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세 가지 사귐의 신비"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묻습니다.
"어디 가세요?", "아, 예, 성당에 갑니다."
그러나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볼 일입니다.
우리들의 의식 안에 혹시나 ‘교회’ 공동체라는 개념보다는
‘성당’ 건물의 개념 안에 머물러 있지 않는지 늘 돌아볼 일입니다.
나는 천주 '교회'에 입문하였습니다.
소속은 지금 자리하고 있는 곳의 '○○○성당'입니다.
'○○○성당'의 소속으로서 나는 '교회'를 사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신앙생활을 '성당'이라는 건물 울타리에 머무르기보다
'교회'라는 본질에서 이야기해야 합니다.
교회 내 단체 중 하나인 'MBW'에서 교회를 세 가지 '사귐의 신비'를
사는 것으로 정의합니다.
첫째, 하느님과의 사귐입니다.
우리 모두는 교회에 입문하여 하느님과의 사귐의 신비를 삽니다.
그 사귐을 잘 하기 위해 향주삼덕인 믿음, 희망, 사랑의 덕을 갈고 닦는
것입니다.
늘 하느님 말씀을 듣고 새기며 살고자 하는 것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바빌론 유배로부터 해방되어 돌아온 하느님 백성들이
하느님 말씀을 눈물로 새겨듣는 모습은
하느님과의 사귐의 신비를 사는 교회의 기본자세로 제시됩니다.
둘째, 공동체 안에서 형제적 사랑의 사귐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고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지체입니다."라고
선언하신 오늘 제2독서의 말씀처럼 우리 모두는 서로의 형제적 사귐을 통해
그리스도의 몸,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를 삽니다.
셋째, 자연 피조물 및 세상과의 사귐입니다.
교회는 교회 자신만을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당신 창조의 본래 모습으로 회복하시고자 그 사명을
수행하도록 파견하시고자 먼저 나를 불러주시고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그래서 교회인 나와 우리는 세상 한복판에서 예수님처럼 오늘 복음의 말씀을
선언하는 존재입니다.
'○○○ 성당' 소속인 내가 그리고 너와 더불어 우리가 교회입니다.
교회는 늘 사귐의 신비를 살도록 불림을 받았습니다.
하느님과 잘 사귀기 위해(내가!),
공동체 안에서 형제들과 잘 사귀기 위해(내가 너와!),
하느님의 정의와 평화, 자비와 사랑이 요청되는 이 세상의 사람들과
사회와 피조물과 잘 사귀기 위하여(나와 너와 우리가 함께!)
지금 나와 우리는 '교회'를 살고 있습니다.
-이봉문 요한 보스코 신부(광주대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