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하나 가꾸지 않으시렵니까?
전부터 저는 텃밭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호기심으로 시작했다가 지금은 그 매력에 푹 빠져 상추, 치커리, 청경채,
토마토, 호박, 오이 그리고 땅콩, 쥐눈이콩, 선비콩, 서리태 콩, 마늘,
양파, 밭벼, 보리까지 다양한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습니다.
함께 식사하는 주교님과 신부님들께서
"맛과 향이 살아있네"라며 칭찬해 주실 때마다 기쁨은 더욱 커집니다.
무엇보다 부지런히 몸을 쓰다 보면 생명을 주관하시는 분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알게 되는 큰 은총을 받습니다.
그래서 저는 자신 있게 추천합니다.
크건 작건 여러분의 집안에 작은 텃밭 하나 만들어서 보시기를...
참 좋습니다.
반면, 세계 농업을 쥐락펴락 한다는 다국적 기업들의 행태들을 알게 되면서
새삼 인간의 원죄를 떠올리게 됩니다.
힘 있는 나라의 기업들이 조작-변형시킨 종자와 거기에 맞춘 비료와 농약을
팔아 엄청난 이익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 기업들의 대표격인 '몬00'라는 회사는 베트남 전쟁 당시 고엽제를
생산하던 회사였다니 ….
에제키엘 예언자 시대의 바빌론 제국이 그랬던 것처럼,
강대국들은 여전히 약한 나라의 백성과 땅과 온갖 생명을 수탈하고
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자연의 순리에 따르면서 타인의 건강을 위하는 농사를
보기 어렵습니다.
하루 일을 마치고 겸손히 기도하는 ‘만종’의 순수함은 이제 그림에서나
볼 수 있는 전설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좌절하지 않습니다.
제 아무리 조작을 잘하는 인간도 햇빛과 비와 생명을 만들어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느님만이 생명의 주인, 참 농부, 하느님 나라의 주인이십니다.
인간의 역사도 그러합니다.
제국의 힘과 기술이 아무리 대단해 보여도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우리를 즐겁게 하는 일도, 우리를 실망시키는 일도 모두 다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생명을 주시고, 거두시고, 다시 일으키시는 분이시기에
"우리는 언제나 확신에 차 있습니다.
보이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2코린5,6~7)
그래서 우리는 비록 약하지만 "주님 마음에 들고자 애를" 쓰는 하느님의
텃밭이며, 죄와 죽음마저도 거듭 나게 하는 하느님 나라를 마음에 품고
살아갑니다.
우리가 할 일은 오직 하나, 우리 가운데 뿌려진 하느님 나라의 씨앗을
지키는 것, 나머지는 그분의 일입니다.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높은 나무는 낮추고 낮은 나무는 높이며, 푸른 나무는 시들게 하고 시든
나무는 무성하게 하는 이가 나 주님임을 알게 되리라. "(에제 17, 24)
-김성수 베네딕토 신부(문화미디어국 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