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형제 여러분, 우리는 하느님께서 마케도니아의 여러 교회에 베푸신 은총을 여러분에게 알리고 싶습니다. 2 환난의 큰 시련 속에서도 그들은 기쁨이 충만하여, 극심한 가난을 겪으면서도 아주 후한 인심을 베풀었습니다. 3 나는 증언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힘이 닿는 대로, 아니 그 이상으로 기꺼이 내놓았습니다. 4 그러면서 성도들을 위한 구제 활동에 참여하는 특전을 달라고 우리에게 간곡히 청하였습니다.
5 그들은 우리가 그렇게까지 기대하지는 않았는데도, 먼저 주님께 자신을 바치고, 또 하느님의 뜻에 따라 우리에게도 자신을 바쳤습니다. 6 그래서 우리는 티토에게, 여러분에게서 이미 시작한 이 은혜로운 일을 마저 끝내라고 권하였습니다.
7 이제 여러분은 모든 면에서 곧 믿음과 말과 지식과 온갖 열성에서, 또 우리의 사랑을 받는 일에서도 뛰어나므로, 이 은혜로운 일에서도 뛰어나기를 바랍니다.
8 나는 이 말을 명령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이들의 열성에 견주어 여러분의 사랑이 얼마나 진실한지 확인하고 싶을 따름입니다. 9 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을 알고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부유하시면서도 여러분을 위하여 가난하게 되시어, 여러분이 그 가난으로 부유하게 되도록 하셨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43 “‘네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네 원수는 미워해야 한다.’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44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45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
46 사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그것은 세리들도 하지 않느냐? 47 그리고 너희가 자기 형제들에게만 인사한다면, 너희가 남보다 잘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그런 것은 다른 민족 사람들도 하지 않느냐?
48 그러므로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세상에 그 누구도 고통과 시련을 체험하지 않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입니다. 특히 지금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힘들게 사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생각하기에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왜 그렇지 못한가를 말하면서 불공평한 세상이라고 말하지요. 그러나 세상에 일정하게 정해진 삶의 표준이나 기준이 있을까요? 즉, 행복과 불행이라는 구분을 정확하게 내릴 수 없는 것입니다. 단지 남과 나를 비교하면서 ‘그래서 내가 불행한 것이야.’라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요?
“왜 나만 불행하고 이렇게 못 살까? 왜 나만 가진 돈도 그리고 재능도 없을까? 왜 나만 부모 복이 없고 자식 복이 없을까? 왜 나만 행운이 찾아오지 않을까?”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서는 절대로 행복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행복의 기준은 남에게 두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행복은 기준은 나에게서 시작되며, 스스로 행복을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이 세상의 눈으로 볼 때에는 불행의 조건을 갖추고 있는데도 가장 행복한 사람임을 자처하면서 사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따라서 진정으로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세상의 기준을 쫓으려고 하기 보다는, 그 행복을 자기 자신 안에서 찾는데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제시해주시는 길은 세상의 기준을 통해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에도 나오듯이 원수를 사랑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요? 그리고 나를 박해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할 수 있을까요? 세상의 기준으로는 있을 수 없으며, 또 몇몇은 당연히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제시해주시는 길은 나의 입장에서 바라볼 때 반드시 올바른 길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생각하면서 판단하고 비판하는 길이 아닌, 무조건적인 사랑의 길이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 길이 자기 자신을 위해서도 가장 올바른 길이기도 합니다. 생각을 해보십시오. 사랑하지 못하고 미워할 때의 내 마음을, 다른 사람에 대한 부정적인 마음을 품고 있을 때 과연 편안하고 행복하셨습니까?
우리들 모두가 완전한 사랑 안에서 완전한 행복을 누리며 살기를 원하시는 주님께서는 우리들을 위해서 결정적인 말씀을 하시지요.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뜻에 맞게 살지 못한다고 우리들을 곧바로 벌하십니까? 아니지요. 하느님께서는 완전한 사랑을 가지고서 우리에게 계속해서 기회를 주시면서 우리 편이 되어 주십니다. 그렇다면 우리 역시 하느님처럼 완전한 사랑을 가지고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 완전한 사랑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완전한 사람이 되도록 합시다. 그 완전한 사람이 될 때 완전한 행복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참, 공지사항 한 가지 말씀드립니다. 제가 오늘부터 16일까지 덕적도로 신학생 하계MT를 다녀옵니다. 그래서 16일까지 새벽 묵상 글을 올릴 수 없다는 점,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이번 하계MT 잘 다녀올 수 있도록 많은 기도 부탁드립니다. 그럼 잘 다녀오겠습니다.
“그러므로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완전한 사람=겸손한 사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을 붙들고 한동안 묵상을 해봤습니다. 완벽한 사람이 되라는 말씀일까? 대단한 사람이 되라는 말씀일까? 특별한 사람이 되라는 말씀일까? 천사 같은 존재가 되라는 말씀일까?
우리의 불완전한 처지를 잘 알고 계시는 예수님께서 우리 능력 밖의 목표, 도달 불가능한 목표를 기대하시는 것을 아닐 텐데, 하는 생각과 함께 말입니다.
고민 끝에 제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이렇습니다.
완전한 사람이 되라는 말씀은 하느님의 사람, 자신의 내면 안에 하느님의 품성을 지닌 사람, 하느님의 크신 자비, 그분이 지니신 연민의 정을 지닌 사람, 측은지심을 지닌 사람이 되어라, 하는 말씀이 아닐까요?
그 사람은 결국 그릇이 큰 사람, 세상만사 모든 일을 잘 포용하는 사람, 기쁨도 슬픔도, 고통도 은총도 모든 것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임을 깨닫는 사람, 인생의 굴곡, 삶의 성패 여부에 연연하지 않지 않는 사람이 아닐까요?
그런 존재가 되기 위해서 꼭 필요한 덕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겸손의 덕입니다. 그런데 겸손이란 또 어떤 의미를 지닐까요? 다른 무엇에 앞서 하느님의 크심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더불어 그분 앞에 나란 존재는 정말 아무 것도 아니로구나, 하는 진리를 깨닫는 것입니다.
은혜롭게도 아무 것도 아닌 나를 하느님께서 이 세상에 불러주셨구나, 투박한 질그릇 같은 나에게 고귀한 가치와 품성을 부여해주셨구나, 그분으로 인해 나는 의미있는 존재로구나, 그분을 떠나서 나는 정말 아무 것도 아니로구나, 하고 깨닫는 것이 겸손이 아닐까요?
그분 사랑 없이 나는 단 한순간도 바로 설수 없는 흔들리는 존재이구나, 그분의 현존으로 인해 오늘 내가 사는구나, 그분의 자비로 인해 오늘 내가 빛을 발하는구나, 하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겸손한 자로 살아갈 수 있는 비결입니다.
겸손의 덕을 지닌 사람에게는 하느님의 놀라운 은총이 뒤따르는데, 그것은 아무리 짓눌려도 다시 일어설 힘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무거운 십자가가 따라 다닌다 하더라도 기쁘게 십자가를 지고 갈 용기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직면하기 어려운 사건, 대하기 이웃이라 할지라도 미소 지으며 맞이할 여유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겸손의 덕을 지닌 사람에게는 기적까지 일어납니다. 원수를 용서할 뿐만 아니라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박해하는 사람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