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요한14,6)
성체의 덕들은 이제 자유로운 선택의 결과가 아니기 때문에,
그 행위들은 공덕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께서는 존재의 형태로서, 의복으로서 그것을 취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전에는 이러한 덕들을 실행하셨는데,
이제는 외적인 존재 양식으로써 그것들을 입으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지상에서 겸손하셨고 굴욕을 겪으셨는데,
이제는 성체 안에서 영광 중에, 그렇지만 겸손한 상태에서
겸손한 모습으로 다스리십니다.
그 덕들은 그분의 존재 양식으로서 그분과 불가분하게 결합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을 바라보는 가운데 그분의 덕들을 보고 그것들을 실천하는
방법을 배웁니다.
성체의 굴욕을 없애 보십시오.
그렇게 되면 성사적인 상태가 그칩니다.
성체의 가난함을 없애 버리고 그분의 장엄함만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은 우리를 압도시키기는 하겠지만 사랑은 아닙니다.
사랑은 자기를 낮추는 가운데 드러납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성체 안에서 갈바리에서보다 더 인내하고 실천하고
상처를 용서하십니다.
갈바리에서 주님을 처형했던 사람들은 그분이 누구인지 몰랐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 못지않게 그분을 모욕합니다.
주님께서는 성체 안에서 그분을 거슬러 죄를 범한 도시들을 위해
용서를 청하십니다.
이런 간청이 없었다면 성체의 사랑은 사라졌을 것이고,
완고한 정의만이 그분을 둘러쌀 것입니다.
-피에르 쥘리안 에이마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