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소게임
배가 고플 때 장을 보러 가면 물건을 더 많이 사게 됩니다.
배고픔의 욕망이 구매의 유혹을 자극하여 판단력이 흐려지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배가 부르면 만사가 귀찮아집니다.
배부름의 만족감이 다른 욕망을 없애버리기 때문입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만족감과 욕망은 서로 늘 붙어 다니면서 시소게임을
벌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만족과 불만족의 편차가 클수록 상호작용은 더욱 격렬하게 일어납니다.
하지만 편차가 작아질수록 차츰 수평을 이루게 되고 결국 평온을 유지합니다.
만족감이 충족되어 욕망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시소게임을 일으키는 주범은 '불만족'입니다.
공원벤치에서 누리는 따스한 햇살과 호화로운 리조트 수영장에서 누리를
따스한 햇살은 분명 같은 햇살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공원벤치보다는 리조트 수영장을 더 선호합니다.
만족도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욕망을 채우기 위해 격렬한 시소게임을 마다치 않습니다.
결국, 누리는 것은 같은 햇살이 주는 평화로움이지만 이를 위해 치르는
대가는 참으로 다릅니다.
그리고 더 큰 만족을 위해 더 격렬한 시소게임을 준비합니다.
긴 평화를 누리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작고 사소한 것에 만족하면 욕망도 적어지고 사소해집니다.
욕망이 적어지고 사소해지면 별로 유혹이랄 것도 생기지 않습니다.
그저 자잘한 시소게임을 즐기면서 일상의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구태여 많은 재물과 커다란 권력과 드높은 명예 때문에 죄를 지으면서까지
롤러코스터 같은 인생을 살아갈 필요가 없습니다.
상은 마치도 그런 인생을 대단한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사실은 지금의 처지에
만족하지 못하도록 꾀어내는 사탄의 유혹에 불과합니다.
하느님의 섭리 안에 놓여 있는 우리가 하느님 나라의 평화와 행복을
누리는 것을 시샘하여 계속 불만을 갖고 욕망의 시소게임을 하도록
부추기는 것입니다.
사순시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사탄의 유혹을
이겨내십니다.
사탄은 세상이 꿈꾸는 위대한 인생을 펼쳐 보이면서 예수님을 유혹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들짐승들과 함께 지내면서 하느님이
섭리하신 천사들의 시중에 만족하십니다.
황량하기 그지없는 광야에서 내면의 고요와 평화를 잃어버리지 않으십니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내 삶의 자리에 만족하고 있나?' 자문해 봅니다.
이것저것 수많은 불만으로 욕망의 시소게임을 하고 있는 저 자신을
어렵지 않게 발견합니다.
아무래도 이번 사순시기에는 작고 사소한 것에 감사하고 만족하며
내면의 고요와 평화를 잃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근덕 헨리코 신부(수원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