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마음은..."
언젠가 한 TV 프로그램을 시청하게 되었습니다.
왠지 우울한 분위기에서 잔잔한 내레이션이 나오고 있었고,
그 프로그램에 참여한 패널들의 '에휴'라는 한숨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기에
'무슨 일인가?' 싶어 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본 첫 장면에선 한 아버지가 방구석에 누워 계셨습니다.
그때의 내레이션이 '오늘도 아버지는 일을 구하지 못하였습니다.
딸과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아버지는 어둔 방에 혼자 누워계십니다'라는
말이었습니다.
날이 밝자 아버지는 새벽 일찍 인력시장으로 나가십니다.
그곳에 제일 먼저 나와 누군가가 자신을 불러주기를 기다립니다.
일을 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서입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나이가 많으셨습니다.
결국 50대 중반의 아버지를 아무도 불러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오늘도 일없이 집에 들어갈 수가 없으셨습니다.
그래서 간절한 마음으로 여기저기를 돌아다닙니다.
주유소에도 가시고 일자리 소개소에도 가봅니다.
그렇게 여기저기를 떠돌다 오후 즈음에 다시 인력시장에 가 봅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입니다.
그런데 너무도 감사한 일이 생겼습니다.
어느 공장에서 두 명의 일꾼을 더 찾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버지는 너무도 신나 하시며 일터로 나가십니다.
그리고 정말 열심히 기쁘게 일하십니다.
그러면서 공장을 관리하는 분에게 부탁하십니다.
'정말로 열심히 할테니 내일도 꼭 불러달라'고 말입니다.
일을 마치시고 귀가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은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모습이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의 늦은 시간까지 일을 나가지 못했던 이들도
이 아버지와 같은 마음이 아니었을까요?
가장으로서, 가족을 책임지는 사람으로서 돈을 벌어야 하는데,
일을 구할 수 없었으니 얼마나 애가 탔을까요?
그래서 그들은 '늦은 시간까지 장터에 남아있었던 것'이죠.
'오늘도 일을 못 구하면 어쩌지? 가족들을 무슨 면목으로 보지?'라는 등의
생각을 하며 그 시간을 보냈을 것입니다.
이러한 그들의 딱한 처지를 헤아렸기에, 복음에서의 주인은 그들에게도
하루 품삯인 한 데나리온을 그들에게 주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주인이신 하느님께서는 뒤쳐진 이들에게,
'꼴찌'인 사람들의 마음을 더 헤아려주시는 분이십니다.
'일등만 기억하는 세상'에서 사는 우리들과 같지 않으시고,
가장 늦는 이들도, '꼴찌'도 돌보아 주시는 좋으신 하느님이십니다.
오히려 꼴찌를 더 많이 챙겨주시는 인자하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행해야 하는 것은 뒤처져 있는 자신을 비관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은총을 청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을 때, 우린 우리의 모자람이 채워지는, "꼴찌가 첫째"되는
신비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김연상 비오 신부(관산동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