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1월 2일 (자) 위령의 날

2014. 11. 2. 오전 6: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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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11월 2일 (자) 위령의 날

     

     

    오늘은 '위령의 날'로서 교회는 죽은 모든 이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무엇보다 연옥의 영혼들을 위하여 정성껏 기도하며 그들이 어서 정화되어 주님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기를 간구해야겠습니다. 또한 우리 모두가 예외 없이 맞이할 죽음을 생각하며 더욱 의미 있고 보람되게 살아가도록 결심해야겠습니다. 독서 <나는 알고 있다네, 나의 구원자께서 살아 계심을.> 욥기 19,1.23-27ㄴ <그리스도의 피로 의롭게 된 우리는 그분을 통하여 하느님의 진노에서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 로마 5,5-11 복음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마태 5,1-12ㄴ 욥은 자신을 비난하는 친구들의 논거에 괴로워하면서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안기신 고통을 토로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구원자이신 하느님께서 살아 계심을 알고 있으며 그분을 기어이 뵙게 되리라는 확신을 고백한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가 그리스도인의 희망에 대해서 말한다. 그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을 것이다. 죄인인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확인시켜 주신 하느님의 사랑에서 왔기 때문이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산상 설교를 통하여 참행복을 선언하신다. 또한 당신 때문에 박해받을 때 오히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말씀하신다.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기 때문이다(복음). *영화로도 만들어져 더욱 널리 알려진, 얀 마텔의 『파이 이야기』라는 소설은 많은 생각거리를 주는, 흥미와 깊이를 가진 작품입니다. 이 소설 곳곳에는 우리의 신앙을 자극하는 인상적인 장면도 나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욥의 고백을 들으며 이 소설의 여러 대목이 떠올랐습니다. 소년 파이는 가족과 함께 인도에서 캐나다로 이민가기 위해 그들이 운영하던 동물원의 동물들과 함께 배에 오르지만 파선되어 위기에 놓입니다. 가족도 동물들도 모두 잃은 채 소년만이 유일한 생존자로 구명정에 남았는데, 그 보트에는 불행하게도 거대한 호랑이 한 마리가 이미 타고 있었습니다. 이 책의 주요 내용은 시시각각 목숨을 위협하는 호랑이와 함께 보트에서 227일을 표류한 믿을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또한 삶과 종교적 체험에 대한 속 깊은 우화이자 상징이라 하겠습니다. 소년은 마치 욥이 그랬듯이 죄 없이, 이유 없이 너무나 큰 고통을 겪습니다. 무엇보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슬픔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저자는 소설의 앞부분에서 이미 이렇게 밝힙니다. "이 이야기는 ‘'해피엔딩'이다." 이 말은 그 모든 고통에도 불구하고 인생은 그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는 선언으로 들립니다. 그리고 소설은 소년이 이러한 확신에 다가가는 내적 여정을 보여 줍니다. 소년은 공포심과 자포자기의 유혹을 이겨 내며, '살아서 그분의 얼굴을 보리라.'는 희망을 악착같이 쥐고 있었던 오늘 독서의 욥처럼, 바다에서 끈질기게 살아남습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역설적으로, 자신의 생명을 가장 위협하는 것처럼 보였던 구명정 안의 호랑이였습니다. 호랑이는 그가 생의 의지를 잃지 않게 하면서 긴장감으로 버티게 했던 것입니다. 이 '호랑이의 존재'는 우리 인생길에서 때때로 맞닥뜨리는, 무정하고 매정하며 잔인하게까지 다가오는 하느님의 '얼굴'을 상징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욥은 이러한 하느님의 얼굴을 이해할 수 없음에도 희망을 버리지 않습니다. 소년 파이 또한 그러하였습니다. 하느님의 그 '잔인하고 두려운 얼굴'에 사실은 그분의 사랑이 숨겨져 있음을 믿고 기다리며 끝까지 분투하는 것, 그것이 참된 신앙인의 길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자세 속에서 우리는 진정 새로 태어난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매일미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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