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생활을 하다보면 교회를 떠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고 여겨질 때 실망하거나 비난을 하면서 교회를 등지고 싶은 마음이 쉽게 들지요. 하지만 이런 유혹을 잘 넘겨야 신앙의 뿌리가 깊어집니다. 어느 중년 가장의 신앙 위기 극복 체험담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줍니다.
“교회를 떠나야겠다고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다. 세례를 받고 2년쯤이었는데 세례를 받을 당시에는 보이지 않았던 교회에 대한 불만들이 신앙에 조금씩 눈을 뜨게 되면서 보이기 시작했다. 주위의 천주교 신자들의 모습, 공동체의 불합리한 행태, 성경 말씀과는 너무 다른 교회 현실 등을 보면서 조금씩 실망하기 시작했고, 그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견디기가 힘들어졌다.
그러다가 결정적으로 나의 인내심이 무너진 것은 어떤 신부님에게서 보이는 이해하기 힘든 모습 때문이었다.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제는 천주교를 떠나야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그런데 막상 떠난다고 하니, 어디로 갈 것이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가 막막했다. 그 순간 이럴 때일수록 하느님께 기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것은 참으로 성령의 인도였다. 교회의 모습이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하느님만은 완전하신 분이니 이 문제를 놓고 하느님과 의논하는 것은 꼭 필요하다고 느낀 것이다.
그래서 떠난다는 결정을 잠시 보류해 두고 주일 미사에 참여하던 어느 날, 영성체를 하고 돌아오는데 내 마음속에 이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네가 이제 내 교회의 단점을 이야기하느냐? 너를 여기까지 성장시켜 준 것이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내 교회의 단점을 너에게 보여 준 것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그것은 모두 내가 한 일이다. 너에게 그것을 보여 준 이유는 내 교회를 욕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위해 일하라는 뜻이다.’ 성령께서 들려주신 그 말씀에 나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았다.
‘하느님께서 나를 통해, 교회를 새롭게 하려고 나를 부르고 계셨구나. 그런 순간에 오히려 욕하면서 떠나간다면, 그것은 하느님께서 뜻하신 바가 아닐 것이다.’ 그날부터 교회의 비판이나, 떠난다는 생각은 다 집어치우고, 내가 그런 교회를 위해 무슨 일을 할 것인지 생각했다. 교회의 단점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하느님께서 내게 주신 특별한 은혜였기 때문이다. 그것을 깨우쳐 주신 성령께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생활성서』 2012년 8월호에서)
악의 세력은 항상 그럴 듯한 핑계를 대면서 우리를 주님과 교회로부터 멀어지게 만듭니다. 교회 안에서 잘못된 점이 보이면 악한 세력은 이렇게 속삭입니다. ‘이런 교회에서 무엇을 더 바랄 것이 있느냐? 희망이 없는 교회에서 더 이상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지 말고 떠나가서 편하게 살아라.’ 이것은 분명 유혹의 속삭임입니다.
또 어떤 이들은 개혁과 쇄신이라는 기치를 내세우면서 교회의 어두운 면, 특히 성직자들의 약점과 잘못을 집중적으로 비판합니다. 때로는 지나칠 그 정도가 지나쳐서 비난과 공격으로 느껴질 정도입니다. 그러면서도 교회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저는 그럴 때마다 20세기 가톨릭 신학의 거장 칼 라너(1904-1984) 신부님의 말을 생각하게 됩니다. “교회는 주름이 짜글짜글한 노파입니다. 그런데 그 노파는 나의 어머니입니다. 그리고 어머니를 때리는 사람은 없습니다.” 칼 라너 신부님은 신학자로서 가끔 교회에 대해 쓴 소리도 했지만, 거칠고 험한 비난은 하지 않았습니다. 여름휴가를 어느 시골에서 지내면서 오후에 매일 성당에 들어가서 한 시간씩 교회를 위해 기도했다는 말도 전해 들었습니다.
교회는 짜글짜글한 노파와 같지만, 하느님은 그런 노파에게서 거듭 새로움을 불러일으키십니다. 고목에서 새싹이 돋고 아름다운 꽃이 피듯이 말입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이런 사실을 확신하면서 말합니다. “가톨릭 교회는, 물론 한숨과 신음 소리가 없지는 않지만, 아직까지 존속하고 있으며, 끊임없이 위대한 순교자를 배출해 냈고, 위대한 신앙인, 선교사, 또 간호사, 교육자가 되어 교회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사람들을 배출해 냈습니다. 그런 점이 이 교회를 지탱하는 다른 어떤 존재가 정말로 있음을 말해 주지요.”
교회를 진정으로 새롭게 한 이들은 요란하게 체제와 구조 개혁을 외치면서 손가락을 밖으로 내뻗지 않았습니다. 그보다는 새로움과 생명의 근원이신 하느님께 대한 굳건한 믿음을 바탕으로 스스로의 개혁에서 출발하여 조용히 교회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하느님께 깊이 뿌리를 두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풍성한 열매를 맺는 나무처럼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프란치스코 성인(聖人)이 걸었던 길입니다. 또한 오늘날 우리 교회를 위해 진정으로 필요한 길입니다. 이 길을 조용히, 그러나 확신 있게 걸어가는 이들이 많아지기를 소망하고 기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