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잔치의 초대
몇 년 전 갑자기 수술을 받고 며칠 동안 입원생활을 한 적이 있습니다.
수술을 받은 다음날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눈부신 아침 햇살에 잠을 깼습니다.
그 햇살이 너무 아름답고 고마워서 가슴이 뛰었습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이제껏 보아온 하늘이었지만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었습니다.
어느 날 문득, 일상 속에 마주한 것들이 특별한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사실 우리의 일상은 모든 것이 행복입니다.
다만 우리가 행복하다고 못 느끼고 있을 뿐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무언가를 잃었을 때 비로소 그 가치를 새롭게 알게 됩니다.
영원할 것 같은 내 주변의 모든 것은 사실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매 순간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아닐까요.
사람마다 행복의 조건은 다르겠지만 말입니다.
언젠가 한 선배 사제가 자신의 인생 최고의 행복은 부모님으로부터 신앙을
전해 받은 것이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그 말을 흘려들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속에 큰 울림으로 남아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신앙을 갖고 있다는 것처럼 경이로운 사실이 또 있을까요.
오늘 복음은 하느님의 나라를 결혼식 초대에 비유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결혼식은 당사자나 가족, 친지들에게 가장 화려하고 즐겁고
행복한 잔치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나라를 바로 이 결혼 잔치에 비유하십니다.
우리 인생의 가장 성대한 잔치가 이루어지는 곳이 바로 궁극적으로 하늘나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작 구원의 잔치에 초대를 받은 사람들은 응답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받은 초대가 얼마나 소중한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소중함을 모르는 사람들은 삶의 감동과 감사도 없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느님의 은총도 당연히 깨닫지 못하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비유하신 것처럼, 처음에 잔치 초대에 응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스스로 신앙에 열심하다고 생각하는 유다인 들입니다.
그들은 철저하고 엄격하게 율법을 지킨 이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신앙생활은 결코 즐겁지 않았고, 오히려 엄숙하고 때로는
무섭고 힘든 멍에였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나라를 결혼잔치에 비유하신 것은, 신앙생활은 기쁘고 즐거운
잔치임을 알려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가 오늘날에도 착각하기 쉬운 일입니다.
또한 구원의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들은 결코 특권층의 사람들, 즉 부자나 권력자
같은 사람들만이 아니었습니다.
구걸하는 사람부터 농사꾼, 상인, 군인, 세리, 창녀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류의
사람들이 결혼식에 초대 받았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구원의 문은 모든 이에게 열려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결혼식에는 예복을 입고 들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예복은 마음의 자세를 뜻합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다가가는 데 필요한 것은 오직 진실한 마음뿐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으로 하느님의 가르침을 따라 착하게 사는 삶이 구원의 잔치에
참여하는 예복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나는 어떤 예복을 준비하고 또 입고 있을까 묵상해 봅니다.
-허영엽 마티아 신부 (서울대교구 홍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