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시험
1. 어떤 가나안 부인의 딸이 "호되게" 마귀가 들립니다.
그리고 딸과의 소통은 단절됩니다.
공포를 조장하면서 고집스럽게 자신의 이야기만을 떠들어대는 가운데 소통을 막고
사랑을 방해하는 것이 마귀의 노림수이기 때문입니다.
가나안 부인은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합니다.
딸과 소통없이 함께 산다는 것은 힘든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부인은 자신의 힘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도 잘 압니다.
그래서 그녀는 예수께 청합니다.
"주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우리는 다양한 사람과 함께 살아가지만 모든 사람과 원만하게 소통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유없이 어렵고 껄끄러운 사람, 공개적으로 나를 공격하고 무시하는 사람,
직접 말은 안하지만 나를 싫어한다는 느낌이 계속되는 사람은 사랑하기가
힘듭니다.
여기서 우리는 심각한 마귀들림까지는 아닐지라도 분명한 악의 힘을 느끼게
됩니다.
이때 우리는 어떻게 처신합니까?
이 어려움을 해결하고 싶다는 원의가 있습니까?
그래서 예수께 "주님, 저를 도와주십시오."라고 청합니까?
하느님의 사랑은 사랑이 안되는 사람을 사랑하려고 애쓰는 가운데서 싹트고
성장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2. 예수께 대한 가나안 부인의 믿음은 굳건합니다.
처음에 그녀는 예수님 "뒤에서" 소리를 지르며 청합니다.
그러나 그녀는 제자들의 저항을 받습니다. “
저 여자를 돌려보내십시오.
소리를 지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이번에는 예수께 가까이 와서 "엎드려 절하며" 청합니다.
저항을 받지만 더 가까이 예수께 나아갑니다.
방해가 있지만 청하는 것을 멈추지 않습니다.
악의 영향을 물리치고 큰 사랑을 하겠다는 우리의 바람은 분명 저항을 받을
것입니다.
'그건 안되는 거야, 그냥 대충 맞춰 사는 거지' 라며 사람들이 이야기할
겁니다.
혼자 거룩한 척한다고 비아냥거릴지도 모릅니다.
마음 속에서는 속삭임이 들릴겁니다:
'정말 기도를 들어주실까?'
하지만 이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 가나안 부인이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3. 이번에는 예수께서 직접 믿음을 시험하십니다.
가나안 부인이 이스라엘 민족이 아닌 이방인이기에 청을 거절하는 것처럼
말씀하십니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
자신을 강아지에 비유하신 이 말씀은 모욕처럼 느껴질 수도 있는데도
그녀는 요지부동입니다.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결국 그녀의 믿음은 칭찬을 받습니다.
물론 원하던 것도 얻습니다.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
우리는 가나안 부인이 원하던 것을 청해서 얻기까지 어떤 믿음의 시험을
거쳤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 시험을 훌륭하게 통과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께 대한 신뢰를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점도 유념해야 합니다.
우리가 악을 물리치고 사랑을 성장시키는 데 성과가 없거나 더디게 진행되는
이유는 이런 믿음의 시험이 닥칠 때마다 더 간절히 청하지 않고 기도를
포기하기 때문입니다.
-강동진 알로이시오 신부(안식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