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께서는 어디서나 우리를 해방시키신다

2016. 5. 11. 오전 6: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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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께서는 어디서나 우리를 해방시키신다

 

 

많은 사람이 성령을 어려워한다. 인간의 정신과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는지, 성령의 고유한 깊음이 무엇인지,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등을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성령께서 우리와 우리 삶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말해야 할 때 우리는 얼마나 많은 무력감을 느끼는가? 하지만 신앙의 신비가 우리에게 어려움을 안겨줄 때마다 우리는 하느님이 본질상 이해할 수 없는 분이며 또 이해할 수 없는 분으로 머물러 계셔야 한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시다면 그분은 더 이상 하느님이 아니시며, 헤아리기 어려운 신비가 아니다. 달리 말하면 만일 하느님의 성령에 대해 아무 어려움도 느끼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분이 누구신지 쉽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분이 우리 이해에 야기하신 어려움보다 하느님 존재와 그분의 성령을 더 부정하는 꼴이 된다. 그렇다고 해서 그분의 신비에 가까이 다가서려는 노력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그분의 신비에 이르기 위해 성경의 체험에서 출발하여 첫번째 성령강림까지 특별한 점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성경에 따르면 예수님 부활 후 제자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그들은 앞일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요한은 제자들의 심정을 짧게 표현한다. "제자들은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놓고 있었다."(요한 20,19) 문만 닫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의 문도 닫았다. 마음의 문을 닫은 사람은 제대로 살 수 없다. 이것은 당시 제자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오늘날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러고 나서 갑자기 어떤 일이 일어났다. 이때 일어난 일을 교회는 결코 잊지 않는다. 그날은 교회가 태어난 날이고, 아울러 우리 신앙이 태어난 날이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볼 수 없었던 사람들이 다시 보게 되어 그들이 곧바로 세상의 모습을 변화시켰기 때문이다. 말을 잃었던 사람들이 모든 언어로 말을 하고 더 이상 빠져나갈 길이 없다고 생각되던 곳에서 새로운 길을 마련하시는 권능을 체험했다. 인간적인 모든 근심, 걱정과 공포 등을 메마른 덤불처럼 불사르는 불을 느꼈다. 좁은 마음에서 넓은 마음으로 인도하여 다시 숨 쉬게 하는 힘을 느꼈다. 누가 이런 새로운 길을 닦았는가? 우리는 신앙인으로서 오직 이렇게 말해야 한다. 우리를 이 모든 것에서 빼내주신 분은 하느님의 성령이시다. 성령께서는 우리 의식을 일깨우신다. 더 이상 가능성을 바라볼 수 없는 곳에서 하느님의 가능성이 시작됨을 일깨우신다. 그러기에 하느님은 우리가 궁지에 빠지는 것을 종종 허락하신다. 그럴때 우리는 자신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사로잡으실 수 있도록 우리를 그분께 내맡겨야 한다. 그러므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한다. "마음이 성령으로 타오르게 하며 주님을 섬기십시오. --- 희망속에 기뻐하고 환난 중에 인내하며 기도에 전념하십시오. --- 여러분을 박해하는 자들을 축복하십시오. 저주하고 말고 축복해 주십시오. 기뻐하는 이들과 함께 기뻐하고 우는 이들과 함께 우십시오. 서로 뜻을 같이하십시오."(로마 12,11-16) -주님의 향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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