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생업을 천직으로 여기는가?

2007. 1. 18. 오후 8:42:14

글자

 

 



어느 날 영국의 대문호 세익스피어가 레스토랑에 갔다.

그를 알아본 종업원들이 다 그에게 허리를 숙이고 경의를 표했다.

그때 구석에서 청소를 하던 한 종업원이 갑자기 자기 빗자루를

내던지는 것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의아해 할 때 세익스피어가 나서서 그 종업원에게

“왜 그러느냐?”고 물어 보았다.

그러자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선생님은 같은 인생을 살면서 이토록 유명한데 나는 이곳에서

선생님의 발자국을 청소나 하는 처지라, 그게 화가 났습니다.”

이에 세익스피어가 말했다.

“젊은이, 그렇게 생각하지 말게.

나는 펜을 들고 이 우주의 일부분을 아름답게 묘사하는 것이지만,

자네는 빗자루를 들고 이 우주의 일부분을 아름답게 보전하는 것일세.

자네의 공을 세상 사람들은 몰라주더라도 하느님은 알아줄 것이네.

자네나 나나 하느님이 보시기에는 똑같은 직업을 가지고 있는 것이네.”

또 이런 얘기가 있다.

세 사람의 석공이 성전건축을 위해 일을 하고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이 그들에게 물어 보았다.

 “어떻소, 일이 재미있습니까?” 그러자 첫 번째 사람이 대답했다.

“고역이지만 먹고 살자니 억지로 합니다.”

두 번째 사람이 대답했다.

“무슨 낙이 있겠소. 그냥 의무로 알고 하는 거죠.”

세 번째 사람이 대답했다.

“기쁩니다. 성전이 완공될 때를 생각하면 뭉클합니다.

이 영광스런 일에 동참하게 된 것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왜 같은 일을 하면서도 누구는 마지못해 하고, 누구는 기쁘게 하는가?

왜 어떤 사람은 자신의 직업(職業)에 대해서 불평을 하고

어떤 사람은 자신의 직업을 영광스럽게 여기는가?

왜 어떤 사람은 스스로를 불행하게 여기고 어떤 사람은 행복하게 여기는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하는 일에서 의미와 보람을 느낄 줄 안다.

그것을 천직(天職), 곧 하느님이 주신 일로 여기기 때문이다.

직업을 나타내는 영어 vocation은 ‘부르다’는 의미의

라틴어 동사 vocare에서 파생되었다.

곧 이 단어는 직업을 하느님의 부르심이라 알고 있었던

그리스도인들의 천직 개념을 반영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직업 안에서 스스로를 ‘거룩한 산제물’로

봉헌할 줄 알아야 한다.

“여러분 자신을 하느님께서 기쁘게 받아주실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

그것이 여러분이 드릴 진정한 예배입니다”(로마 12,1).



● 차동엽 노르베르토신부.미래사목 연구소장 (서울주보 3월13일)

 


 


 

댓글 1

  • 2007년 2월 6일 오후 4:57

    <img src=http://pds.maxmp3.co.kr/UserData/20060119/l/lomgee1137674031.jpg>

이야기가있는 풍경

목록 전체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