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는 2005.12.21자 중앙일보 2면 상단에 개제된 시 입니다
송년 기도 시
이해인 수녀
가족을 생각하며
가족이 그립고
집이 그리운 계절입니다
집이 있어도 가족이 없는 쓸쓸함
가까운 사람들이 만든 외로움의 추위를
사랑으로 녹여야 할 계절입니다
놀러 오라 초대해 놓고
막상 전화하면
집에 없는 사람들이 많아 슬퍼요
무에 그리 바쁜지 어디로 갔는지
대답 좀 해 보실래요?
함께 웃고 함께 밥 먹는 기쁨으로
평범하지만 가장 아름다운
삶의 주인공이 되세요
눈 내리는 12월엔
손님이 머물 빈 방도 하나 준비하며
행복한 가족으로 다시 태어나세요
이해인 수녀님이 쓴 시(詩) ‘가족을 생각하며’를 읽다가 문득 옛 생각이 나서 몇 자 적습니다.
내 고향은 전남 나주 산골마을, 진짜 인심 좋은 동네입니다.
지금은 그 집터에 몇 그루의 감나무가 자리잡고 있고, 겨울 마늘이 심어져 있을 겁니다. 참, 몇 일간 폭설이 내려 하얀 눈이 소복이 쌓여있겠네요.
집은 허물어 없어져 빈터인데 그 자리에 내 형수님이 마늘도 심고, 시금치도 심고, 텃밭으로 가꾸고 계시거든요.
그 집터는 원래 우리 집의 사랑채 엿 답니다. 안채는 지금도 형수님께서 집을 지키고 계시지요.
‘사랑채’ 하면 지금은 생소한 이름 같지만, 옛날 우리 어렸을 때는 그래도 살만한 양반 행세하는 집에서는 찾아오는 손님이나, 지나가는 길손이 찾아오면 부담 없이 방을 내어주고, 있는 반찬 없는 반찬 정성껏 준비하여 대접해 드리고, 남자 어르신들이 밤새워 말씀 나누시던 그런 방이었습니다. 초면에 무슨 하실 말씀도 그리도 많으셨던지 어린 나로서는 이해가 안가는 점이었지요.
매일 같이 손님을 모셔오고, 또 하루가 멀다고 손님이 찾아와도 싫은 내색 없이 정성껏 손님 맞을 준비를 하시던 어머님이 그립습니다. 내가 서울에 올라와 결혼을 하고 첫 손주를 어머님 앞에 안겨 드린 후 겨우 돌 지난 손주 앞에 두고, 하느님 품으로 가셨으니까 내 손수 제대로 된 효도 한번 못해드린 설음이 지금도 가슴에 못을 박습니다.
아버님은 내가 고등학교 3학년 때 지병으로 돌아가셨는데, 돌아가시던 그날까지 상투를 하시고 갓을 쓰고 향교에 출입을 하시던 학자셨습니다. 사랑채의 아버님 방에는 항상 지, 필, 묵과 책이 놓여져 있었습니다. 옛날에 양반들은 책을 보다가 폭우가 쏟아져 마당에 널어 놓은 곡식이 빗물에 다 떠내려 가도 ‘나 하고는 상관 없는 일’이란 듯, 개의치 않았다는 말도 있는데, 내 아버님이 꼭 그런 분이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손님이 오면 하시던 일 다 제쳐놓고 반갑게 맞아들이시던 내 아버님이 그립습니다. 그때는 자그만 일만 있어도 이웃의 잘사는 이, 못사는 이, 이것 저것 가리지 않고 모두 불러와, 함께 식사도 하고 밤 깊은 줄 몰라 하던 인심 좋은 시절이었는데…, 또 지나가는 길손에게 그냥 내어 줄 방도 마련해 두고, 있는 찬, 없는 찬 마련하여 대접도 했었는데, 요즈음에는 친척집을 가도 부담된다고, 찾아가는 이도, 맞아들이는 이도 모두 조심스러워 하는 시절이 되었네요.
수녀님의 시 중에 특히
“함께 웃고 함께 밥 먹는 기쁨으로
평범하지만 가장 아름다운
삶의 주인공이 되세요
눈 내리는 12월엔
손님이 머물 빈 방도 하나 준비하며
행복한 가족으로 다시 태어나세요”의 싯귀가 정말 마음에 와 닿습니다.
옛- 그날들이 그립습니다. 사랑채에 방 하나 비워두고 손님을 맞던 내 아버님 같은 사랑 가득한 인정이 그리운 세상입니다. 그립다고 해서, 기다린다고 해서 다시는 그 시절이 돌아오지는 않겠지요. 그러나 우리들에겐 아직 따뜻한 가슴이 있어, 연말이 되면 또 누군가는 불우단체를 방문하고 소외된 외로운 분을 찾아 나서게 되겠지요. 이웃과 함께하는 성탄 되시길 기도 드립니다.
나도 소외된 이와 함께하는 따뜻한 연말을 만들어 가려고 합니다.
- 2005.12.23.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