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밖으로 나가십시오

2015. 6. 19. 오전 6:2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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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밖으로 나가십시오

 

 

성체성사의 또 다른 이름이 감사제(Eu-charistia)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쪼개진 성체를 높이 들고 "하느님의 어린양…."할 때, 감사하는 마음보다 죄송스럽고 부끄러운 마음이 앞설 때가 많다. 주님께서는 빵을 쪼개어 나누어 주셨는데, 당신의 살을 떼어 양식으로 내어 주시고, 피를 흘려 음료로 마시게 하시는데, 정작 나는 자기 자신을 온전히 보존하느라 바쁜 모습이 성작에 비치기 때문이다. 성체를 받아 모시는 사람으로서 응당 황송하고, 감사함이 마당하고 옳은 일이다. 성체는 감실에서 흠숭 받으셔야 할 주님의 몸이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의 흠숭보다 우리의 마땅한 응답을 더 원하시지 않을까? 성체를 통하여 주님은 "나는 너를 이렇게 극진히 사랑한다."고 당신의 사랑을 고백하시는데 우리는 "이렇게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하고 끝낼 일이 아니지 않는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5,12)." 하신 명령대로 사랑의 삶으로 응답하는, 곧 '성체적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종께서는 성직자들이 교회 안에서 한 마리 양을 위한 성사 거행에 만족하는 것을 강하게 질책하시며 아흔아홉 마리의 양들이 있는 "교회 밖으로 나가서 착한 사마리아인이 되라!"고 강조하신다. 제주교구 동부지구에서는 이런 교황님의 권고와 교구장의 사목방침에 따라 반찬 도시락을 정성껏 준비하여 사회적 경제적으로 소외된 작은이들, 장애 우들과 독거노인들을 찾아보고, 친교와 나눔을 실천하려고 하고 있다. 시작 단계이기에 한 달에 두 번이지만 횟수도 늘려가고 대상자도 늘려갈 것이다. 그러나 반찬 도시락은 소통의 도구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관심과 대화를 통해 함께함이라 하겠다. 꽃이 아름답다고 곁에 두고 몇 시간을 넋을 잃고 바라보면서 그 모습과 향을 즐긴다 하더라도, 그 꽃이 잘 자라도록 물도 주고 거름도 주면서 보살피지 않는다면 어떻게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으랴? 사랑은 즐김이 아니라 희생과 헌신이다. 자신의 관심을 쪼개고, 욕망을 쪼개고, 시간을 쪼개어 나누는 것이 성체적 삶이다. 예전에는 오늘 성체와 성혈 대축일에 맞춰 첫 영성체를 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예수님을 처음으로 모시는 순간 예수님께 청하는 것은 다 들어주시니까 그때 소원을 잘 말씀드려라."고 가르치는 모습을 보았다. 우리 아이들은 무엇을 청할까? 그러나 이제 어른이 된 우리들도 역시 그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닐까? 사도 베드로의 제자로서 안티오키아의 제2대 주교였던 이냐시오는 맹수에게 던져지는 선고를 받고 로마로 압송되는 도중에 자신을 구출하려는 교우들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나는 하느님의 밀알입니다. 나는 맹수의 이에 갈려서 그리스도의 깨끗한 빵이 될 것입니다. 이 맹수라는 도구를 통해서 내가 하느님께 봉헌된 희생 제물이 될 수 있도록 그리스도께 기도해 주십시오." 성체를 모시는 우리의 유일한 소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우리도 성체가 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임문철 (시몬) 신부(제주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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