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를 위한 방법
우리는 함께 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혼자 있으면 외로워합니다.
그래서 친구도 사귀고, 결혼도 하게 됩니다.
그러나 막상 함께하다 보면 우리는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죄를 짓고,
그 죄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줍니다.
그런데 상처를 받은 사람 입장일 때는 어떻게 하시나요?
내가 상대방보다 힘이 세다면 가서 뒤통수를 딱 치지만,
힘이 약하면 피하지 않으세요?
그런데 뒤통수를 치거나 피한다고 관계가 회복될까요?
사실 화해를 위한 노력은 하기 힘듭니다.
왜냐하면 화해를 위해서는 대화를 해야 하는데 대화를 하기 위해서 함께하는
것조차도 힘들게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또 힘들어도 대화의 자리를 마련했는데 내 말을 듣지 않거나 혹은 상대방이
핑계나 변명만 늘어놓는다면 관계는 더 악화될 것입니다.
그러면 차라리 혼자가 낫다거나 내가 좋아하는 사람하고만 지내려고 합니다.
이것은 하느님의 뜻이 아닙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화해를 위한 단계적인 방법을 알려주고 계십니다.
먼저 단둘이 만나서 얘기하고,
안되면 한 두 사람이 함께 얘기하고,
다시 안 되면 교회에 알리고,
또다시 안 되면 다른 민족 사람이나 세리 취급을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화해를 위해서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민족 사람이나 세리 취급을 하라는 것은 관계를 포기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세리를 제자로 부르셨고,
이방인과도 함께 하셨습니다.
이것을 미루어 보았을 때 지금은 어쩔 수 없이 안 되는 상황이지만 다음에
더 좋은 기회를 가져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에 반해 대화가 잘 되어 화해를 만들어내면 서로의 관계는 과거보다 더욱
'다져질 것'입니다.
사실 우리나라는 많은 '갈등'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그런데 대화를 통한 소통이 안 되어 '일방적'으로 일을 처리하다가 오히려
더 망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북한이나 이웃 나라와의 관계, 쌍용자동차, 용산 철거민, 강정 해군기지,
밀양 송전탑, 그리고 세월호 사고도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부부 사이나 친구, 이웃 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족끼리, 같은 민족끼리 상처 주지 맙시다.
서로 '보듬고, 안아주고, 감싸주면서' 하나가 되는 하루가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절대로 혼자 살 수 없기 때문에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갈등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 갈등을 일방적인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대화를 통한 소통의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하나 됨을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우리들의 삶입니다.
이렇게 하나 된 우리가 함께 청하면 하느님은 무엇이든지 들어주실 것입니다.
추석 연휴 기간에 오랜만에 본 가족들과 다투지 말고 화목하고 행복한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김지형 제오로지오 신부(삼성 서울병원 원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