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지 개미들이 '집채만 한'빵 조각을 나르는 모습을
스쳐본 적이 있을 것이다.
어느 목사님이 그 하나하나의 움직임들을 주의 깊게 관찰하였다.
그분의 지혜로운 눈은 다음과 같은 위대한 발견을 전해 준다.
"어느 날 아침 식탁에서 떨어진 빵 조각 주변에 많은 개미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보았다.
개미들은 빵 조각을 운반하기 위해 일을 하고 있었다.
어떤 개미는 빵 위에 어떤 개미는 빵 옆에, 어떤 개미는 빵 밑에 있었다.
빵조각은 그들의 집중된 힘에 의해 움직이고 있었다.
위에 있는 개미는 옆으로, 옆에 있는 개미는 빵 조각 밑으로,
밑에 있는 개미는 위로, 빵 조각과 같이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개미들이 오직 빵을 가져가려는 목적을 위해 협력하는
모습을 보았고 자신의 몸을 희생시키는 것도 보았다.
그리고 끝까지 힘을 구사하는 계속성도 보았다.
"작은 것들의 힘이 뭉쳐져 계속 행진 할 때, 위대한 역사가 창조된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느끼는 순간이었다"
개미들의 일사불란한 동작들이 눈에 들어온다.
하나의 목적을 위해 감각적으로 알아서 자신의 역할을 찾아 움직이는
개미들의 움직임은 아름답기까지 하다.
하느님께서 개미들에게 저런 놀라운 능력을 주셨다면,
당신의 모상인 사람에게야 오죽하겠는가.
성령강림 이후 신자들에게는 저 개미의 본능보다 더한 '함께본능'이 있었다.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듣고 서로 도와 주며 빵을 나누어 먹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였다"(사도2,42).
요즘, 나라가 어렵다.
최근의 어론조사에서 한국인은 한국사회가 직면한 최대의 문제로
계층 간,세대 간,지역 간 갈등을 꼽은 것으로 나타났다.
각자가 지닌 역량들의 결집되지 못하고 서로가 서로의 발목을 잡고 있는
형국이라는 얘기인 셈이다.
소승적 욕심때문에 대승적 결집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손실이요 비극이다.
교회는 그 본질적인 요청 때문에도, 사목적인 이유 때문에도,
국가차원의 대승적인 비전 때문에도 마음과 힘을 모을 줄 알아야 할 것이다.
"서로 격려해서 사랑과 좋은 일을 하도록 마음을 씁시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처럼 같이 모이는 일을 폐지 하지 말고 서로 격려해서
자주 모입시다. 더구나 그 날이 가까워 오는 것을 아는 이상
더욱 열심히 모이도록 합시다(히브10,24-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