 말 것입니다. 이처럼 말에는 두 사람이 주고받는 신뢰 관계가 전제됩니다. 하느님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이 전하는 말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믿음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경험하는 것은 말씀하시는 하느님보다는 침묵하시는 하느님입니다. 하느님은 어디 계시는가? 왜 불의와 비참한 현실, 폭력과 갈등, 전쟁과 기아로 어지럽혀진 세상을 바로잡지 않으시는가? 우리는 동시대인이 던지는 이러한 물음을 도외시하고 하느님의 말씀에 대해 막연히 이야기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 하나는 이미 성경도 그러한 물음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제게 온종일 '네 하느님은 어디 계시느냐?' 빈정거리니 낮에도 밤에도 제 눈물이 저의 음식이 됩니다."(시편 42,4). 성경의 저자나 인물들은 우리보다 더 깊이 하느님의 침묵을 경험하고, 우리보다 더 간절히 하느님을 찾았던 사람들인지도 모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하느님 말씀을 전해주지도, 이상적인 신앙만을 강요하지도 않습니다. 하느님의 부재를 경험하고 삶의 시련 속에서 좌절하고 절망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하지만 그들이 어떻게 믿음의 길에서 포기하지 않고 자신들의 비참한 삶을 기도로 승화시켰으며, 결국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는지를 보여줍니다. 마치 우리가 하느님 말씀을 듣기 위해서는 시편의 저자처럼, 예언자들처럼, 주님의 사도들과 그 뒤를 잇는 수많은 주님의 제자들처럼 각자의 삶 안에서, 특히 하느님이 침묵하시는 듯한 그 비참한 현실에서 포기하지 말고 믿음 안에 머물며 기도로 하느님을 간절히 찾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듯 말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와 신뢰 관계를 맺기를 바라십니다. 우리가 맹목적으로 믿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 관계 안으로 들어가는데 필요한 것은 자신의 내면을 솔직히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자신, 믿기를 거부하는 자신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혹시 내면 깊은 곳에서 의구심이 솟구치는 것을 발견한다면, 두려워하지 맙시다. 왜냐하면, 신앙은 불신앙의 극복이며, 의구심과 하느님의 침묵을 관통하는 여정이며 영적 투쟁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의심하고 두려워하는 나 자신을 솔직히 하느님께 말씀드릴 수 있다면 우리는 믿음의 길 위에서 이전과는 전혀 다른 국면에 들어설 것입니다. -김영삼(요셉) 신부 (수원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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