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2010. 4. 27. 오후 1:18:57

글자

짠하게 가슴이 시려오는 글을 읽고, ME가족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부모로서, 자식으로서 나를 돌아보게하는 글이었습니다.

.............

 내 고향은 경남 산청이다.

지금도 비교적 가난한 곳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가정형편도 안되고 머리도 안되는 나를 대구로 유학을 보냈다.
대구중학을 다녔는데 공부가 하기 싫었다.
1학년 8반, 석차는 68/68, 꼴찌를 했다.

부끄러운 성적표를 가지고 고향에 가는 어린 마음에도 그 성적을 내밀 자신이 없었다.
당신이 교육을 받지 못한 한을 자식을 통해 풀고자 했는데, 꼴찌라니...
끼니를 제대로 잇지 못하는 소작농을 하면서도 아들을 중학교에 보낼 생각을 한 아버지를 떠올리면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잉크로 기록된 성적표를 1/68로 고쳐 아버지께 보여드렸다.

아버지는 보통학교도 다니지 않았으므로 내가 1등으로 고친 성적표를 알아차리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다.
대구로 유학한 아들이 집으로 왔으니 친지들이 몰려와 <찬석이는 공부를 잘 했더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앞으로 봐야제.. 이번에는 어쩌다 1등을 했는가 배...> 했다.
<명순(아버지)이는 자식 하나는 잘 두었어.>
<1등을 했으면 책걸이를 해야제.> 했다.
당시 우리집은 동네에서 가장 가난한 살림이었다.

이튿날 강에서 멱을 감고 돌아오니 아버지는 한 마리 뿐인 돼지를 잡아 동네 사람들을 모아 놓고 잔치를 하고 있었다.
그 돼지는 우리집 재산목록 1호였다.
기가 막힌 일이 벌어진 것이다.
<아부지...> 하고 불렀지만 다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달려 나갔다.
그 뒤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겁이 난 나는 강으로 가 죽어버리고 싶은 마음에 물속에서 숨을 안 쉬고 버티기도 했고,
주먹으로 내 머리를 내리치기도 했다.
충격적인 그 사건 이후 나는 달라졌다.
항상 그 일이 머리에 맴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17년 후 나는 대학교수가 되었다.
그리고 나의 아들이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 그러니까 내 나이 45세가 되던 어느 날,
부모님 앞에 33년 전의 일을 사과하기 위해
<어무이.., 저 중학교 1학년 때 1등은 요...> 하고 말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옆에서 담배를 피우시던 아버지께서
<알고 있었다. 그만 해라. 민우(손자)가 듣는다.> 고 하셨다.

자식의 위조한 성적을 알고도, 재산목록 1호인 돼지를 잡아 잔치를 하신 부모님 마음을,
박사이고 교수이고 대학 총장인 나는, 아직도 감히 알 수가 없다.

                                 - 전 경북대 총장 박찬석 -

댓글 3

  • 2010년 4월 27일 오후 1:34

    그 마음은 영원히 알 수 없죠. 우리의 자식들 또한 우리의 마음을 다 알 수 없는 것이 또한 인간사 아니겠습니까.

  • 2010년 4월 28일 오후 1:00

    자식들에게 마음은 항상 최고의 정성을 들일려고 노력하지만 행동또한 같이 뒤따라야하는데

  • 2010년 4월 29일 오후 10:23

    울컥하네요..

†.─자유♡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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