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빠진 놈
사제피정중 미사때 들은 평양교구 사제들의 순교 이야기입니다.
사제들에 대한 납치, 감금, 살인이 3년간 지속되던 상황에도 사제들은
본당을 떠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도망갈 시간이 충분했음에도 그러지 않았고, 신자들은 사제를 지키려고
매일 24시간 경계를 섰다고 합니다.
놀랍고 슬픈 역사이지만, 저를 더 놀라게 한것은 사제들이 도망치지 않은
이유였습니다.
양떼들을 버리고 갈 수 없다는 이유였으리라 예상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첫째는, '주교님의 발령이 없어서'(주교님은 이미 돌아가신 상황)였고,
둘째는, '동료 사제들이 있어서'였다는 것입니다.
미사 후 주교님과 아침식사를 하는데,
주교님께서 '요즘엔 신앙선조들이 지녔던 이 같은 <얼>이 부족하다'시며
깊은 안타까움을 숨기지 않으셨습니다.
그러시면서 금경축을 맞이하신 경레오 신부님 이야기도 하셨습니다.
생각해보니 축하식때 경신부님은 사제로 살면서 '주교에 대한 순명'을
완성했다며 힘주어 말씀하셨습니다.
당시엔 대수롭지 않게 들었는데, 주교님의 말씀을 듣다보니 문득
경신부님에게서 평양교구 사제들의 모습이 비춰졌습니다.
'순명과 형제애의 얼' 수차례 곱씹어 보았습니다.
평소 중요하지 않게 생각했던 것도 아닌데, 어째서 신비스럽게 느껴지는지….
강론과 훈화때 수없이 말했을 이 단어들이 어째서 낯설게 느껴지는지….
결국 내가 순명과 형제애의 삶을 입으로 살았음을 깨달았습니다.
하느님 나라를 위한다며 신음하면서도 애써 걸어왔던 삶이 결코 무의미한 것은
아니지만, '순명과 형제애의 얼'을 잊고 살았던 것은 아닐까, 되돌아보니
'예'라는 대답보다 이유와 설명이, 사람보다는 일과 원칙이 앞섰습니다.
이해보다는 평가를, 들으려하기 보단 말하려 했습니다.
'그래도' 사랑하려 하기보다 '그래서' 미워한 적이 더 많았습니다.
얼빠진 놈이 순명하지 않으면서 순명을 요구했고, 공동체를 위해 희생한다면서
정작 자신은 공동체에 속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여러분도 혹시 얼빠진???
오늘은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
입니다.
하느님과 양떼를 위해 목숨을 바치신 김대건 신부님의 모습만을 고귀하다
여겼는데, 오늘 따라 순명과 형제애로 살아가신 신부님의 얼이 더욱 숭고해
보입니다.
이 시대에 점점 힘을 잃어가는 '신앙의 얼' 우리가 다시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
순교하신 평양교구 신부님들과 김대건 신부님을 닮아….
순명합시다.
사랑합시다.
-한지수 Christopher 신부(청주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