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신비

2014. 9. 22. 오전 6: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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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신비

 

 

벌써 30년이 된 일입니다. 봉성체를 위해 본당 근처에 살고 있는 한 청년을 한 달에 한 번 찾아가 병자 방문을 했습니다. 그 청년은 정상인보다 몇 십 년 먼저 노화를 일으키는 조로증을 앓고 있는 희귀병 환자였습니다. 그는 외출은 꿈도 못 꾸고 온종일 자신의 방에서만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그를 처음 만난 날, 그는 나이를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피부에 주름이 많았고, 하얀 머리털도 많이 빠져 노인같이 보였습니다. 말이 별로 없던 그의 방에 있는 낡은 성경책과 아주 큰 십자가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어느 날 봉성체가 끝나고 가려는데 저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신부님! 제가 몇 살처럼 보이세요?" "…." "저는 스무 살입니다. 처음에 왜 나만 이 병에 걸려 고통을 당해야 하는지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힘든 것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황과 가족들이 저를 배척하는 태도였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사람들과 세상을 참 많이 미워했습니다. 사람마다 십자가가 다르다는데 저는 제 자신이 십자가입니다. 저는 이제 얼마 못산다고 합니다. 제 십자가를 받아들이고 예수님을 믿으면 저도 부활할 수 있겠지요? 그때는 건강했으면….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신부님!" 고개를 푹 숙이고 이야기를 하는 의젓한 그의 모습을 보며 제 눈에 자꾸 이슬이 맺혔습니다. 저는 그 만남이 마지막이 될 줄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는 다음 달 병자 방문을 가기 얼마 전 스무 살의 생을 마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오늘은 성 십자가 현양 축일입니다. 우리 구원의 표지요, 생명과 부활의 상징인 십자가를 다시 한 번 높이 쳐들고 감사와 찬미의 경배를 드리는 날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리 뱀을 쳐다보고 불 뱀에 물렸던 사람들이 죽지 않게 되었습니다.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이 우리 구원과 생명의 표지가 된 것도 바로 하느님의 무한하신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고통이지만 구원의 길이고 하느님 사랑의 극적인 표현입니다. 하느님이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단죄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시켜 구원하시려는 것입니다. 이처럼 분명하게 하느님의 사랑을 표현할 수 있을까요. 신앙인이 가야 하는 길은 각자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만 구원이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주어지는 십자가는 다를 것입니다. 환경이나 인간관계, 재물, 때로는 가족이나 친구, 그리고 나 자신이 십자가가 될 수도 있겠지요. 우리는 늘 나의 십자가 앞에서 선택을 해야 합니다. 오늘 나에게 주어지는 십자가는 무엇인가요? -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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