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불완전해도 그와 안 통해도
교황님의 방한 이후 많은 이들이 교회와 하느님께 관심을 갖고 있음을 여러 곳에서
감지하게 합니다.
쉬던 교우들이 고해소를 찾고 예비신자 교리반은 넘쳐 나기도 합니다.
은혜로운 시간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훌륭하신 교황님 자랑에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마음과 몸이 움찔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나는 그렇게 살지 못하고 있는 자각이 따라오는 것도 사실입니다.
세상을 향해 큰소리로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해야 하는데 자기 성찰을 하다보면
불완전한 내 모습에 망설임도 생깁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어떤 이들에게 당신의 복음 선포 사명을 맡겨 주셨는지
오늘 복음 말씀을 새겨봅시다.
"열한 제자는 갈릴래아로 떠나…."(마태 28,16) 배반자 유다가 빠진 '열한 제자'가
복음 선포의 사명을 받게 되는 상황입니다.
아직 마티아 사도가 뽑히기 전이고(사도 1,12-26 참조) 완벽한 숫자인 '열둘'에서
하나가 빠진 모습입니다.
이 '불완전'이 온 세상에 나가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지금 내가 불완전한데 이 상태에서 주님의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 이야기가 아니라 하느님의 이야기를 전해야 하기에 나의 부족함은 복음 선포를
하기에는 부족함이 될 수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갈릴래아 지방은 유다 지방과 달리 이방인이 많아 '이민족들의 갈릴래아'
(마태4,15)라고 불릴 정도였습니다.
예수님도 제자들도 선교 여행의 시작이 갈릴래아로부터인 것은 상대적으로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은 유다인들 말고도 이방인들에게까지, 즉 '모든 민족들'
(마태 28,19)에게까지 복음이 전달되어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느낌과 사상, 습관, 말, 생각 등이 통하는 사람에게만 전하는 것이 아니라, 나하고
'안 통하는 사람들'에서부터 선교 사명이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불완전해도 그와 안 통해도 해야 하고 가야 하는 것이 선교 사명입니다.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마태 28,19-20)
여기서 '제자'는 '하늘나라의 제자'(마태 13,52)이고 '예수님의 제자'
(마태 27,57)로 만들라는 말씀입니다.
복음 선포자의 제자가 아닙니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받는 세례로 시작했듯이,
그리스도인들의 매일의 삶, 기도는 성호경으로 시작합니다.
그렇게 시작한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성부, 성자, 성령께 영광을 드리는
영광송으로 끝나야 마땅합니다.
나에게 다가오는 모든 것을 하느님의 이름으로 받아들이고 마무리하라는
말씀입니다.
마지막으로 세례에 이어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사랑의 계명' 준수 교육이고
실천입니다.
'계명 준수'는 신앙의 뼈대라고 생각합니다.
꼭 지켜야만 하는 것들이 우리 안에 확고히 자리 잡아야 온전히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살려는 우리에게 해 주시는 주님 약속의 말씀을 듣습니다.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마태 28,20)
-강귀석 아우구스티노 신부(서울대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