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6월 25일 연중 제12주간 토요일-마태오 8,5-17

2011. 6. 25. 오전 10:0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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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6월 25일 연중 제12주간 토요일

제1독서 창세기 18,1-15

그 무렵 1 주님께서는 마므레의 참나무들 곁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다. 아브라함은 한창 더운 대낮에 천막 어귀에 앉아 있었다. 2 그가 눈을 들어 보니 자기 앞에 세 사람이 서 있었다. 그는 그들을 보자 천막 어귀에서 달려 나가 그들을 맞으면서 땅에 엎드려 3 말하였다.
“나리, 제가 나리 눈에 든다면, 부디 이 종을 그냥 지나치지 마십시오. 4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시어 발을 씻으시고, 이 나무 아래에서 쉬십시오. 5 제가 빵도 조금 가져오겠습니다. 이렇게 이 종의 곁을 지나게 되셨으니, 원기를 돋우신 다음에 길을 떠나십시오.”
그들이 “말씀하신 대로 그렇게 해 주십시오.” 하고 대답하였다.
6 아브라함은 급히 천막으로 들어가 사라에게 말하였다. “빨리 고운 밀가루 세 스아를 가져다 반죽하여 빵을 구우시오.” 7 그러고서 아브라함이 소 떼가 있는 데로 달려가 살이 부드럽고 좋은 송아지 한 마리를 끌어다가 하인에게 주니, 그가 그것을 서둘러 잡아 요리하였다. 8 아브라함은 엉긴 젖과 우유와 요리한 송아지 고기를 가져다 그들 앞에 차려 놓았다. 그들이 먹는 동안 그는 나무 아래에 서서 그들을 시중들었다.
9 그들이 아브라함에게 “댁의 부인 사라는 어디에 있습니까?” 하고 물으니, 그가 “천막에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0 그러자 그분께서 말씀하셨다. “내년 이때에 내가 반드시 너에게 돌아올 터인데, 그때에는 너의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다.”
사라는 아브라함의 등 뒤 천막 어귀에서 이 말을 듣고 있었다. 11 아브라함과 사라는 이미 나이 많은 노인들로서, 사라는 여인들에게 있는 일조차 그쳐 있었다. 12 그래서 사라는 속으로 웃으면서 말하였다. ‘이렇게 늙어 버린 나에게 무슨 육정이 일어나랴? 내 주인도 이미 늙은 몸인데.’
13 그러자 주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사라는 웃으면서, ‘내가 이미 늙었는데, 정말로 아이를 낳을 수 있으랴?’ 하느냐? 14 너무 어려워 주님이 못 할 일이라도 있다는 말이냐? 내가 내년 이맘때에 너에게 돌아올 터인데, 그때에는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다.”
15 사라가 두려운 나머지 “저는 웃지 않았습니다.” 하면서 부인하자, 그분께서 말씀하셨다. “아니다. 너는 웃었다.”


복음 마태오 8,5-17

5 예수님께서 카파르나움에 들어가셨을 때에 한 백인대장이 다가와 도움을 청하였다. 6 그가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 제 종이 중풍으로 집에 드러누워 있는데 몹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7 예수님께서 “내가 가서 그를 고쳐 주마.” 하시자, 8 백인대장이 대답하였다.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 9 사실 저는 상관 밑에 있는 사람입니다만 제 밑으로도 군사들이 있어서, 이 사람에게 가라 하면 가고 저 사람에게 오라 하면 옵니다. 또 제 노예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합니다.”
10 이 말을 들으시고 예수님께서는 감탄하시며 당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스라엘의 그 누구에게서도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
11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동쪽과 서쪽에서 모여 와, 하늘 나라에서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함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 12 그러나 하느님 나라의 상속자들은 바깥 어둠 속으로 쫓겨나,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13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백인대장에게 말씀하셨다. “가거라. 네가 믿은 대로 될 것이다.” 바로 그 시간에 종이 나았다.
14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집으로 가셨을 때, 그의 장모가 열병으로 드러누워 있는 것을 보셨다. 15 예수님께서 당신 손을 그 부인의 손에 대시니 열이 가셨다. 그래서 부인은 일어나 그분의 시중을 들었다.
16 저녁이 되자 사람들이 마귀 들린 이들을 예수님께 많이 데리고 왔다. 예수님께서는 말씀으로 악령들을 쫓아내시고, 앓는 사람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17 이사야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그는 우리의 병고를 떠맡고 우리의 질병을 짊어졌다.”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조명연 신부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공지했던 대로 인천교구 사제연수로 인해서 새벽을 열며 묵상 글을 열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연수는 미래 사목에 대한 강의도 듣고, 또 노인요양원에 가서 봉사하면서 다른 때와는 달리 더욱 더 의미 있었던 시간이 아니었나 봅니다. 아마 여러분들의 기도 덕분에 그런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여러분들의 많은 기도와 관심 부탁드립니다. 그럼 오랜만에 새벽을 열며 묵상 글 시작합니다.

인터넷에서 우연히 ‘다섯 번 죽는 김치’라는 재미있는 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제목 자체가 의미심장하지 않습니까? 김치가 다섯 번이나 죽다니요? 그런데 이 글을 보니까 정말로 다섯 번 죽더라고요. 그 글을 그대로 실어봅니다.

