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올해는 남북 분단 7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리고 우리 가톨릭 교회는 오늘도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을
지내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의 남북한 관계를 어떻게 보십니까?
남북한의 현상황을 제대로 보게 되면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 그리고 한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하여 다른 때보다 더욱 더 기도해야함을 느끼게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사도 베드로는 예수님께 묻습니다.
"주님,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이 물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 말씀처럼 나에게 죄를 지은 형제를 일흔 일곱 번까지
용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일흔 일곱 번까지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은 어디에서 옵니까?
그 용서의 마음은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옵니다.
"사랑은 참고 기다립니다."(1코린 13,4)라는 사도 바오로의 말씀이 생각이
납니다.
사랑은 참는 것입니다.
사랑은 기다려주는 것입니다.
여기서 참는다는 것은 '두고보자'라고 하며 벼르는 것이 아니라 너그러운
마음으로 기다려주는 것입니다.
기다려주지도 않고 무엇인가를 얻으려고 한다면 아무 것도 얻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너무 성급합니다.
대인관계에서 상대방에게서 원하는 반응이 빨리 나오지 않으면 쉽게
포기하거나 화를 냅니다.
그러한 현상이 남북한의 관계에서도 나타납니다.
북한에게 무엇인가를 해주면 그에 대한 반응이 빨리 나와야한다며
조급해합니다.
그러나 인내를 지니고 기다릴 수 있는 이들만이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다려주는 이유는 단지 열매를 거두기 위해서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기다려주기를 하느님께서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일흔 일곱 번까지 라도 용서하라고 하십니다.
용서하고, 용서하고, 용서하고...
또 기다려주고, 기다려주고, 기다려주어야합니다.
그냥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께 기도드리며 기다려야 합니다.
용서를 나의 힘만으로 하려고 한다면 용서를 할 수 없습니다.
나의 힘만으로 용서를 하려고 한다면 그건 용서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용서하기란 너무나 힘들고, 어느 때는 용서를 하면 내가 죽을 것 같이
느껴질 때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70년 전에 분단된 이후부터 갈라지고 죽고 죽이기까지 했던
원수 같은 북한을 용서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하느님께 청해야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용서할 수 있습니다.
오늘 교회는 남북통일 기원 미사를 봉헌하게 됩니다.
한민족인 남과 북이 화해하고 일치하여 통일이 되기를 기도 드리며,
평화의 모후이신 성모님의 전구를 청하는 오늘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김영철 베드로 신부(인창동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