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알지 못한 예수님

2014. 7. 10. 오전 6: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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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지 못한 예수님

 

 

미국 저널리스트 필립 얀시 (P. Yancey)는「내가 알지 못한 예수님 (The Jesus I Never Knew)」이라는 저서에서 지극히 인간적으로 신앙에 접근합니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예수님의 부활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를 진솔하게 설명합니다. 그는 언젠가 한 해 동안 친구 셋을 잃었습니다. 조기 은퇴한 한 친구는 식당에서 아내와 저녁식사를 마치고 나오다가 심장마비로 즉사했습니다. 또 다른 친구는 안개 짙은 날 운전하다가 유조차에 받혀 화재로 죽었습니다. 나머지 한 명은 미시건 호수에서 스쿠버 다이빙을 하던 중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졸지에 친구를 셋이나 잃어버린 그는 죽음이 마지막이라는 사실에 저항하고 싶었습니다. 친구들이 다시 살아 나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그런 그에게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귀가 번쩍 뜨이는 놀라운 메시지였습니다. 장차 사랑하는 친구들과 재회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가능케 하신 예수님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왜 부활하신 예수님께 매력을 느낍니까? 도대체 왜 그분이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사실에 대해 흥분하며 관심을 갖습니까. 이 물음에 대해 애써 고상한 답변을 찾을 필요는 없습니다. 솔직하고 인간적인 대답이면 충분합니다. 사실 어느 누가 이 세상 삶으로 모든 것을 끝내고 싶겠습니까? 누구나 오래도록 아니 영원토록 살기를 바라지 않습니까? 바로 이러한 본능적인 소망을 예수님이 직접 실현해 보이셨습니다. 더구나 당신을 믿고 따르는 이들에게도 똑같은 부활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니 주님의 부활은 참으로 가슴 뛰는 메시지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의 부활도 보증받으니 이보다 더 기쁜 소식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리스도의 출발점을 예수님의 부활에 근거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 입니다. 인간에게 가장 고통스러웠던 '죽음의 문제'가 비로소 극복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신앙인은 죽음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는 배짱이 생겼습니다. 주님만 믿고 쫓아가면 그분처럼 부활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은 언제나 '예수님의 부활'과 '자신의 부활' 사이에 놓인 삶입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시작하여 '자신의 부활'로 마무리되는 과정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세상 안에서 무엇을 두려워하겠으며 어떤 유혹에 흔들리겠습니까? 누가 감히 우리를 그리스도에게서 떼어놓을 수 있겠습니까?(로마 8,35). '예수님의 부활'을 가슴 가득 안고 '자신의 부활'을 향해 거침없이 달려가야 하겠습니다. -주님의 향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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