김치가 맛을 제대로 내려면 다섯 번이나 죽는답니다. 땅에서 뽑힐 때 한 번 죽고, 통배추의 배가 갈라지면서 죽고, 소금에 절여지면서 죽고, 매운 고춧가루와 짠 젓갈이 범벅이 돼서 죽고, 장독에 담겨 땅에 묻혀 한 번 더 죽어야 제대로 된 김치 맛을 낸답니다.

정말로 그렇지 않습니까? 이렇게 죽지 않는다면 우리들은 제대로 된 김치를 맛볼 수가 없을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들의 삶도 이런 것 같습니다. 우리의 삶이 진정으로 아름다우려면 고통과 시련처럼 보이는 죽음의 삶을 건너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순간은 정말로 견디기 힘든 고통과 시련이지만, 그 순간을 버티어 내면 제대로 된 나의 아름다운 삶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어제 저녁에 약속이 있어 어디를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마침 퇴근 시간에 걸려서인지 차가 무척이나 막히더군요. 약속 시간이 가까워지면서 초조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화도 납니다. 즉, 갑자기 끼어드는 차를 보면서, 또한 신호를 보지 못하고 가만히 있는 차를 보면서 화를 내고 있는 제 자신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사실 화를 낸다고 그 순간이 바뀌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초조한 마음에 화를 내는 내 자신에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고통과 시련에 대해서 화를 낸다고 절대로 바뀌지 않습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참고 견디어 내는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입니다. 그 믿음을 통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큰 은총과 축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백인대장을 보십시오. 그는 지배층이라고 말할 수 있는 로마의 백인대장이었습니다. 따라서 피지배층이었던 유대인인 예수님에게 강제적으로 명령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명령보다는 대신 예수님께 대한 굳은 믿음을 갖는 순종을 선택합니다. 그 결과 예수님으로부터 “가거라, 네가 믿은 대로 될 것이다.”라는 커다란 선물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자주 주님께 명령을 내리려고 합니다. 나의 모든 고통과 시련을 당연히 주님께서 없애주셔야 한다면서 명령조로 말합니다. 또한 ‘주님이 이 고통과 시련을 없애주시면 내가 성당 열심히 다니겠습니다.’라는 식의 조건을 내걸기도 하지요. 이는 믿음으로부터 오는 말이 아닙니다. 그래서 더 큰 실망과 아픔 속에서 헤맬 수밖에 없게 됩니다.

백인대장이 보여주었던 믿음을 내 마음 안에 간직해야 합니다. 이 믿음만이 어떤 고통과 시련 속에서도 큰 행복을 체험하게 만듭니다.


사람들이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것은 사랑의 마음입니다(마더 데레사).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스라엘을 그 누구에게서도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

양승국 신부

 <네가 최고란다>

 

   갓 난 아기 때부터 우리 뇌리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원초적 믿음’이 하나 있습니다.     엄마는 무조건 내편이다. 엄마는 부르면 언제나 달려와 주는 해결사다. 엄마는 절대로 날 내버려두고 떠나지 않는다. 엄마는 언제나 내게 좋은 것만 해주신다. 

    우리의 믿음이 성장해나가기 위해서는 이런 ‘원초적 믿음’이 하느님께도 적용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하느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성경 여러 곳에서 잘 설명되고 있습니다.

     시편 23장을 천천히 읽다보면 세파에 흔들리며 불안하던 마음이 어느새 잔잔해지며 자상한 목자이신 주님의 포근한 품에 안기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 나는 아쉬울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이끄시어 내 영혼에 생기를 돋우어 주시고 바른 길로 나를 끌어주시니 당신의 이름 때문이어라. 제가 비록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 하여도 재앙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니 당신께서 저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사야서 43장은 또 어떻습니까? 큰 산처럼 든든한 보호자이자 큰 ‘빽’이신 하느님 때문에 우리 마음까지 든든해지고 편안해집니다.

     “네가 물 한가운데를 지난다 해도 나 너와 함께 있고 강을 지난다 해도 너를 덮치지 않게 하리라. 네가 불 한가운데를 걷는다 해도 너는 타지 않고 불꽃이 너를 태우지 못하리라. 나는 주 너의 하느님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 너의 구원자이다.”(이사야 43장) 

    이토록 부족한 나, 너무도 심하게 흔들리는 나, 참으로 볼품없는 나를 보며 자책도 많이 했는데,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이런 나를 향해 하느님께서는 깜짝 놀랄 말씀을 하십니다. 

    “너는 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염둥이 나의 사랑이다.”

     하느님에게서 원초적 믿음을 체험한 사람들이 지니게 되는 특징이 한 가지 있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틀립니다. 이웃을 바라보는 눈도 틀립니다. 하느님을 바라보는 눈도 틀립니다. 불신과 의혹의 눈이 아니라 신뢰와 사랑의 눈입니다.  

    하느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을 키워나가는 일,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은 다시 또 없습니다. 내 안에 하느님께서 확고히 자리하고 계심을 확신해야겠습니다.

     그분께서 내 안에 든든히 자리 잡고 계심으로 인해 나란 존재 역시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사랑스럽고 가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굳게 믿어야겠습니다.

     더 이상 자신을 비하하고, 자신을 미워하고, 자신을 천대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왜냐하면 오늘 아침에도 하느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던지시며 우리에게 다가오시기 때문입니다. 

    “내게 있어 너처럼 소중한 존재는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단다. 내게 있어 너와 같이 아름다운 존재는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단다. 내게 있어 지금 이 순간 네가 최고란다.” 

댓글 1

  • 2011년 6월 25일 오후 5:07

    주님! 당신께 모든 것을 맡겨 드리는 나날이 될 수 있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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