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워 이길지어다
6개월여에 걸친 13만여 리의 대장정. 12월. 살을 에는 바람과 당장이라도
삼킬 듯한 눈보라. '고픔'과 천근인지 만근 인지 도통 주체할 수 없는
'육신의 고통'에, 행여하는 세인의 이목까지 주의해야 하는 그 여정이
얼마나 고달팠을까?
열여섯 어린 소년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신앙, 그것이 이토록 여린 이들을 단련시키고 성장시키는 것인가?
베드로 사도의 말처럼 인내에 신심을 더하는 것인가?
신심에 인내를 더하는 것인가?
끝나지 않을것 같은 이길을 걷고 또 걸으면, 그 약속의 땅이 보인다는 것인가?
누군가 나에게
'예수를 믿으면, 예수의 사도가 되면, 너는 고통 속에 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면,
예수를 따름이 시련의 여정이라면, 나는 응답할 것인가?
그런데 우리는 오늘 그 실제의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인해, 채찍질에 타인뿐만 아니라 가족들의 미움까지 받아야 하는
꼴이라면, 용기야 그렇다치고 타인 속에서 어찌 살아간단 말입니까?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33)며 당차게 앞장서시는 주님이야 그렇다 하지만,
저는 "용기를 내라"는 주님의 말씀에 선뜻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다행입니다.
그렇게 살아가고, 그 것을 살아낸 분들이 계시니 말입 니다.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것이다."(마태 10,22)는 말 씀대로,
그 긴 시간을 이겨내고 또다시 시련 앞에 서서 의연하게 잘 싸우라고 격려하는
분들이 계시니, 주섬주섬 믿음의 무장을 차려 입습니다.
"마음을 늦추지 말고 도리어 힘을 다하여 역량을 더하여, 마치 용맹한 군사가
병기를 갖추고 전장에 있음 같이 하여 싸워 이길지어다.
부디 서로 우애를 잊지 말고 돕고, 아울러 주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환난을
앗기까지 기다리라."(김대건 신부 옥중서간,1846)
참 힘든 세상입니다.
여전히 겨울을 걷고 있습니다.
먹고 살기도 어렵고, 사람과 관계 맺기도 어려우며, 거센 풍파는 커녕
잔바람마저도 견뎌내며 신앙하기란 힘겨운 세상입니 다.
그러나 견딜만해서 신앙하는 것은 아니니,
끝까지 견뎌 보자고 간직했던 주님 말씀 꺼내봅니다.
시공을 초월해 예수 뒤에 서서, 이땅의 그리스도인을 진두지휘하는 용장 김대건
신부님 뒤에 서봅니다.
아무리 힘겨운들, 환난이 인내를 자아낸다 하지 않습니까?
그 환난에서 인내가, 수양이, 희망이 싹튼다 하지 않습니까?(로마 5,3-4)
주님의 약속은, 우리가 믿는 그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으리니.
얼마 전 히트했던 영화 국제시장의 말미에 노년의 주인공이 부친의 사진을 보며
말합니다.
"아버지, 내 약속 잘 지켰지예. 이만하면 내 잘 살았지예.
근데 내 진짜 힘들었거든 예."
그 흐느끼는 울음 속에 짊어져야 했던 삶의 무게가 느껴집니다.
힘겨운 일 있으세요?
어떤 일에도 끝까지 잘 견 디시고, 달릴 길을 다 달린(2티모 4,7) 후 주님앞에서
말해 보자구요.
"아버지, 저 약속 잘 지켰죠?
이만하면 잘 살았죠?
근데… 근데요…. 진짜 힘들었거든요…"
베로니카 자매님
메르스로 나라 전체가 초 긴장상황이라 어느덧 모두에 게 안부처럼 건강을
당부하는 말이 일상이 되고 있는 즈음 오늘 아침에 문자 한통을 받고 미소를
머금었다.
그렇잖아도 안부전화라도 해야겠다 싶었는데 용케도 텔레파시가 통한 거였다.
벌써 몇 해 전 인연이다.
큰 수술을 하게된 그 해 지인을 통해 요양도우미로 인연을 맺었다.
우리 집을 방문한 첫날, 거실에 차려진 성모 마리아와 예수님 앞에 바로
무릎을 꿇고 기도의 시작으로 언제나 주님 안에 계신 분이셨다.
묘하게도 우리 집 방문에 끌려 겹쳤던 다른 곳을 접으셨고 마치 딸에게
하듯이 우리 가정과 나를 성심껏 돌보아 주셨다.
내 두번의 건강 회복을 지켜 주셨고 일찍 돌아가신 엄마의 모습과 행동도
너무 닮으심에 낯설음 없이 편안했고 까다로운 입맛도 그리웠던 내 엄마의
음식맛과 똑같아 참으로 좋았었다.
잘 회복해 건강하고 씩씩한 지금과 다르게 수술을 앞두고 여러 가지로 두려움에
떨며 불안함에 간절한 기도밖에 할 수 없었다.
자매님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
하느님의 말씀처럼 60이 넘은 몸이지 만 젊은이보다도 훨씬 많은 봉사를 남몰래
하시고 가족의 기둥으로 어깨에멘 무거운 짐을 당신의 십자가라고 여기시며
불편하게 생각지 않으셨다.
고엽제 피해자로 망상침해와 온갖 질병으로 하루를 힘겹게 견디시는 남편의
폭언을 참으시고 끝도 없이 홀로서기가 안되는 아들의 가정과 핏덩이였던
손자 손녀를 장한 청소년으로 키우셨다.
지금까지 정말 수를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의 나날이련만 무슨 힘으로 항상 웃는
얼굴로 아픈 이들의 단순한 돌보미가 아닌 친정 엄마처럼 이리도 살갑고
세심한 배려를 할수 있을까?
몇 해가 흐른 지금까지도 항상 좋은 말씀과 기도로 일 관되게 사시는 모습을
보여 주시고 당신의 고통을 주님의 십자가 뒤에 숨겨 두시며 남을 위해
기꺼이 달란트를 내어 주시는 자매님 안에 새겨진 하느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베로니카 자매님의 버거워 보이는 삶에서 십자가를 보게 하시고,
나의 일거수일투족과 돌아가신 친정엄마의 자리를 메워 주셨던
모든 인연들과 깨달음은 하느님이 우리에게 보내신 선물이며 은총이라 생각된다.
'주님께 희망을 두는 이' 베로니카 자매님의 건강과 평화 를 빌어본다.
-조성호 라우렌시오 신부(직장경찰사목위원회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