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생활은 순교의 삶이다
신부 허영협/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참 소중한 당신 2007/09
한국 천주교회 첫 사제인 김대건 신부님(1821~1846)은 하느님을 ‘임자’로 표현했다고 한다. 김대건 신부님은 “하느님은 임자이기 때문에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면 세상에 난 보람이 없고, 그분을 알고 난 후에 배신하면 세상에 태어나지 않은 것만 못하다”고 신자들에게 가르쳤다.
김 신부님은 1821년 충청도 솔뫼에서 태어나 1836년에 신학생으로 선발되어 마카오로 유학을 떠났고, 1845년 사제품을 받고 이듬해 한국에 입국하여 사목 활동을 벌이다가 관가에 잡혀 1846년 10월 16일 새남터에서 순교하셨다.
그분께서는 26세의 짧은 인생을 하느님께 대한 굳은 믿음과 민족의 구원을 위해 모두 바치셨던 것이다. 그분의 순교적 삶은 우리 모든 신앙인의 귀감이 된다. 신부님은 40여 차례의 혹독한 문초를 받고 참수당하셨다.
형 집행 당일 두 손이 묶인 채로 군중 사이를 헤치고 새남터로 끌려간 신부님께서는 사형장에서 큰소리로 마지막 설교를 하셨다고 한다. “내 마지막 때가 왔습니다. 나는 천주를 위해 죽습니다. 영원한 생명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죽은 후 행복을 찾으려면 천주를 믿으십시오!” 마지막 설교가 끝난 뒤 관리들은 신부님의 옷을 벗기고 두 귀에 화살을 꿰고 얼굴에는 물을 뿌리고 흰 회를 발랐다. 무릎을 꿇리고 밧줄 한 가닥으로 머리칼을 동여매고 머리를 하늘로 향하게 했다.
그 때 신부님은 태연하게 “자 이렇게 하면 나의 목을 쉽게 자르겠느냐?”라고 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12명의 휘광이가 칼을 내리쳐 여덟 번째 칼날에 김신부님의 목이 땅에 툭 떨어졌다고 한다. 죽음 앞에서 마지막까지 흔들리지 않던 기백과 용기는 하느님 나라에 대한 굳은 믿음으로 가능했던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일러두신다. 제자들이 당신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라고(마태 10,22 참조). 예수님 때문에 영광스럽게 되기는커녕 고통을 당해야 한다니 얼른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주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때로는 믿음 때문에 부모나 형제로부터 배척을 받아야 하고 친척이나 가까운 이웃으로부터 반대와 박해를 당할 수도 있다고 말이다.
왜 신앙은 박해를 당해야 하는가? 그리스도는 세상의 빛이시다(요한 8,12). 환한 빛 앞에서는 모든 나쁜 행실과 죄악이 다 드러난다. 그래서 어둠 속에 살며 죄악을 반복하는 이들은 빛이신 예수님을 거부하고 배척한다. 그런 까닭에 그리스도를 충실하게 믿는 이들의 삶이 세상 속에서 미움과 박해를 받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순교자는 본래 ‘증인’이나 ‘증거’의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러므로 신앙의 삶 자체가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길이며 동시에 순교의 길이라고 할 수 있다.
신앙의 자유가 보장된 오늘날에는 하느님을 믿는다고 옛날처럼 순교를 당하는 일은 물론 없다. 그러나 세속 안에서 살아가는 신앙인의 삶은 어쩌면 매일같이 순교의 삶을 살아야 하는지 모른다. 왜냐하면 주님을 따르는 삶 자체가 주님을 증거하는 것이고, 일상적인 신앙생활이 순교의 삶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순교의 생활은 철저히 십자가를 지는 생활로 희생과 고통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래서 현대의 삶 속에서 충실하게 순교의 삶, 증거의 삶을 사는 것이 과거의 순교 못지않게 무척 어렵고 힘들다.
순교의 월계관을 받으신 우리 선조들이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고 계신다. 그래서 우리도 희망을 갖고 주어진 십자가를 충실히 지고 주님의 길을 걸어야 한다. 그 길만이 우리가 최종적으로 가야 하는 길이고, 승리와 영원한 행복이 보장된 길이기 때문이다.
수 많은 우리 한국의 순교 성인들. 모두 하느님과 주님의 말씀을 충실히 지켜 신앙을 증거하신 분들이다. 그분들의 얼과 혼이 오늘날 우리 신앙인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우리는 과연 신앙 때문에 죽을 수밖에 없는 순교의 상황을 용감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질문에 쉽게 대답하기 어렵다. 예전에 어느 신학교 교수 신부님께서 순교에 대해 말씀해 주신 적이 있다. “우리에게 순교할 상황이 닥치면 누가 순교를 할지 배교를 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순교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이루어진다. 미약한 우리 인간도 하느님이 도와주시면 순교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 순교의 능력은 인간의 능력이 아니라 하느님의 능력이다.
“순교자 김대건 사제와 한국의 순교성인 성녀들이여, 우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이달은 순교자 성월입니다. 순교자 성월을 맞아 순교성인, 성녀님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하고 성지순례나 서적을 통한 그분들 신앙의 모습을 살펴보고, 우리 자신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 순교의 삶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생각해보고 그 중의 한가지라도 실천할 수 있는 한 달이 되었으면 합니다.
10월21일 저희 거룩하신 어머니 꾸리아에서는 김대건안드레아 신부님께서 태어나신 솔뫼성지에 단원피정을 가게 됩니다. 많은 단원들이 이 기회를 통하여 짧은 생을 순교로 꽃 피우신 김대건안드레아 신부님에 대한 관심을 가져보는 것도 우리의 신앙생활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남을 평가하고 무시하고 자기의 주장만 옳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하나의 무기인양 휘둘러 상대방에게 마음의 상처를 입히기도 합니다. 상대를 폄하(貶下)하기 이전에 나 자신을 다시 한 번 돌아보고 또 상대의 입장에서 다시 한 번 더 생각해 보고, 상대에게서 약점을 찾으려고 하기보다는 장점을 찾아 칭찬을 아끼지 않는 것도 순교하는 생활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생활 속에서 쓰고 싶은 욕망을 조금 참고 절제하여 어려운 이웃을 보살피는 것, 주방에서 세제를 덜 사용 함으로써 환경오염을 줄이는 것,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노약자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 행사장에서 질서를 지키는 것, 자동차를 운전할 때 교통법규를 준수하는 것. 이 모든 작은 것 하나 실천하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순교의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레지오 단원들 만이라도 한 가지씩 개선해 나가는 생활을 할 때 우리 사회는 밝고 명랑한 사회가 되리라고 봅니다. 이제 더위도 한풀 꺾이고 활동하기에 좋은 가을 입니다. 미루었던 계획을 알차게 결실을 맺는 한 달이 되시기 바랍니다.
2007. 09. 06. <꾸리아 단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