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없이 이루어진 설교

2012. 6. 16. 오후 5:54:28

글자
 

없이 이루어진 설교


성자(聖者)가 어느 날 아침 가장 아끼는 제자를 데리고 길을 나섰습니다. 제자가 어디를 가느냐고 묻자 성자는 옆 마을 사람들에게 설교하러 간다고 했습니다.

꽤나 먼 거리를 걸어간 두 사람은 도중에 무거운 짐을 어깨에 짊어지고 땀을 뻘뻘 흘리며 걷고 있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 사나이는 불만으로 기득 차 있었고, 그들을 만나자 말자 자신이 왜 이렇게 짐을 메고 가는지부터 시작하여 짐꾼 신세가 된 사연을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성인은 그의 슬픈 이야기를 아무 말 없이 묵묵히 들었습니다.
 

또 얼마 지나지 않자 들에서 곡식을 심고 있는 농부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한참 후에 다시 그들은 길을 떠났고 마을 어귀에 도착해서 성인은 이번에는 잡다한 물건을 팔고 있는 상인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다음으로 성인은 시장에서 구걸하고 있는 거지를 만났고,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과 함께 놀았습니다.

그렇게 하루해가 저물었습니다. 성인은 그의 제자에게 이제 설교가 끝났으니, 숙소로 다시 돌아가자고 했습니다.

그의 제자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스승님, 설교를 하러 왔으면서 왜 그들에게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으시는 것입니까?”

제자의 질문에 성인은 부드러운 미소로 대답했습니다.

“그래? 우리가 만난 모든 사람들에게 설교를 하지 않았던가? 단지 말로만 하지 않았을 뿐....”


한 사람이 절망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삶이 너무도 힘들어 주체 없이 흔들릴 때, 그 사람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어떤 충고나 조언이 아닙니다. 그냥 말없이 그의 곁에 있어 주는 것입니다.

대철학자 칼 힐티는 큰 소리로 충고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의 습성에 대해 이렇게 풍자했습니다.

“충고는 눈과 같아야 좋은 것이다. 조용히 내리면 내릴수록 마음에는 오래 남고 깊어지는 것이다.”

때로는 백 마디의 말보다 말없음이 더 커다란 위안이 될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상대방을 아낀다는 명목 아래 내가 그 사람에 대해서 다 안다는 듯 충고하고 조언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때로는 상대방을 더 아프게 하고 힘겹게 만드는 일이 되기 싶습니다.

상대방은 힘겹고 어려운 순간, 당신이 곁에 있어준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안이 될 때가 많습니다.

소리 없는 침묵은 때로 더 많은 말을 들려주고 더 많은 사랑을 표현해주지요.

                             -‘행복 비타민’에서-

 

댓글 1

  • 2012년 6월 17일 오후 2:39

    진심으로 들어주는 친구 한명 이라도 있는 사람은 행복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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