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 동화
-목마름의 잔치 사랑의 편지 변호사/윤학-
<이 글은 가톨릭 다이제스트 2005/11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이 글의 말미에 “제가 오늘 형제님에게 해준 것처럼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해주면 됩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은 그 형제님처럼 그런 신앙인으로 살수 있기를 다짐해 봅니다. 이 글을 읽고 내 가슴에 잔잔한 감동을 안겨주어 함께 공유하고 싶어 올립니다>
캘리포니아 한인 성당. 교포들에게 특강을 마치고 나오는데 50대 후반의 남자가 반갑게 말을 건네온다. 까맣게 주름진 얼굴, 허름한 옷차림에 말씨도 어눌한 그는 미국에 이민 온지 20년이 넘었다며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 놓았다. 바로 전날 비행기를 타고 와 시차 때문에 밤새 잠 한숨 못 잔 나에게 그의 이야기는 고문과 마찬가지였다. 내 특강이 소박해서 아주 맘에 들었다면서 쉬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자장가처럼 들으라며 나를 안락한 의자가 있는 곳으로 끌고 갔다.
1991년, LA에 폭동이 났을 때 흑인들을 상대로 잡화점을 하던 그도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평소 흑인들과 다정하게 지내던 그였지만 무차별하게 파괴하는 폭동의 광란을 피해가기는 불가능해 보였다. 다음 날이면 그의 가게도 화염에 휩싸일 판이었다. 성당에서 기도 중 문득 자신이 모든 것을 버려야 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른 새벽 가게에 나와 물건을 차에 싣고 평소 힘들게 살던 흑인 집들을 돌며 나눠주었다. 아침이 되어서 가게의 물건을 거리에 내놓고 흑인들이 보이면 가져가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한인들에게 그토록 무섭게 굴던 흑인들도 “잘 쓰겠다” “고맙다”며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재산을 모두 잃고 목숨까지 잃은 사람들이 많았던 그 폭동의 현장에서 그의 가게는 총 한방 맞지 않고 평화로웠다고 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하늘을 쳐다 봤다. 서울의 가을 하늘만큼이나 맑다. 몸은 고단했지만 그의 이야기는 머리를 맑게 하는 청량제가 들어 있었다. 언덕을 넘어 성당 마당으로 불어오는 바닷바람이 가을 햇살과 함께 내 볼을 간질인다. 쉬지 않고 이야기를 하는 그의 얼굴에는 행복이 피어나고 있었다.
미국에 오기 몇 해 전 그는 종로에서 거지 소년을 만났다. 소년을 데리고 목욕탕에 가 목욕을 시킨 후 밥을 먹이고 새 옷을 사 입혔다. 소년은 헤어지는 순간 “아저씨, 이 은혜 꼭 갚겠습니다.”하고 저만치 가는 그를 불러 세웠다. 그는 돌아서서 소년에게 외쳤다. “너 같이 구걸해 먹고 사는 녀석 조카로 둔 적 없어. 다음에 만날 때 네 힘으로 먹고 살지 않으면 아는 척도 하지마” 몇 달 후 길을 가는데 신문 배달을 하는 소년이 아는 척을 했다. 그 거지 소년이었다. “아저씨, 저 신문 배달하고 있어요” 소년은 의기 양양해서 다가왔다. 그러나 그는 또다시 호통을 쳤다. “나 신문 배달하는 조카 둔 적 없어” 소년은 멍하니 그를 바라 보다가 무얼 알아 차린 듯 환한 미소를 짓고 발길을 돌렸다.
그는 한국에서 목장을 했다. 부랑자가 대부분인 게으른 일꾼들을 먹여주고 재워주긴 했지만 월급은 한 푼도 주지 않았다. 하루 일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밥도 주지 않았다. 그러나 3년간 열심히 일하면 송아지를 몇 마리씩 주기로 했다. 그들은 배를 채우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일했다. 한 사람도 낙오되지 않고 그들은 모두 송아지를 받았다. 그의 넓은 땅에 송아지도 함께 키우게 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면 모두가 부자가 되었다. 그가 한국을 떠난 후 그들은 모두 목장주가 되었다.
이야기를 끝낸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만연했다. 그는 덧붙였다. 그들은 지금도 자신을 무척 신뢰하고 있다고……
오후 늦은 시간, 그가 식사를 사겠다며 등을 떠밀었다. 격식도 차리지 않고 그냥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도 남을 배려하는 그와의 식사는 참 편했다.
그는 아이들이 어릴 적부터 매일 잠언을 한 구절씩 쓰게 하고 꼬박꼬박 싸인을 해주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영어로 잠언을 쓴 덕분에 아이들은 모두 동부의 명문 대학에 다닌다. 그는 딸들이 시집갈 때 잠언을 쓴 공책을 함에 넣어 보내려고 잘 묶어 보관하고 있다고 했다. 그의 말을 들으며 내 딸을 시집 보낼 때 나는 무얼 넣어 보내야 하나, 내가 결혼할 때 그 함에는 무엇이 들어 있었던가도 생각해 보았다. 그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부끄러워졌다. 그의 딸이 “아빠는 참 바보 같은데 행복하게 사시는 것 같아요”라고 늘 말한다.
다시 성당으로 돌아온 그는 꽃에 물을 주고 나뭇가지를 자른다. 주일 새벽이면 맨 먼저 성당에 나와 청소를 하고 궂은 일을 도맡아 한다고 어떤 교우가 귀띔한다. 저녁 특강을 마친 늦은 시간 그가 시차 적응에는 와인 한 잔 하고 푹 자 두는 것이 최고라며 와인 한 병을 가져다 준다. 계속 그에게 받기만 하는 것 같아 이름을 묻자 가르쳐 주지 않았다. “제가 오늘 형제님에게 해준 것처럼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해주면 됩니다” 그는 이 말을 남기소 떠났다.
성당에 어둠이 밀려오고 있었다. 그가 다듬은 나무들이 성당의 밤을 지키며 서로 사랑을 속삭이듯 서있었다. 그 나무들이 둘러싼 그곳에 성모상이 밝은 빛을 받으며 빛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