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에 위령성월을 맞으며
11월이 되면 우리는 모든 소란스러움은 다 가라앉아 차분히 빛나는 늦가을의 정취를
대하며 잔잔한 마음의 위로를 얻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미 이러한 풍요한 아름다움이 서서히 소멸되어가기 시작했다는
예감을 받게 되기도 합니다.
계절의 정취가 그려놓는 마음의 풍경은 우리에게 자연스레 인생의 계절에 대한
각별한 감상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러기에 이 만추의 계절에 우리의 생각은 끊임없이 때에 대해서, 끝에 대해서,
상실에 대해서 그리고 죽음에 대해서 가닿습니다.
슬픔과 애닮음, 쓸쓸함의 마음을 안고 차가워진 공기 사이에 내리쬐는 빛나는
오후의 햇살을 받으며 낙엽길을 걷다보며 누구나 조금은 철학자이고 시인이 됩니다.
이러한 시기를 교회는 위령성월로 정했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마음 속 생각과 정서가 두려움과 허무함으로 종결되는
것이 아니라 잔잔한 평화와 희망으로 열매 맺을 수 있게 하라고 권고합니다.
우리는 자신이 언젠가 맞이할 죽음을 회피하지 않고 바라보려 노력하면서 그것을
넘어서는 하느님 자비의 약속에 희망을 두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를 떠난 이들의 빈자리가 주는 상실감 속에서 이것이 마지막 말이
아님을 믿는 법을 배워야합니다.
우리는 모든 것이 소멸과 적막으로 흘러간다는 두려움 속에서도 세상과 인생은
의미가 있음을, 그 의미는 그리고 죽음과 종말을 넘어서 완성될 것임을 직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제 오늘 위령의 날, 우리를 이미 떠난 죽은 이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위령성월을 시작합니다.
미사 중에 우리가 사랑했던 이들을 기억하며 그들과 일치합니다.
그리고 남아있는 우리도 영생의 희망속에 이 사라져가는 세상 안에서 그들을 다시
주님안에서 만날 때까지 의미있게 살아가는 힘을 얻습니다.
프랑스의 근대시대의 작곡가 가브리엘 포레는 더없이 투명하고 아름다운 죽은 이를
위한 미사곡인 "레퀴엠"을 자신의 아버지가 죽은 후 쓰기 시작했습니다.
때때로 그의 미사곡이 죽음의 두려움을 잘 드러내지 않으며 오히려 자장가와 같은
평화스러움만이 있다고 사람들이 지적했을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합니다.
"내가 죽음에 대해 느낀것은 서글픈 스러짐이 아니라 행복한 구원이며, 영원한
행복에의 도달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레퀴엠은 다른 음악사에 널리 알려진 위령 미사곡과는 달리
"천국에서"라는 곡으로 끝을 맺습니다.
"그대를 맞이하여 한 때 가난했던 나자로와 함께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하리라."
위령성월에 주님이 주시는 위로와 평화가 모든 교우 분들의 마음에 머물기를
기원합니다.
-최대환 세례자 요한 신부(정발산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